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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y 26. 2023

엘리베이터에 갇힌 날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3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불렀고, 옆집 아저씨가 내리고 나는 탔다. 서서히 한 층 씩 내려가던 중,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불이 꺼졌다. 그렇게 9층에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오래간만에 약속이 있어 나가던 길. 엘리베이터가 멈춘 찰나의 순간, 나는 제일 먼저 약속에 늦을 것을 걱정했던 것도 같다.


먼저 신랑에게 전화했고 그다음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믿을 수 있고 의지하는 존재.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화로 내 상황을 알렸고, 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생각보다 덤덤했고 무섭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침착한 목소리로 우리 아파트 이름과, 동, 라인, 9층에서 멈춘 사실을 알렸다. 환자가 같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혹시 내가 환자라고 이야기하면 더 빨리 와주는 게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119 신고 후에 남편과 아빠가 전화를 해서 날 안심시켜 주었고, 나는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신랑은 엘리베이터 벽을 잘 잡고 몸을 낮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혹시 추락하면 꼭 그렇게 해야지 하며 잠시 무서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약속에 늦게 되었다고 지인에게 상황을 알렸다. 걱정하는 톡을 잔뜩 보내오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19에서 보낸 문자 링크로 들어가 소방차가 어디쯤 오나 여러 번 새로고침을 해보았다.


그리고는 혹시 내가 잘못되면 우리 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내 카톡방에 써 내려갔다.


두려웠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고, 이대로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덤덤한 내가 조금 멋져 보이기도 했고, 평온한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


네이버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동지들의 글을 검색해서 읽기도 하고, 늦게 되어 미안하다고 만나기로 한 지인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때 여러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계신가요?"

"네! 안에 있어요!"


나는 안도했다. 소방관들은 엘리베이터 문을 열기 위해 애썼고, 중간에 무언가 걸려 문이 잘 열리지 않을 때 나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엘리베이터는 9층의 바닥보다 한참 아래에서 멈춰있었다. 내 눈에 보인 것은 소방관들의 다리뿐. 여기를 올라가야 하나?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저 정도는 올라갈 수 있어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결국 활짝 문이 열렸고, 올라오실 수 있겠냐는 질문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 어떡하죠?" 되묻는 나였다.


그때 한 소방관이 내가 있는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주었고, 다른 분들은 가방을 들어주고 올라가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탈출 성공.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5분 10분 갇힌 줄 알았는데, 25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인적사항을 알려드리고 소방관들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렸다. 탈출하는 찰나의 순간에 소방관이 잘생겼네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밟아본 땅은 단단했고 안전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랑, 아빠, 만나기로 한 지인에게 탈출성공이라고 문자 한 후 신랑이랑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런 목소리로. 그리고 션이와도 통화하게 되었다.

 

촉촉한 목소리, 션이는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 온 집이 다 정전이 되었고, 아이는 놀랬다고 했다. 션이를 안심시켜 주고, 엘리베이터에서 유튜브 보며 놀았고 멋진 소방관아저씨들이 금방 구해줬다고 씩씩하게 말해주었다. 나를 걱정했다는 아이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가슴 한편이 욱신했다.


엘리베이터에 갇혀있을 때 션이 목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울었겠다 싶기도 했다.


정신없는 순간, 혹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에 내 아이에게 쓴 메시지.


"시안아 엄마가 사랑해. 엄마가 지구에 있든, 하늘에 있든, 항상 지켜보고 있을 거란다♡ 자신감 있게 살아가렴. 여자들에겐 매너 있게 대해주렴~ 그리고 엄마가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아가렴^^ 엄마가 없어도 시안이를 사랑하는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가 있단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렴♡ 사랑한다. 우리 아기."


아주 잠깐이었지만 삶의 마지막까지 생각하게 한 이 경험은 아직도 나를 두근두근하게 한다. 돌아보니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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