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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Nov 27. 2023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중편소설 《설국(雪國)》 을 1935년부터 1947년까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연재한다. 12년 동안 띄엄띄엄 발표하다가 1948년 소겐사(創元社)에서 단행본으로 펴냈다. 도쿄에서 무용 칼럼을 쓰는 시마무라는 글에 매진하겠다는 이유로 기차를 타고 동북부 온천 지방 ‘유자와(湯澤)’를 찾아간다. 온천여관에 여장을 푼 첫날 만난 고마코는 시마무라와 점점 친해지면서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인터뷰어 미스 마플은 작가 가와바타, 주인공 시마무라와 고마코를 초대해 대담을 나눈다.




마플 안녕하세요!

가와바타 네, 다시 뵙습니다.

마플 오늘은 눈이 내리기 직전처럼 하늘이 뿌옇게 흐렸는데 춥지는 않으셨는지요? 고마코님은 무척 만나고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시마무라님은 소설에서 다 밝히지 않은 속마음을 푸실 것 같아 흥분되는데요.

시마무라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에서처럼 말을 아끼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당사자는 공개장소에서 감정을 신경 써야 하니까요.

마플 작가님과 저, 고마코님과 셋이서 대담을 나눌까 싶었는데, 당사자인 시마무라님이 참석하시면 대담에 생기가 돌지 않을까 싶어서 요청드렸어요. 이 작품이 발표된 지 80여 년이 되어가므로 이젠 누구를 의식하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시마무라 저희는 오래전 인물들이니 신경 쓰진 않겠지요. 제 이름조차 잊은 독자들도 많을 테니까요. 그러나 어떤 감정은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물웅덩이처럼 가슴에 고여 있기도 하지요.

마플 네,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시마무라님이 살짝 불편하신 듯하여 제가 주최 측을 대신해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립니다. 고마코님은 어찌 지내셨나요?

고마코 안녕하세요, 마플님. 저는 늘 그렇듯이 그럭저럭 아주 나쁘지 않고 아주 좋지도 않게 지냅니다. 시마무라님을 여기서 만나게 되어 여러 감정이 드는 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 재회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지금에 와서 못할 말이 뭐가 있겠어요.

마플 진행자인 저로서는 작품 주인공이신 두 분을 모시게 되어 좋습니다만, 두 분 감정은 저와는 다르실 테니 진행하면서 분위기를 맞춰보겠습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한국에서 《설국》은 굉장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가와바타님 대표작으로 회자되지요. 작가 가와바타님은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요.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잖아요. 그럼에도 《설국》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유명한 작품이라서 그런가요? 설국은 가와바타, 가와바타는 설국이라고 정도로 없는 관계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설국》을 처음 읽었는데요. 핸드북이라고 해서 삼중당 문고판 작은 책에 《천우학(千羽鶴)》과 함께 수록했습니다. 《설국》 제목이 궁금합니다. 눈 나라이잖아요. 한자로 나라 국(國)자는 대개 한국, 미국, 영국 하는 식으로 국가명을 지칭하는 명사로 쓰는데 《설국》 공간배경은 일본이죠. 지명과 관계있는 설명인가요? 이 질문은 작가님이 받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와바타 아, 독자들이 그런 오해를 가질 수 있겠군요. 노벨문학상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게 맞습니다. 작가가 쓴 작품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주는 상이지요. 《설국》은 당시에 여러 나라에서 출판했기에 한국에서 인기는 소문으로만 들었지 자세히는 잘 몰랐습니다. 말씀하신 제목에 들어간 나라 국(國)은 일본식 지명을 호칭한 것입니다. 첫 문장을 보면 이해 하실 겁니다. “國境の長いトンネルを拔けると雪國であった” 한자 '국경'과 '설국'에서 나라 국(國)자를 썼어요.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단행된 1868년 이후에도 지방은 옛 지명으로 불린 곳이 많았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전 막부시대 영주들이 차지한 지역을 국(國 : こく: 고쿠)나 번(藩 : はん: 한)으로 불렀지요. 무사집단을 거느린 영주들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고 개별행동을 취하면서 세를 떨쳤습니다. 권력행사 경계가 국경이었던 셈입니다. 막부 시대 국(國)이 메이지 이후 현(縣)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나 그건 문서상 행정구역 명칭이고 실제 사람들은 지역을 구별해서 말할 때 여전히 나라 국(國)자를 썼습니다.

마플 네, 작가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갑니다. 안 그래도 민음사 판본 각주에 이런 주석이 달렸더군요. “군마 현(群馬縣)과 니가타 현(新潟縣)의 접경을 말한다. 본문의 (국경)은 모두 이 뜻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러면 제목 ‘설국(雪國)’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라고 해석하면 되겠네요.

가와바타 그렇습니다. 《설국》 장소 배경인 유자와는 눈이 많이 내립니다.

마플 저는 첫 문장이 정말 인상 깊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도쿄에서 달려온 기차가 어두컴컴한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눈에 덮인 산골마을이 나타나는데 눈 때문에 갑자기 시야가 확 밝아지는 모습입니다. 새하얀 눈세상이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펼쳐지는 광경입니다. 제가 오래전 청량리에서 영동선 기차를 타고 강원도 여행을 다닐 때 꼭 이런 풍경이었어요. 강원도는 태백산맥이 한반도 등줄기처럼 솟은 산세라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거든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설국》 첫 문장은 워낙 유명해서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도 한 번은 들었음직하지요.  

가와바타 기차로 눈고장을 여행할 때는 가슴이 설레지요.

