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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8. 2023

모리 오가이 《기러기》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보냈다

■ 모리 오가이(森鴎外)가 쓴 단편소설 《기러기(雁, がん)》 등장인물 오타마(お玉)와 미스 마플이 가상 대담을 나눈다. 이 작품은 1911년에서 1913년까지 문예지 《스바루(スバル)》에 연재됐다. 거리에서 엿을 파는 홀아버지와 가난하게 살던 열일곱 살 소녀 오타마는 고리대금업자 첩으로 살면서 가난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에도 따분한 생활이 이어지고 우연한 일로 같은 동네 사는 도쿄 의대생 오카다(岡田)를 짝사랑하게 된다.  




마플 어서 오세요, 오타마님. 오늘 제가 드디어 첫 여성 대담자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묻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오타마 네, 안녕하세요. 미스 마플. 저는 도쿄 조용한 주택가에서 느긋하게 잘 지냈어요. 제가 첫 대담자이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대담을 허락하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마플 아닙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답변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저와 독자에게 상상할 기회를 주신다고 생각할게요. 하하. 그럼 곧장 묻지요. 오타마님은 나중에 오카다와 재회하십니까?

오타마 음, 이 작품을 쓴 작가 개인사와 연관된 질문인가요?

마플 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작가 모리 오가이님이 곧 오카다 자신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작품 끝날 무렵에 “독자는 쓸데없는 억측은 하지 말길 바란다”라고 요청하지만 그 말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이 작품을 쓴 작가와 작품에 나오는 오카다는 도쿄 의대 출신이고, 둘 다 독일 유학 경험이 있고, 작가와 살던 첩 이름에 오타마님과 같은 한자인 구슬 옥(玉) 자가 들어간 '고타마세키(兒玉せき)'라는 이름도 우연은 아니라고 봐요. 어떻게 보세요?

오타마 구슬 옥(玉) 자는 아들자(子)와 같이 당시 여성 이름에 많이 썼습니다. 여기서 제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 작품과 작가 개인사 연결이 결정되는 건 아니죠? 다만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작가가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제가 맞다, 아니다 하는 식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작품에서 저는 고리대금업자 스에조 첩이었어요. 아시다시피 오카다님과는 무엔자카 언덕에서 헤어졌습니다. 오카다님이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날 연못에서 기러기를 잡아 친구들과 구워 먹고 다음날 일찍 작별 인사도 없이 가버렸죠.

마플 그래요, 이름은 우연이라고 치고요. 오카다와 작가 모리 오가이님 두 사람은 도쿄 의대생이고, 독일 유학을 다녀왔고, 게다가 작가는 고타마세키가 열여덟 살 때부터 같이 살았잖아요. 아무래도 자전적 이야기에 무게가 실리지 않습니까. 이 작품에서 오타마님도 열여덟 살 때 스에조 첩이 되었고요. 고타마세키는 작가 오가이 첩이 되기 전에는 순사와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타마님도 이 작품에서 스에조 첩이 되기 전에 순사와 살았었잖아요.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오타마 제가 순사와 1년 정도 같이 살았던 건 사실입니다. 반강제로 한 첫 결혼이었죠.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남자였는데 총각처럼 저에게 속였어요. 아버지와 둘이 살던 저는 학교도 변변히 못 다니고 아버지가 길에서 엿을 팔아 겨우 생활했어요. 그러다가 순사가 저에게 반해 결혼해 달라고 졸랐지요. 안 해주면 어떤 불이익을 줄 것처럼 안 좋은 소리도 들었고요.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순사 정도면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당시 사회적 신분으로 중간 정도 대우받았기에 결심했습니다.

마플 요즘으로 치면 정규직 공무원이었던 거죠. 말단이지만 생활이 일정 수준 보장되고요. 생활고에 시달리는 오타마님에게는 솔깃할 조건이었겠네요.

