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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판기 Jan 02. 2024

넷, 지랄에도 총량이 있음에 감사

나도 너의 바닥을 알고 있다

야~~~~~~~~~~~~~~~!

단전에서 끌어올린 화와 함께 동생을 향해 베개를 힘껏 던진다. 그리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엄마의 개입으로 그 소란은 일단락된다. 동생과 나는 어렸을 때 사사건건 싸웠다. 동생은 양말 한 켤레, 연필 한 자루로도 내 화를 돋우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을 부라리며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지랄에도 총량이 존재한다지만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가 각자 가정을 꾸릴 나이 즈음이 되어서 우리의 지랄의 총량은 바닥을 드러냈고 놀랍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5년 동안 거의 매일을 함께 수영을 하러 다녔다. 간혹, 함께 수영을 하고 있자면 자매냐고 묻거나 쌍둥이인 줄 알았다며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수영장에 처음 갔을 때 텃새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우리 자매는 처음부터 꽤 눈에 띄었는지 견제가 심했다. 하지만 혼자라면 금세 기가 죽었겠지만 둘이라 꿋꿋이 잘 버텼다. 우리는 매일 만나는 사이여도 할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함께 운동하고 수다 떠는 시간은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루틴이 되었다. 수영장에서 만난 언니들은 우리 자매를 부러워했고 자매가 그렇게 친하게 지내기도 쉽지 않다며 우리를 추켜세웠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릴 때 다 싸워서 그런 거 같다했다. 


동생이 이사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수영장에 가면 아직도 왜 동생은 안 보이냐고 묻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동생의 부재를 떠올리고 문득 쓸쓸함을 느낀다. 내 모든 치부와 나의 바닥을 알아도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이 물리적으로 멀어졌다는 것은 꽤나 큰 상실감을 주었다. 동생이 이사하기 전까지는 동생이 일상에서 내게 미치는 영향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동생에게 도움을 주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실을 동생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동생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새삼스럽게 우리의 지랄에도 총량이 있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모든 지랄을 뒤로하고 사이좋은 자매로 거듭났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 지면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다. 동생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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