마플 어우, 그렇다마다요. 기차 창 밖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경치는 아름답고 설렙니다. 눈을 뗄 수 없죠. 기차가 눈길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가 생각납니다. 당시 소련 정부의 정치탄압 때문에 1957년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출간한 《닥터 지바고》도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지요. 물론 소련정부는 파스테르나크에게 수상거부를 압박했고 작가는 결국 수상 거부 의사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가와바타 파스테르나크는 수상을 못했겠군요.

마플 아니요. 1988년 명예가 복권되고 1989년 파스테르나크 장남이 대리 수상했어요.

가와바타 문학이 위대한 이유는 시대를 넘어서 영혼에 각인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플 그래서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은 《문학은 자유다》에서 “문학은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권이다.”라고 말합니다. 달리 붙이고 뗄 필요 없는 명언입니다. 상상하는 자유, 행동할 자유, 이런 자유면 인간에겐 다인 거죠. 자, 그럼 《설국》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내용을 축약해서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도쿄에서 잡지에 무용 칼럼을 쓰는 시마무라님은 동북부 온천 지방 유자와(湯澤)를 세 번 찾아가요. 시마무라님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직업이라기보다는 취미 정도 수준으로 춤과 관련된 불어 번역을 합니다. 이런 분을 가리켜 일본에서는 고등유민(高等遊民)이라고 하더군요.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도 작품에서 고등유민을 많이 등장시키죠. 시마무라님 성격은 유순하고 인정도 많지만 현실도피적이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온천 지방 여관에 여행을 한 이유도 겉으로는 한적한 곳에서 번역에 집중할 계획이었으나 따분한 도시 생활로부터 벗어나고픈 속내였지요. 아내는 다정하고 온화한 사람이지만 어쩐 일인지 시마무라님은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뜨뜻미지근해요. 마치 애정이 없는데 부모님이 정해준 중매결혼한 부부처럼 결혼생활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안정적이라서 따분한 일상, 생계를 위해 수고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넉넉한 경제사정, 인생에 의외가 될 사건의 도화선이라든가 활력이 될 요소가 없는 맹탕입니다. 긴장도 없고, 자극도 없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보니 얼마나 일상이 지루하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이런 평행성 같은 삶을 동경하지만 저는 이 지루함이야말로 시마무라님을 유자와로 끌어낸 요인으로 진단해 봅니다. 유자와 여행은 시마무라님 일상에 유일한 일탈이 아닐까요?


그래서 온천이 있는 그 먼 산골마을 유자와를 갑니다. 왜 도쿄에서 멀리 갔을까 생각해 봤더니 역시 도쿄라는 하품 나오는 지리멸렬한 공간으로부터 탈출은 새로운 기분, 뜻밖의 사건을 제공해주지 않겠어요? 시마무라님은 온천장에서 두 명의 여인과 인연을 가집니다. 유자와를 방문하는 첫 기차에서 새까만 눈동자에 슬픈 얼굴이 인상적인 요코와 온천여관에 여장을 푼 첫날 만난 게이샤 고마코님입니다. 시마무라님은 요코가 첫눈에 끌렸으나 병색이 짙은 애인이 있음을 알고 속으로만 호감을 갖고 맙니다. 반면에 고마코님은 시마무라님을 처음 만나 후 일방적으로 혼자 좋아하지요.


고마코님은 도쿄에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예감하면서도 연정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시마무라님은 그런 고마코님에게 겉으로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하지만 속마음을 선뜻 드러내지 않아요. 작가 가와바타님은 도시 출신이자 지식인 시마무라님을 침착하게 묘사하고, 산골 온천마을 가난한 게이샤 고마코를 직설적이면서 뜨거운 사랑의 화신으로 그리면서 두 사람의 만남을 허무하게 맺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왜 나에게는 말을 붙이지 않을까 기다리신 고마코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고마코 후후. 아까 기차가 눈고장을 달리는 장면은 설레신다고 하셨는데요. 저에게는 설레면서 가슴 한쪽이 촉촉해지는 슬픔 같은 게 있어요. 제가 산촌마을에서 일을 했고, 눈길을 걸어 유자와 역에 자주 나간 일을 기억하시나요?

마플 그럼요. 여기 계신 작가님과 저는 당연히 기억하고요. 시마무라님도 아실 것 같은데요?

고마코 아뇨. 시마무라님은 겨울이면 거의 매일 제가 역에 나간 일을 어쩌면 모르실지도요.

시마무라 처음엔 몰랐는데 유자와에 세 번째 갔을 때는 역사를 두리번거리며 고마코님을 찾았지요. 혹시 나와 계실 것 같아서요.

가와바타 시마무라님은 저처럼 무심한 성격이라서 고마코님의 연정을 얼른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요.

마플 잠깐만요. 그보다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작가님이 시마무라님을 대변하셨어요.

가와바타 이러면 마플님이 시마무라님과 제가 동일인이냐고 질문하실 것 같은데요. 하하. 이 또한 독자에게 상상력을 양보하겠습니다.

마플 아니십니까? 가와바타님은 《이즈의 무희》에서도 자신의 정체와 등장인물과의 관계를 모호하게 말씀하셨었요. 1999년 1월 31일 고다카 기쿠라는 분이 생을 마쳤는데요. 이분은 유자와에 글을 쓰러 가신 가와바타님을 스무 살이었던 1934년에 만난 분입니다. 당시 게이샤였던 기쿠님은 책을 즐겨 읽었고 오랫동안 일기를 썼습니다. 나중에 가와바타님이 《설국》을 연재하면서 장안에 화제가 된 이후 기쿠님이 그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난 일에 당황해하자 가와바타님은 기쿠님에게 1회 연재본인 초고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마무라님과 고마코님 인연이 많이 떠오른 일화인데요. 이건 사실로 드러난 이야기니까 부정하시기 힘드실겁니다. 이걸 독자의 상상력으로만 몰고 가기에는 납득이 안 되는데요.