오타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 결혼 생활은 힘들었어요. 그 사람이 저와 결혼한 이유는 오직 잠자리 때문에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면서 성욕을 해소할 의도였던 것이지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이 먹은 순사가 그것도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 왜 나이가 한참 어린 저와 살림을 차렸겠어요. 게다가 돈도 주지 않아서 궁핍한 생활은 여전했어요. 그 사람은 자기 부인이 사실을 알고 나자 저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마플 이런, 정말 죄송합니다. 안 좋은 기억이실 텐데 작품과 작가를 연결하다 보니 그만 실례했습니다. 이제 순사 얘기를 떠나 스에조 얘기를 좀 할까 하는데 마음이 안 좋으시다면 건너뛰겠습니다.




오타마 아닙니다. 스에조 얘기를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순 없어요. 비록 스에조도 순사처럼 자기 정욕을 채우는 대상으로 저를 첩으로 들였지만, 저에게 잘해줬잖아요. 처음에는 새 옷을 사 주는 대신 전당포에서 저당 잡혔던 옷을 헐값에 사줬지만 살림을 차리고 나선 따로 사시는 아버지 생활비까지 대줬잖아요. 연로하셔서 더 이상 엿장수를 못 하시게 된 상황에서 저는 그 점이 고마웠어요. 사실 순사와 결혼했던 것도 늙은 아버지에게 더 이상 가정경제 짐을 부담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이었지요. 스에조 첩이 된 것도 그가 좋다기보다 돈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요. 아무렴 첩이면 어떤가,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제가 돈 때문에 남자를 선택한 건 도덕적으로 욕먹을 일일지도 몰라요. 어떤 사람은 어린 딸인 제가 희생해서 아버지가 편안해졌다고 아버지를 욕할지도 모르겠어요. 무능하고 뻔뻔한 아버지라고 비난하면서요. 그래도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제가 몰상식한 인간인가요?

마플 그럴리가요.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일, 자신이 처하지 않은 상황,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쉽게 속단하고 판정하려는 마음이 있어요.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보는 거죠.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여성들의 삶은 대개 비슷하더군요. 말만 근대화였지 당시에 일본 사회 인식 수준은 봉건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지요. 조선도 마찬가지였고요. 여성의 희생을 공공연하게 강요하거나 숙명처럼 여긴 시대였습니다. 오타마님이 그런 상황에서 정식 결혼할 가능성은 적고,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가난한 계층과 결혼하지 않았을까요. 신분 세습제는 폐지되었지만 경제 수준과 직업으로 새로운 신분 체계가 정립되던 시기였잖아요. 제가 아는 오타마님은 비록 첩살이를 하셨으나 자신의 사적 영욕을 위한 선택이 아닌, 늙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다고 봐요. 다만, 이걸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오타마님 아버님은 여느 아버지처럼 딸이 첩살이를 하지 않길 바라셨어요. 당신이 마흔다섯 살에 늦게 본 귀한 딸이잖아요. 금지옥엽인 거죠. 아내마저 일찍 병사하고 어린 딸과 늙은 아버지가 의지하며 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중에 스에조가 좋은 집과 하녀를 구해줬지만 며칠에 한 번씩 찾아오는 딸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부녀가 가난해도 매일 웃는 낯으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을 그리워했지요. 물론 스에조가 오타마님께 하녀도 붙여주고 좋은 옷도 사 주면서 친정 나들이도 허락해서 자주 찾아갔지만요. 아참, 고급 양산도 사 줬군요.

