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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20. 2024

실수로 짜장을 두 개 시킨 날


현재 나의 신분


주재원 아내

션이 엄마


인간이 추구하는 많은 욕구 중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라는 자아실현의 욕구는, 소속감이 가족 말고는 없는 현실에서는 막연하기만 하다.


퇴근하고 녹초가 돼서 돌아온 신랑 앞에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 먹이는 것은 주부인 내가 채우고 싶은 가장 중요한 욕구이다.


그날, 우리 집 냉장고는 비어있었다.


백만 년 만에 일찍 퇴근한다는 신랑의 전화에, 저녁 뭐 먹고 싶어? 가 아니라 뭐 좀 시켜줄까? 물었다.


뭐 뜨끈한 거 먹자.


뜨끈한 거, 뜨끈한 거.


최근 국물이 땡겨 시켜 먹은 감자탕의 육수가 깊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감자탕은 패스.


뜨끈한 순댓국 나가서 사 먹을까 싶었지만, 이미 목욕하고 잠옷바람으로 뒹굴며 책 보고 있는 아들은 밥 따위를 먹으러 밖에 나갈 의지가 없었다.


그냥 짬뽕이나 하나 시켜 먹자는 신랑의 제안.


좋아! 누나만 믿어. 죽이는 짬뽕 대령합니다!


남편이 퇴근하면 "얼른 손만 씻고 와서 빨리 먹어!" 해주고 싶은 게 아내의 마음이다. 얼른 짬뽕을 시켜야 한다! 동네에 한국식 짜장면 짬뽕을 파는 집이 있는데 배달앱에 안 나왔다. 직접 시켜야 한다는 건데 연락처가 없네.


북경 교민들이 이용하는 카페에 부랴부랴 들어가 연락처를 찾아본다. 오 있다! 식당에 문자를 보내 신랑 먹일 삼선짬뽕 하나, 션이 먹일 짜장 하나, 그리고 요리로는 매콤한 깐풍기를 시켰다. 배달비까지 거의 4만 원 돈이네! 그래도 식구들 맛있게 먹이지 뭐. 오늘은 파티날♡


뜨끈한 거 먹일 생각에 들떴던 것 같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션이는 배고파서 자꾸 과자를 뜯었다. 식당 연락처를 찾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배달 언제 와요?라는 문자에, 이제 출발합니다 답이 왔다.


음식 주문한 지 한 시간, 가족들이 벌써 과자와 과일을 좀 집어 먹은 후 드디어 음식이 왔다. 그런데 짜장면이 두 개가 온 것이다.


뭐야. 이 음식점 왜 짜장을 두 개를 보내! 미친 거 아냐?



너무 화가 났다. 당장 음식 다시 보내라고 해야지 하던 중,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짜장면 1, 삼선짜장 1?

삼선짜장?


명백한 나의 실수였다.


"아, 너무 미안해. 내가 실수했나 봐. 미쳤나 봐. 나 뭐야. 왜 이런 실수를 했지?"


그냥 먹자는 신랑은 조금은 불은 면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아 너무 미안해 진짜. 국물 있는 거 먹고 싶어 했는데."


신랑은 괜찮다는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나라도 짜증이 났을 것 같다. 느끼해서 몇 젓가락 못 먹는 짜장을 두 개씩이나!


얼큰한 국물의 짬뽕 대신 짜장면은 이 날따라 더 느끼했다.


나는 멍청한 와이프였다.


안 되겠다. 맥주 한 캔을 땄다.


어이없는 실수를 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속에서 불이 났다. 그래도 맥주는 시원했다.


그날 저녁, 더부룩한 배를 두드리며 온 가족이 모여 한 루미큐브 대결에서 션이가 자기 실력으로 승리했다.



실수로 짜장면을 두 개 시킨 날, 나는 좌절했다. "바보냐?" 차라리 탓이라도 하지, 꾸역꾸역 면을 먹던 우리 안쓰러운 신랑.


이렇게 매일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한가하면서도 정신없는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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