가와바타 흠, 제가 마플님 유도에 걸려든 기분입니다. 이래서 작가와 평론가는 만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마플 실례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씀드릴게요. 우선 시마무라님은 도쿄에서 서양 무용 칼럼을 쓰시는 작가입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그리 유명한 분은 아니지만 가와바타님처럼 문학과 관련 있는 직업을 가지셨고요. 두 번째 정황은 시마무라님은 고마코님과 만나기 이전부터 허무주의자 분위기가 짙습니다. 앞에서 무심한 성격이라고 하셨는데 무심함은 허무입니다. 허무는 모든 것을 헛되이 여긴다는 심드렁하고 무의미한 인생의 관조를 뜻하지만 한편으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심무괘애(心無罣碍)와도 상통한다고 보거든요. 무심은 말 그대로 마음이 없다, 마음을 두지 않는다 라는 말이죠. 마음에 구속됨 없는 흐르는 물 같은 상태, 이러면 물의 철학자 노자까지 소환해야 해서 여기까지만 제 부족한 식견을 말씀드립니다만. 사실 시마무라님은 무심한 게 아니라 무심한 척하셨던 것으로 의심이 드는데요. 기차에서 요코님과의 첫 만남 이후 저는 시마무라님 가슴에는 요코님이 크게 자리잡았다는 인상을 몇 대목에서 받습니다. 이 작품에서 허무를 말할 때 가장 극적인 장면은 마지막 화재현장에서 요코님의 죽음이고요. 그러니까 시마무라님 가슴에 품은 사람은 요코님이고, 고마코님은 그걸 눈치 챘기에 더 애닲았던거죠. 결국 요코님을 소설에서 장렬하게 죽이면서 시마무라님의 허무는 완성되었다고 봐요. 도쿄에서부터 가졌던 권태의 끝인 셈이죠. 어쨌든 시마무라님은 도쿄, 엘리트, 작가라는 직업, 무심함, 즉 허무주의자. 이렇게 저는 가와바타님과 매우 비슷한 카드패처럼 키워드를 나열해 봅니다.

시마무라 반야심경 한구절인 심무괘애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얽매임 없는 자유로운 마음 상태입니다. 사실 저는 따분한 집에서 지내기에는 답답해 글쓰기를 핑계로 온천마을을 찾아갔지요. 저라고 왜 구속됨이 없겠습니까. 남들과는 다르게 시니컬한 성격이 조금 더 강할 뿐입니다. 가와바타님이 작품에서 저를 분신으로  연출하신 거라는 소문은 알고 있어요. 이런 무덤덤한 성격도 감정기복이 큰 고마코님을 만나면서 조금 흔들렸던 건 사실입니다.

마플 그러면 작가님과 시마무라님의 동일성을 아주 부정하진 않은 것으로 이해할까요?

가와바타 시마무라님 성격은 저와 일견 상통합니다. 이런 이유로 차갑다, 인정이 없어 보인다, 속을 알 수 없다는 말들을 들었지요. 소설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직업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마플 작가는 글자로 말을 대신 해야 하므로 오해도 많이 사고 머리가 복잡한 직업이네요. 고마코님은 시마무라님의 이런 무심함을 정이 없는 모습으로 생각하나요?

고마코 그래요. 시마무라님은 도쿄로 돌아가서 엽서 한 장조차 보내지 않던 분입니다. 겨울 내내 역에 나가서 기다린 제 마음을 전혀 몰랐지요. 그 애타는 그리움과 불안을 시마무라님은 짐작조차 못했잖아요. 그러고도 1년이나 지나 느닷없이 유자와로 다시 찾아왔지요.

마플 자, 시마무라님은 두 손을 모으시고 듣기만 하는데요. 고마코님에게 어린 게이샤를 소개해 달라고 조르던 모습 기억하시죠? “젊은 애가 좋아. 수선스럽게 떠들지 않고 맹하면서도 닳지 않은 애가 좋아” 정말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고마코님에게 질투를 자극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들은 고마코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 안 했나요? 게다가 고마코님과는 말벗으로만 지내고 싶다고 말했지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지. 친구 사이로 해 두고 싶어서 자네는 유혹하지 않는 거라구.” 고마코 님을 이성의 감정으로 좋아하면서 고마코님이 받을 상처가 안타까웠던 건 아닙니까?

시마무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런 대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짓는 독서 방식은 선입견이나 왜곡된 독서 감상을 양산한다고 보거든요. 저는 감정이 자제된 건조한 비평을 좋아합니다. 마플님이나 고마코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신선한 환경이 필요해서 유자와를 간 건 맞습니다. 제 아내는 정숙한 양처입니다. 그러나 제 글쓰기나 예술을 대화 나눌 정도로 문화 소양은 없어요. 저도 욕정이 있는 사람이고, 저급한 욕정을 망설임 없이 드러내는 모습은 고급문화와는 분별되지요. 고마코님은 춤과 악기연주에 뛰어난 예인입니다.

마플 게다가 미녀이고요.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 가냘픈 목덜미, 미인이라기보다 깨끗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어 사전을 읽을 정도의 지적 수준은 안 됐죠. 일본 전통문화를 계승한 게이샤, 두메산골에서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는 가난한 여자였으므로 시마무라님은 욕정과 심미적 대상 사이에서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만

고마코 저는 나중에 예인을 포기하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술 손님 시중을 드는 기생이 되었지요. 춤선생 아들이자 예전의 약혼자인 병든 남자 치료비를 대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땐 정말 술에 취해 살았어요.