오타마 그 양산을 쓰고 아버지 집을 갔었지요. 스에조가 처음부터 저에게 잘해 준 건 아니에요. 아버지와 저의 결혼 예복을 맞춰주고서는 돈을 계산하지 않았어요. 허긴 그렇게 돈을 벌면서 유일한 낭비라고는 메밀국수 사 먹는 정도였던 사람이니까요. 게이샤를 찾거나 요릿집에 술 먹으러도 안 다녔던 사람이에요, 스에조는. 오직 제 하얀 살결만 탐내서 거의 매일 밤 찾아왔지만 하룻밤도 안 자고 허둥지둥 갔어요. 중매쟁이가 홀몸인 대사업가라고 거짓말해서 이 결혼도 속은 거지요. 제가 하는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상자에 키우는 방울벌레가 우는 소리처럼 사랑스러운 지저귐" 정도로만 저를 대했어요. 자기의 성적 탐닉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우울했어요. 인격체가 제거된 그런 기분이었어요. 두 번이나 그런 남자를 만나서 제 운명을 한탄하다가 오카다 같은 예의 바른 남자는 제 마음을 단박에 흔들어 놓은 거지요.

마플 "상자에 키우는 방울벌레가 우는 소리처럼 사랑스러운 지저귐"은 이 작품에서 '새장에 갇힌 새', 곧 오타마님을 가리키죠. 아내에게 첩 살림을 들킨 스에조가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집을 나와서 홍작 한쌍을 사서 오타마님께 주지요. 이 홍작 한쌍은 결국 오카다와 오타마님이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됩니다. 이 작품에서 새는 중요한 상징이에요. 제목조차 조류인 기러기였고요.

오타마 그렇군요. 매사에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스에조였기에 홍작 한쌍을 사 갖고 왔을 때 조금 놀랐어요. 스에조는 제가 외출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집에서 화초처럼 꾸미고 앉아 얌전히 자기만 기다리기 바랐지요. 저는 '숨겨진 여자'였잖아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어요. 오직 자기만을 위한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아버지 집에도 짧은 시간 안에 다녀왔지요. 스에조가 제가 집에 없을 때 언제 올지 몰라서요. 홍작 한쌍은 무슨 상징이라고 여기세요?

마플 구슬(玉)은 돌아다니면 상하거나 깨지죠. 손바닥에 두고 조물락조물락 만질 대상입니다. 아내와 다르게 첩은 남편과 동등한 입장에서 가정을 꾸리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귀속된 처지이죠. 남편에게 수동적 태도를 요구받잖아요. 대신 아내보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더 많이 얻기도 해요. 아내와는 다르게 가풍을 계승할 필요도 없고 책임부담이 없으므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취하기에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대가가 구속이지만요. 오타마님 이름에 구슬 옥(玉) 자가 들어간 건 죄송하지만 이런 운명을 예감한 작명이지 않았을까요. 흠, 제 짐작으로는 이 작품에서 홍작 한쌍은 오타마님과 오카다님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스에조는 자기와 오타마님을 투사했겠지만요. 후후


무엔자카((無緣坂) 언덕


오타마 그런데 새장으로 뱀이 들어와 홍작 한 마리를 잡아먹었잖아요. 오타마와 오카다라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데 누군가요? 오카다님은 독일로 유학을 떠났잖아요.

마플 잠깐만요, 굉장히 예민한 답변이 될 수 있어요. 섬세한 오타마님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됩니다.

오타마 괜찮아요. 유카타 깃에 때가 타는 게 싫어서 머리카락이 닿는 부분에 수건을 접어 넣을 정도로 예민한 성격이긴 하지만 저는 체념에 익숙해요. 마을 생선 가게 여자가 사채꾼 첩 따위에게 생선을 팔지 않겠다고 했을 때에도 저는 돈에 팔린 제 운명을 원망했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나중에는 스에조와 잠자리를 가지면서도 오카다님을 생각하죠. 스에조와 헤어지지 않았으면서 오카다님을 만나러 가잖아요. 보기보다 대담한 편이에요.