시마무라 제가 고마코님 마음을 왜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는지요? 늦은 밤 연회가 끝나거나 이른 새벽에 빗물에 젖은 조릿대 숲을 헤치고 저를 찾아온 고마코님. 술에 취해서 오고, 피곤에 지친 몸으로도 여관으로 저를 보러 왔어요. 고마코님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현실을 저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겁니다. 마플님도 알다시피 고마코님은 책임감 강하고 깔끔한 사람입니다. 제가 잠든 사이에 방을 청소한 적도 있고, 제가 욕탕에 들어간 사이에 방문 틀이며 책상다리까지 꼼꼼하게 걸레로 먼지를 닦았어요. 나중에는 미주알고주알 별의별 이야기를 다 얘기했지요. 아내가 남편에게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말에요. 고마코님은 저와 부부 사이처럼 지내고 싶은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소를 잘하는 고마코님에게 여러 번 핀잔을 던졌지요. 여염집 여자처럼 군다고요.

마플 말씀하신 것처럼 고마코님은 술이나 따르는 그저 그런 게이샤가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일기를 쓰고 열대여섯 살부터 읽은 소설을 하나하나 적어 두었는데 그 공책이 열 권이나 된다는 사실에 시마무라님도 놀랐잖아요. 산간벽촌에서 가난한 게이샤로 살 것 같지만 고마코님은 자기만의 삶을 만들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시마무라님이 “헛수고”라면서 한숨 나오는 말씀을 했습니다. 헛수고라뇨! 남의 삶을 어떻게. 참 얄미운 말씀입니다. 흐흐흐.




고마코 제 일기나 소설 기록은 시마무라님 같은 유약하고 정 없는 도쿄 인텔리들이 떠들어댄 문학이나 예술보다 수준이 낮은 통속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궁금하네요. 통속은 저속하고, 저속한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서 헛수고인 겁니까? 그러면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뭐 하러 그렇게 글을 쓰나요? 대충 살죠. 시마무라님이 자신의 허위나 허무의식을 과대 포장하는 미의식으로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게 아니라면 통속을 하위로 둘 수 없습니다. 아까 욕정을 저급하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알기론 욕정은 통속이고, 인간 본능입니다. 인간사 이야기가 거시적 아이덴티티로 결정되나요? 천만에요.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제가 보기엔 통속이야말로 인간사를 결정합니다. 정의, 자유, 행복, 사랑, 예술, 문학, 권력, 전쟁, 죽음, 살인, 기술, 탐험 이런 역사들은 통속적 요소인 사소한 구성이 엮어서 결정돼요. 그러니까 통속이 곧 인간사입니다. 이쯤 하면 시마무라 님은 속마음을 더 이상 숨기지 마세요.

시마무라 고마코님 말씀대로 저는 고마코님 일기나 기록을 한 번도 비하하지 않았지요. 일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一寸の虫にも五分の魂” 한치의 벌레에도 오푼의 영혼이 있다는 뜻이죠. 겉으로는 짐짓 차가운 척했어도 첫 만남 이후로 고마코님을 잊지는 않았어요. 고마코님과 친구로만 지내고 싶다고 말한 건 저를 향한 고마코님의 연정이 받을 상처가 걱정되어 그런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이런 고백은 늦었지만 저는 마플님 추정대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고마코님을 생각하면서도 가정을 포기할 수 없잖습니까. 인간은 어떤 사태에 직면하는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상황 앞에서 불안을 해소할 출구가 필요하죠. 자신을 향하여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에 흔들리고 그 선택이 괴로운 전망을 보여준다 해도 내 의지대로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마플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감정에 좌우되어 정말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일들이 있더군요.

가와바타 확신에 찬 일도 정확하게 예정되지 못하는 게 세상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오죽하겠습니까. 시마무라님은 도쿄로 돌아간 이후 약속했던 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편지도 하지 않고, 곧 만나러 오지도 않고, 무용 책도 보내주지 않았어요. 도쿄 남자 시마무라님은 그렇게 고마코님을 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두 번째 방문 때 여관에 짐을 푼 시마무라님은 지배인에게 고마코님이 아직 여기에 있냐고 묻습니다. 그날 밤 바로 고마코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요. 유자와로 향하는 기차에서도 줄곧 고마코님을 생각했었어요. 고마코님이 모르시는 것 같아 대신 알려드립니다.

고마코 분위기가 시마무라님이 저를 아꼈다는 방향으로 나아가네요. 당사자인 제 느낌으론 시마무라님에게 저는 산골마을에 있는 숨겨진 여자, 조금 연심을 품은 정도의 여자, 동침은 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추억으로 회상하기에 좋을 여자? 결과를 보면 그래서 가와바타님이 회상하는 전개방식으로 이 작품을 쓰셨고요. 뭐, 제 성격을 작품에서도 다 아시듯이 부정적 느낌을 지우기 어렵네요.

마플 잠깐만요. 진행자로서 분위기를 환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고마코님의 삶을 독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고마코님은 어려서부터 힘들게 살아왔어요. 《설국》을 남녀 간의 연정 문제로만 한정해서 이해하기는 싫습니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고마코님의 성격이나 힘들었던 사연을 아는 일은 작품을 흡수하는데 뛰어난 소재가 됩니다.

고마코 네, 너무 제 감정만 토로했습니다. 시마무라님의 담담한 태도를 보면서 고마코(駒子)라는 이름 그대로 변함없이 철없는 새끼말처럼 발랄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요.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도시로 가서 춤을 배웠어요. 춤을 배우다가 돈 때문에 열아홉 살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면 돈 걱정을 덜 줄 알았거든요.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죠. 남편은 일찍 죽고 저는 다시 돈 벌러 여기저기 다녀야 했어요. 술집에서도 일했고요. 항구에서 살 때 잠시 행복했던 것 같아요. 영화도 보고, 샤미센도 배우고, 소설도 많이 읽었어요. 그때를 돌아보면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짧고 나머지는 슬픈 일, 괴로운 일, 쓸쓸한 일뿐 인 듯싶습니다.

마플  고마코님을 생각하면 사는 일이 서글퍼집니다. 나중에는 게이샤가 되어 춤 선생 아들 병원비까지 댔잖아요. 시마무라님은 고마코님을 걱정했지요. 그런데 고마코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말했어요. “괜찮아요. 우리들은 어딜 가든 일할 수 있으니까요. 어디서 벌든 마찬가지예요. 속 끓일 것 없어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렸어요. 시마무라님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까 봐 짐짓 태연한 척하던 고마코님을 포근히 안아주고 싶었어요. 자존심 조금 버리고 도와달라고 하면 시마무라님은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정이 없어 보이지만 모진 남자가 아니잖아요. 고마코님은 모르실 거예요. 시마무라님은 당차게 말하는 고마코님의 속옷이 살짝 비치는 등살이 애처롭게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인다고 했어요. 고마코님, 시마무라 님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시마무라님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고 질책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시마무라님은 산에 가서도 고마코님을 생각하고, 지지미 짜는 마을에 산책 가서도 고마코님을 떠올렸어요. 고마코님과 떨어진 순간에도 고마코님을 생각하고, 고마코님이 처한 가난을 걱정하면서도 고마코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인생을 “덧없는 헛수고”로 여기는 허무주의자이지만 시마무라님은 섣부른 호의가 불러올 파국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고마코 그런가요? 허긴 시마무라님 속내를 제가 갑갑해만 했지 헤아리지 못한 면이 있어요. 어린애처럼 투정을 많이 부렸지요. 그만큼 의지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거든요. 제가 화가 난 건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에 저에게 “좋은 여자”라고 말한거에요. 그 말에 너무 괴로웠어요. 다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별 통보를 듣고 보니. 나중에 막 떼를 쓰듯 화를 냈지요. “울었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울었어요. 당신하고 헤어지는 게 두려워요. 하지만 이젠 빨리 돌아가 버리세요”              

마플 연인에게 “좋은 여자”라고 불러주는 남자는 이별을 말하는 겁니다. 고마코님도 그걸 눈치챘잖아요. 시마무라님은 당신이 아직 게이샤가 아니었을 때 처음 만난 이후 고마코님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어요. 이건 동의할 겁니다. 고마코님도 무덤덤한 시마무라님이 신뢰할만한 남자라고 여겼던 것이 아니었나요? 시마무라님은 술집에서 흔히 만나는 그렇고 그런 남자가 아니었지요. 여자 옷이나 벗기려 질척대고, 야한 농담이나 툭툭 던지며 능글거리고, 옆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붙들어두려는 무례한 남자들하고는 달랐지요.




가와바타 고마코님, 시마무라님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헛수고”를 고마코님에게만은 적용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알아요? 고마코님이 복잡한 곡을 독습해서 샤미센을 켜는 일도 그렇고 소설을 읽고 공책에 정리하는 일과 일기를 쓰는 일을 두고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녀 자신에의 가치로서 늠름하게 발목의 소리로 넘쳐흐르는 것이리라” 시마무라님은 고마코님이 씩씩하게 살기를 바란 것입니다.

고마코 시마무라님과의 추억을 나중에 차근차근 회상했더니 저에게 참 잘해 주셨어요. 가정을 가진 남자였으므로 저도 어쩌지 못했지요. 그 선을 넘지 않고 서로 잘 지켰다고 봐요. 불처럼 뜨거운 제 성정을 차분하게 다독여준 분입니다.

마플 이제 밀당의 고수인 고마코님이 감정을 어느 정도 푸신 것 같습니다. 긴 대담에 아까부터 시마무라님이 회중시계를 꺼내 보시므로 작품에서 인상 깊은 부분을 짚어 볼까 해요. 저는 《설국》은 남녀 간의 연정과 정리를 다뤘지만 가와바타님의 주옥같은 문장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평합니다. 시마무라님이 지지미 마을을 산책할 때 독자도 책장 이쪽에서 함께 눈길을 걷게 됩니다. 마치 로드무비처럼요. 가와바타님이 신감각파로 활동하신 이력처럼 정경과 정취 묘사가 지지미처럼 섬세해서 영화 <설국> DVD를 구해 몇 번이나 봤어요. 산책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오면서 읊조린 “지지미처럼 고요한 마음을 가진 눈이 차가운 설국의 여자”로 고마코님을 떠올리셨지요. 《설국》은 일본 전통문화 풍습이 남은 산골에 독자 시선을 묶어 두는데 그 대표적인 게 지지미(縮, ちぢみ)인 듯싶습니다. 새 쫓기 축제나 눈 쌓인 산등성이 풍경 묘사도 멋진데 저에게는 지지미가 어떤 은유를 가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고마코 피부를 비유한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도 투명한 피부와 결이 고운 옷감은 맥락이 같다는 점에서 지지미를 연상하게 되고요.