마플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뱀에게 먹힌 홍작 한 마리나 오카다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기러기가 모두 오타마님을 뜻한다고 봐요.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엔자카((無緣坂)' 언덕 때문이에요. 무엔자카는 인연이 없는 장소, 즉 이 작품에서 오타마님과 오카다가 눈으로 봤지만 한마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곳이죠. 가난 때문에 첩살이를 하는 오타마님은 스에조가 만들어준 따분한 공간인 집에 구속된 상태였어요. 만나는 사람이래야 옆집 바느질 선생과 반찬을 주고받는 정도고요. 아버지는 딸에게 중국 소설  《금병매》 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재기 넘치는 첩실 아차노쓰보네(阿茶の局) 얘기를 들려주죠.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해 남편을 독살한 여자와 남편 참모 역할을 잘 한 총명한 여자를 차례로 들려준 건 딸이 비록 첩이지만 남편에게 총애를 받아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겁니다. 그 와중에 오카다가 눈에 들어온 거죠. 오카다는 일본 최고 엘리트 양성 교육기관인 도쿄대 의대생이었어요. 이 작품을 내레이션 해서 들려주는 '나'에 따르면 오카다는 빼어난 미남이었다고 해요. 게다가 조정 선수라서 체격도 좋고, 공부도 상위권에요. 시간에 맞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예의도 바르죠. 책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게요. 하숙집이나 학교에서 인기가 없을래야 없죠. 그냥 다 가진 남자예요. 이런 오카다를 지도교수가 그냥 놔둘 리가 없잖아요. 독일 유학 추천장을 일찌감치 써 두고 유학을 종용합니다. 오타마님과 너무 다른 삶이에요. 생각나세요? 오타마님이 목욕탕을 다녀오는 길에 오카다를 만났어요. 첫 만남은 그래요. 저녁 산책을 나가던 오카다는 일정 시간이 되면 오타마님 집 앞을 지나죠. 그리고 창 안쪽에서 밖을 내다보던 오타마님을 보면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어요. 어느 날 창가에 걸어둔 새장 안에 뱀이 들어가 홍작 한 마리를 먹고 있을 때 때마침 지나가던 오카다가 뱀을 죽이죠. 여기서 저는 오타마님과 오카다님의 신분 차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이지만 그보다 뱀에게 먹히다 죽은 홍작, 오카다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기러기는 오타마님의 슬픈 인생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집에만 있던 오타마님이 지나가던 오카다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연정은 스에조에게 발칵될 위험이 크지요. 한순간에 집과 돈을 다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오카다가 죽인 뱀은 신화에서는 성욕, 욕망을 상징합니다. 성욕에 사로잡혀 오타마님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스에조가 뱀이라면 천한 첩살이를 하는 오타마님을 인격을 가진 상대로 존대하는 오카다는 오타마님을 스에조, 즉 뱀에게서 지켜줄 뻔했던 것이죠. 물론 이 작품에 따르면 한발 늦어 뱀이 홍작을 먼저 먹어버렸지만요. 기러기는 정말 운이 나빴던 거예요. 오카다가 장난 삼아 던진 돌에 죽었어요. 오카다는 오타마님 집 앞을 지나면서 평소 습관대로 예의를 차렸던 것뿐이고 뱀을 죽인 것도 목격했기 때문이지 오타마님을 연모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순사나 스에조처럼 육욕을 밝히는 남자였는지는 알 수 없어요.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생기면 왜 하필이면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의지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지요. 죽음이건 사랑이건. 우리는 그런 일을 운명의 장난이라고 부릅니다. 서글프죠. 오타마님과 오카다는 어긋난 거예요. 시대와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어요. 무엔자카 언덕의 스쳐 지나감 이후 궁금했어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실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오타마 저와 오카다님은 어긋난 사랑이군요. 아니아니, 저 혼자만의 연모였네요. 그럴 수 있죠. 당시 저는 몹시 외로웠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심적으로 의지할 상대가 절실했어요. 결론은 인연이 아닌 짧은 만남이었네요. 후유증이 있을까봐서 이 대담 초반에 저에게 잘 지냈냐고 물으신 거군요. 저는 스에조와 헤어져 다른 사람 첩으로 잘 살았어요. 경제적으로 나쁘지 않았고, 남편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 두 아이를 낳았고요. 오카다님은 비록 기러기를 구워 먹고 아무 말없이 독일로 떠났지만 스에조와도 나쁘게 헤어지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오카다님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제 가슴에 깊이 박혔던 연정을 혼자 그리워하느라고 속앓이는 했지요. 사랑, 그거 참 고약해요.