▲ 영화 〈설국〉에서 ‘지지미’ 바래는 장면


▲ 영화 〈설국〉에서 ‘지지미’ 바래는 장면


가와바타 영화는 언제 제작한 작품으로 관람하셨나요?

마플 1969년 오바 히데오 감독이 연출하고 이와시타 시마가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DVD입니다. 근데 고마코님 배역을 맡은 여배우 얼굴이 낯익어서 찾아봤더니 다다미쇼트로 유명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1962년에 만든 꽁치의 맛(秋刀魚の味)〉에 나오지 뭡니까. 광맥을 발견한 것처럼 놀랍고 반가웠어요.

가와바타 〈꽁치의 맛〉은 오즈 감독의 1949년 작품 〈늦봄(晩春)〉 과 1960년 작품 〈가을햇살(秋日和)〉과 함께 ‘딸 시집보내기’ 3부작이지요.

마플 그렇습니다. 저는 세 작품을 모두 봤어요. 밋밋하고 평범한 일상을 조명한 오즈 감독 작품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배우들도 배역에 잘 맞는 인물들이고요. 오즈야 워낙 유명하고 다작을 연출한 감독이라 작품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설국>을 만든 오바 히데오는 구글링에서 조차 검색이 안 되고 여주인공 이와시타 시마(岩下志麻(いわしたしま))도 결혼해서 남편 성을 따라 이름이 篠田志麻로 바뀐 것 같아요. 〈설국〉에서 이와시타 시마는 눈처럼 뽀얀 얼굴에 붉은 입술,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새초롬하니 열정이 많은 배역을 연기했잖아요. 〈설국〉 보다 7년 전에 찍은〈꽁치의 맛〉 에서는 앳된 얼굴에 신인티가 역력해 연기가 어색했는데 〈설국〉 에서는 눈짓 하나까지 연기가 능숙해졌어요. 이와시타 시마를 구글링 하면 한국 배우 이병헌과 찍은 기사가 뜹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기가 뛰어난 배우라고 칭찬했다고 해요. 노년임에도 호리호리한 몸매와 날렵한 얼굴선이 그대로더군요.

고마코 마플님이 영화를 소개해주셨는데 이와시타 배우님은 생존했나요?

마플 네, 구글링에서 보니까 1941년생으로 도쿄 긴자에서 거주하시는 것으로 나오네요. 많은 작품에 출연한 관록 있는 배웁니다. 저는 고마코님을 이 배우님이 맡은 건 신의 한 수였다고 봐요. 딱 고마코님 그 자체에요.

고마코 작품과 일치하는 분위기의 배우나 연기는 원작을 더 빛나게 해 주지요.

가와바타 제가 지지미를 고마코님과 등치한 이유는 지지미는 만드는 과정이 꽤 번거로운데 그 작업을 알기 위해서 직접 취재했습니다. “천이건 실이건 밤새 잿물에 담가 두었던 것을 이튿날 아침 몇 번이고 물로 헹궈서는 짜서 바랜다. 이것을 며칠이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흰 지지미를 드디어 마지막으로 바래려는 때에 아침 해가 떠올라 새빨갛게 비치는 광경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으며, 따뜻한 고장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옛날 사람도 적고 있다. 또한 지지미 바래기가 끝난다는 것은 설국의 봄이 가까워졌다는 기별이었을 것이다.”라고 본문에 썼습니다. 한겨울에 짠 옷감은 서늘한 기운이 깃들었으므로 한여름에 입으면 시원하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겨울에 짠 모시나 베를 여름에 입는 것 같아요.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고마코, 눈 위에 널어서 바래지는 지지미, 곧 다가올 봄, 이러면 이별이지요. 영화에서는 시마무라 상상으로 베틀에 앉은 고마코가 언뜻 비칩니다. 그만큼 지지미는 손이 많이 가는 천으로 고마코가 겪어온 시련도 이제까지 인생은 곡절 많았지만 담백하고 맑게 맺기를 바란다고 하면 어찌 생각하실지요.

고마코 그 당시에 저는 뜬금없이 왜 지지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작가님 설명에 해소되네요.

시마무라 “눈 속에서 실을 만들고, 눈 속에서 짜며, 눈의 물로 씻어, 눈 위에 바랜다. 잣기 시작해서부터 짜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것은 눈 속에서였다. 눈이 있으므로 해서 지지미가 있으니 눈은 지지미의 어머니라 하리, 하고 옛사람도 책에 쓰고 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마플 시마무라님이 고마코님과 헤어질 이유를 찾던 중 지지미 마을을 방문해서 하시는 독백이잖아요. 책에 따르면, 눈에 갇혀 있는 겨울 동안 여자들은 집안에서 지지미를 짠다고 해요. 겨울에 짠 지지미는 봄이 오면 장에 내다 팔기 시작하고 도쿄나 오사카, 교토 같은 큰 도시 포목도매상들이 몰려오죠. 지지미 끝단에는 옷감을 짠 사람 이름과 주소를 적은 꼬리표를 붙여 솜씨를 따져 급수를 매겼고요. 지지미 품질은 며느리를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고 하니 옷감을 잘 짜는 처녀를 며느릿감으로 꼽았던 사례를 보면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옷감을 잘 짜면 가계에 큰 보탬이 되므로 이재에 밝은 집안에서는 모시나 베를 잘 짜는 처녀는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갔다고 해요.

고마코 하루종일 틀 앞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니 얼마나 고되었을까요.

마플 그랬을 겁니다. 베나 모시를 심어 손톱이 뒤집어지도록 껍질을 벗기고 무릎이 짓무르도록 실을 꼬아 베틀에 앉아 날밤을 새는 여자가 며느릿감으로 환대받던 시대에 그 혜택을 누리는 대상에게는 돈벌이와 풍성한 문화를 제공했겠지요. 그러나 ‘맑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만든 사람이 흘린 눈물은 박물관에 가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지지미라는 옷감 이름이 통용되어서 원서를 찾아봤거든요. 원서에선 지지미를 ‘줄일 축(縮)’자로 썼어요. 모시(모시 풀(苧, からむし))나 베(베 마(麻, あさ))를 짠 다음 추가 작업한 옷감을 지지미라고 나옵니다. 직물을 가공해 크기를 줄어들게 만들면 섬유조직이 촘촘해지고 질겨지죠. 고마코님의 시련은 고마코님을 단련시켜 더 향상된 예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작가님의 바람이었을까요?

가와바타 이별의 아픔에 침잠되지 않고 고마코님의 성장, 성숙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련이 꼭 단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두 손을 모아 누군가를 또는 자신을 위해 간절한 기원을 하듯이 작가는 작품에서 이런 은유장치로 독자에게 다가가죠.




마플 이야기로서의 문학, 이야기가 주는 의미, 이야기의 힘을 문학에서 찾는 일은 결국 이야기를 하는 존재로써의 인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와바타님의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긴 대담을 마치기 전에 《설국》을 두고 하고 싶은 말씀들을 한 꼭지씩 전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느 분이 먼저 말씀해주실까요?

가와바타 저를 바라보는 고마코님과 시마무라님의 눈길이 뜨거운데요. 하하. 지지미를 가리켜 고마코님의 시련 끝의 맑은 삶을 헤아렸다면 ‘산돌림’‘몸울림’《설국》에서 살펴볼 비유입니다. 눈이 내리기 전에는 기온이 내려가고 하늘이 먹색으로 바뀌죠. 이 작품에서는 눈이 내릴 징조를 ‘산돌림’이라고 하고, 천둥이 치는 것처럼 산이 울리는 현상을 ‘몸울림’이라고 합니다. 마플님이 이 대담을 시작하면서 "눈이 내리기 직전처럼 하늘이 뿌옇게 흐렸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큰 눈이 내릴 징후로는 기온이 급강하하고, 작은 눈은 뿌옇게 흐리다가 이내 맑아집니다. 도쿄나 서울처럼 큰 도시에서는 눈 내리는 날씨 차이를 알아보기 힘듭니다만 시골에서는 먼 하늘까지 다 볼 수 있으므로 차이를 금방 알아챕니다. 자연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큰 눈과 작은 눈이 달라진다니 여러분도 이제 겨울에는 한번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플 “이 지방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쌀쌀하고 찌푸린 날이 계속된다. 눈 내릴 징조이다.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산돌림’이라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은 바다가 울리고, 산 깊은 곳은 산이 울린다. 먼 천둥 같다. 이를 ‘몸울림’이라 한다. 산돌림을 보고 몸울림을 들으면서 눈이 가까웠음을 안다.”라고 하신 대목이죠. 원서에는 산돌림을 ‘다케마와리(たけまわ.岳廻り)’라고 표기했고요. 산이 돈다는 표현이 멋있네요. 스노볼에서 산과 집이 빙글빙글 돌면 눈이 내리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날씨가 변한다는 건 기온, 바람, 일조량이 바뀐다는 뜻이니까 한 지역의 기후대를 형성하는 큰 산이 돌아갈 만한 징후입니다. 한국에서는 음악회나 홍보단에서 ‘산돌림’ 명칭을 쓴 곳이 있더군요. 웅장한 울림이라는 뜻이겠죠. 아쉽게도 몸울림 뜻은 사전에 없었지만 악기와 관련된 정보가 있어요. ‘울림’이 소리와 관계되므로 음악과 연결된 것 같습니다. 《설국》 원서에서는 몸울림을 ‘도나리(どぅな.胴鳴り)’라고 하네요. ‘창자 동(胴)’과 ‘울 명(鳴)’을 써서 ‘몸울림’으로 부른 건 까무러치게 멋진 조합입니다. 가슴에서 나는 울림과 몸 깊숙한 창자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겉과 안, 얕음과 깊음, 가벼움과 무거움을 대비했어요. 한국말로 애간장 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는 ‘창자’, ‘간’을 일컫는 말이므로 ‘몸울림’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울린다는 뜻인가 봐요. 시마무라님은 고마코님과 만나면서 청각이 예민해졌는지 바다와 산이 울리는 소리를 생각만 해도 귓속을 스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셨죠. 시골에 사는 저는 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서 산이 꽝꽝 울리는 환청을 경험하는 날에는 밤새 눈이 내리더군요. 가와바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환청에 불과해도 하늘과 바람 방향, 세기가 달라지면 큰 눈이 내리는 걸 보면 신기해요. 그런 밤에는 이제는 자취조차 사라진 일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며 기억에 모입니다. 끝내 어쩔 수 없던 일들이 몇 초 동안 이마 위에 언뜻 선뜻 내려앉다가 차분하게 사라지죠.

가와바타 도시는 어딜 가나 콘크리트가 차단하니까 하늘이나 바람을 관찰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고마코 그래서 생각이 많은 시마무라님은 그런 날 밤에는 숙면을 못하시고요.

시마무라 다 아셨군요.

가와바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설국》을 제작했다면 어땠을지 아쉽네요.