마플 기러기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그 짝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지고지순한 연정이죠. 오타마님 가슴에 오카다가 각인된 이유를 작가 오가이가 암시한 것은 아닐까 싶네요. 오카다는 오타마님의 순수한 연모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직지인심(直指人心) 하지 않았던 거죠. 이런 무심함은 기러기가 돌에 맞아 죽자 오카다가 한 말에서 드러나요. "나는 그냥 기러기가 있는 곳을 향해 던졌는데, 불행한 기러기도 있군" 외람되지만 제가 보기에 오카다는 이성을 가장한 이기적 인간으로 비칩니다. 죽은 기러기를 불쌍하게 여기기는커녕 술안주로 삼았잖아요. 작가 오가이는 근대적 이성을 이런 몰인정으로 비유한 듯싶어요.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이런 속담이 있어요. "재미 삼아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는다"

오타마 아, 적절한 속담이네요. 미스 마플은 아직도 이 작품의 '나'와 오카다와 작가 모리 오가이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세요?

마플  네. 모든 정황이 그것을 가리키죠.

오타마 오카다님이 독일에서 돌아와 저와 살았다는 거네요?

마플 추리기법으로 말하면 이처럼 일치되는 게 많을 경우 정황 증거라고 합니다. 작가 오가이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 후에 10여 년을 혼자 살다가 재혼했는데 이 10년 동안 고타마세키와 살았다고 해요. 아이도 둘 낳았고요. 그리고 다른 여자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지요. 고타마세키가 먼저 죽었고 오가이는 이 작품을 써요. 작품에서나마 자기가 좋아하던 첩을 그리워한 게 아닐까요. 오타마님의 남편이 누구셨든 간에 그것보다는 오타마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타마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의 완성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더군요.

마플 저도 잘 모릅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보내고 가진 것 많이 없어도 욕심부리지 않고 보잘것없어도 자기 나름대로 성취감을 맛본다거나 그런 게 살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이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서 피곤하지만 돌아갈 집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강아지나 고양이만 떠올려도 지하철에서 미소를 짓는 일 같은 거죠. 사랑의 완성이라는 건 글쎄요, 사랑은 고통이죠. 인내와 이해가 필연적인. 큐피드도 어쩌지 못했잖아요. 하하하

오타마 언제 한번 미스 마플의 사랑을 들어볼 기회가 왔으면 싶어요. 그때 불러주세요. 후후후

마플 헛, 그럴 리가요. 저는 남의 연애를 듣는 것으로... 하하. 오늘 대담을 마치기 전에 기러기를 잠깐 얘기하죠. 한국에서 기러기는 늦가을 철새입니다. 곧 겨울이 다가오고 추위가 들이닥치고 한 해가 끝나는,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죠. 일본에서도 유명한 하이쿠가 있어요. 기러기 울음/오랫동안/하늘에/가득퍼지네(雁の声/しばらく/空に/滿ち-高野素十) 다카노 스주 (1893~1976)라는 시인이 썼다고 합니다. 만약에 고등어조림이 저녁밥상에 올라오지 않았으면 기러기는 죽지 않았겠지요. 아닙니다, 다 부질없는 가정입니다.

오타마 결국 그날 저녁 고등어조림이 하숙집 저녁 반찬에 나오면서 기러기 운명이 결정된 거군요. 오늘 제 속내를 많이 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였어요.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플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할 수 없는, 그러나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하고 싶은 그런 말들이 있지요. 긴 대담 시간 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오카다님이나 작가 모리 오가이님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하하하


*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보냈다 : 목역이송지(目逆而送之)-《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마플 합장(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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