마플 저도 궁금합니다. 오즈 감독의 일기와 편지, 간단한 인터뷰 기록, <도쿄 이야기> 시나리오를 수록한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었는데 배우 이와시타님과 제작한 <꽁치의 맛>에 관한 인터뷰나 기록은 안 나오더군요. 사실 저는 오즈 감독 팬인데요.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고 조금 실망했습니다. “배우가 어떤 영화에서 배역이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영화의 테마를 파악하는 것이다.”라고 멋진 말을 한 감독인데요. 이걸 독서방식에 적용해도 엇나가지는 않습니다. 오즈 감독은 제2차 대전 당시 중국전에 참전했던 분이잖아요. 대학살이 자행된 난징도 갔고요.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도 대면했는데 아까 시마무라님의 건조한 비평을 좋아한다는 말씀을 실천하기라도 하는 듯 정말 건조하게 기록했어요. 2년 동안 종군한 분이 전쟁 참사를 기록하기보다는 본국에 있는 지인에게  영화 소식을 묻는 편지를 보내고 음식, 날씨, 꽃나무, 중국 전통 가옥과 같은 소소한 일화가 내용의 대부분이에요. 오즈감독에게는 전쟁이란 인간이 겪는 많은 일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음을 엿볼 수 있는데요. 백보 양보해서 생각해도 인권에 관한 보편적 인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살상이 자행되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 ‘서정성에 기댄 전쟁 극복기’로 봐준다고 해도 종군일기에서 드러난 빈약한 인권인식과 참혹함에 대한 무감각은 해석이 복잡해집니다. ‘중국인에게는 침략군이며 위안부에게는 가해자였던 오즈 야스지로’가 거대한 야만을 사소하게 보는 듯한 태도는 ‘섬세한 영화장인 오즈 야스지로’와 충돌하는 겁니다.

가와바타 인간은 한 꺼풀만 벗기면 실체를 알 수 있는 바나나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모순투성이인 인간은 예술을 통해 인간 정신 가치를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어요. 불완전한 인간이 완벽을 추구하고 불확실하므로 확실을 염원하는 인간에게 작가는 관찰자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정체성을 많이 희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플 그래서 관찰자 역할을 자임한 오즈 감독이 변명도 아니고 합리화도 아닌 고해성사를 하듯 “인생의 본질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회고하는 책이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입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사지에서 문득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낸 것처럼 사소함에 깃든 인간 존재 본질을 생각하는 책이었습니다.

고마코 저는 《설국》이 밋밋한 전개로, 그러나 정말 결이 고운 문체로 전개되다가 비극적인 결말에 소름이 돋았어요. 이것도 작가님이 고마코의 새로운 삶을 암시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렬한 장면이 지나면 이전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게 인생이고요. 어떤 극적인 계기에 삶이 바뀌는 것 말입니다.

시마무라 고마코님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분이므로 그 마지막 장면 이후 게이샤에서 벗어나 의료나 복지로 직업을 바꾸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로서는 돈 몇 푼 보탠 것 외에는 없었으니 도쿄 남자는 쓸모가 없군요. 시대에 따라 잊힌 인물이 되었지만 저처럼 내향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준 가와바타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와바타 별말씀을요. 우리 시대는 자기를 드러내놓고 살기에는 험악했지요.  

마플 그러면 제가 총평을 하겠습니다. 《설국》은 여행문학입니다. 여행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듭니다. 이번 여행에서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 어떤 맛집에 기분이 좋아질까, 어떤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될까, 뭐 기대에 차서 출발하지요. 그 기대는 기대보다 못하기도 하고, 기대와 전혀 다른 일이 생기고, 기대했던 것처럼 나쁘지 않은 정도의 여행이 됩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떠올려보면 《설국》에서 일어난 일, 만난 사람, 흔들린 감정은 누구나 겪음직한 전반적인 모습이죠. 그 가운데 가와바타님은 연모와 정리(情離) 감정을 중심에 넣고 근대를 상징하는 기차를 전면에 배치해 벽촌을 조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기차가 통과하는 터널은 시마무라와 고마코 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 문명과 자연, 현재와 과거, 근대와 전통, 이성과 감정, 허무와 실존을 가르는 경계입니다.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활기찬 도쿄로 나가지 못한 산촌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하거나 지지미를 짜면서 살지요. 소박하지만 쓸쓸한 풍경입니다. 가와바타님의 심미적 감각과 허무주의도 찬란하게 드러났고요. 이 소설은 중일전쟁(1937년)과 태평양전쟁(1941년) 전란 속에서 나왔어요.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산화되어 갈 때 유자와 온천마을에서 유유자적했던 시마무라님은 가와바타님 분신인 듯싶어요. 적어도 《설국》에서는 가와바타님의 사회문제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와바타님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정중동을 깊이 관찰하는 문장이 뛰어납니다. 당시 왜 허무주의가 팽배했는가는 부모를 일찍 여읜 병약한 가와바타님의 외로운 성장과 전쟁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가와바타님 의견을 마지막으로 이제 대담을 마칠까 하는데 이견 있으시면 한마디 해주시죠.

가와바타 네, 얼음장 아래 무의식은 알 수 없으니까요. 마플님, 두 번이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주최측에 전해 주십시오. 다음번 대담에는 일정이 있어서 참석이 어려울 듯싶습니다. 고마코님과 시마무라님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마플 아, 다음번 대담을 불참하신다니 아쉽습니다. 제 무람한 질문에도 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고마코 감사합니다. 마플님의 대담에 다른 작품일지라도 마음을 다룬 대담이 있으면 읽고 싶습니다.

마플 참고하겠습니다.  날이 차가운데 조심히 돌아가세요. 모두 감사합니다. 사요나라~


-마플 합장(合掌)-


참고도서 : 민음사/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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