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쓰메 소세키(夏目漱)가 쓴 단편소설 《풀베개(草枕)》는 1906년 7월 16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탈고하고 열흘이 지난 7월 26일에 집필을 시작해 2주 만인 8월 9일 완성했다. 1906년 문예지 <신소설(新小説)>에 발표했다가 1907년 1월 춘양당 서점(春陽堂書店)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우즈라카고(鶉籠, 메추라기 둥지)>에 실었다. 단행본은 1914년 춘양당 서점에서 출판했다. 소세키가 구마모토현 중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1897년 새해 첫날 친구 야마가와 노부지로와 함께 여행 간 오아마온천(小天温泉)을 공간배경으로 썼다. 도쿄에서 서양화를 그리는 서른 살의 ‘나’는 번잡한 도시에서는 제대로 된 예술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 한적한 시골을 찾아간다. 유서 깊은 온천여관에서 만난 새로운 인물들은 ‘나’의 예술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미스 마플은 온천여관 주인 딸인 ‘나미’와 나미의 사촌 ‘규이치’와 가상 대담한다.
마플 안녕하세요 나미님, 규이치님. 두 분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미 네, 처음 뵙겠습니다.
규이치 안녕하세요. 저처럼 작품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이 초대되어 얼떨떨하네요.
마플 아, 규이치님은 《풀베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라서요.
나미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화공님은 안 보이네요?
마플 화공님과 가깝게 지낸 나미님이 뒷담화로 속마음을 밝히면 진행이 재미있지 않을까요?
나미 속마음은 일본어로 ‘혼네(本音)’라고 하지요. 속내와 다른 말하는 것을 가리켜 ‘다테마에(建前)’라고 하고요. 뒷담화는 ‘가케구치(陰口, かげぐち)’라고 해서 사람 사는 세상은 그렇듯이 일본인도 뒷담화를 즐긴답니다. 뒷담화는 도가 지나치면 위험하지만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흐흐흐.
마플 오, 한국인도 속내와 겉치레를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런 거죠.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규이치님은 원체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망설이지 않아 주기를 바랍니다.
규이치 네
나미 규이치는 내향적인데 솔직하게 말한답니다. 화공님과 다이테쓰 스님, 제 아버지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직설적인 단답형으로 대답했죠.
마플 차담을 나눌 때 규이치님은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한 사람은 큰아버지이고, 또 스님은 공부를 많이 한 노인이고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이죠. 서른 살인 화공은 도쿄에서 온 서양화가잖아요. 저라도 스물대여섯 살에는 부담 가는 자리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인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더군요. 규이치님이 일전에 가가미 연못을 사생한 그림을 두고 규이치님 큰아버지가 “상당히 예쁘게 그렸다”라고 하면서 스님과 화공에게 조카의 그림 솜씨를 은근히 내비치니까 겸연쩍어하면서 “보잘것없습니다”라고 하며 즉각 반응하잖아요. 저는 이 차담에서 겸손하면서도 솔직한 규이치님의 답변이 흥미로워요. 가장 흥미롭던 장면은 단계벼루를 구경할 때에요. 화공이 벼루를 잠시 만지면서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기분이 좋다고 하고 규이치님에게 벼루를 건네죠. 큰아버지가 규이치님에게 벼루를 아냐고 묻자,“모릅니다”라고 단답 하죠. 서양화나 청옥, 벼루와 같은 예술품 감상에는 관심이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규이치 저는 복잡하게 생각을 비비 꼬면서 우회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많은 화공님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 차담도 나이가 가장 어린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고, 게다가 저는 참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고, 큰아버지 때문에 예의를 지켜야 했던 자리입니다.
나미 규이치는 스님이 벼루를 사다 줄 수 있냐고 하니까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벼루도 찾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고 하잖아요. 관심이 없는 일에 부탁을 받는 게 귀찮은 기색이 엿보여요. 전쟁터로 곧 떠날 텐데 짠합니다. 얘는 전쟁을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어요.
규이치 그래서 내가 누나한테 그랬잖아.“재미있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라고. 전쟁에서 꼭 죽는 것도 아니고, 뭔가 새로운 전환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당시에 나는 도쿄에서 이렇다 할 일이 없는 상태였거든.
나미 그러나 전쟁은 죽음의 현장이잖아. 도쿄에서 험하게 살지도 않았고, 이십 대 중반이 되도록 인생의 쓴맛도 모르고 말이야. 전쟁이란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원한이 없는 상대와 총부리를 겨누다가 죽는 일인데 너무 어이없는 죽음 아닌가? 너는 전쟁을 모험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규이치 어떤 면에선 모험이지. 사느냐 죽느냐라는 운이 따르고 전혀 모르는 지형과 기후대, 자연환경에다가 사악하게 생긴 생소한 무기, 여기에 인간의 야만성이 결합해서 인간을 극단의 모험으로 몰아붙이잖아. 러일전쟁도 그렇지만 모든 전쟁은 개인이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렇지만 국가라는 큰 집단의 존속을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대적해야 하지 않겠어? 피가 튀고 몸이 찢어지는 전쟁터는 인간 말살 현장이잖아. 그 지옥에서 인간의 본질이나, 밑바닥을 확인할 수도 있을 테니까 죽지 않는다면 나에게도 적잖은 인생 경험이 되겠지. 물론 전쟁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 이를테면 전염병이나 지진, 폭우,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서 세계가 당장 망할 수도 있지. 아비규환에서 살아남는 자는 극소수일 테니. 화공님 말대로 문명세계에서는 당장 필요한 건 다 있다 보니 권력을 갖거나 부자가 되려고 협작질에 술수나 부리지.
나미 방귀나 뀌고. 흐흐흐
규이치 위선과 가식이 지배한 세계에서는 예술과 문학이 어떻다는 논쟁도 사변적인 문자세계에 불과해. 예술과 문학도 방귀 뀌면서 인기를 얻고 서열을 다투는 겨루기에서 자유롭지 않잖아. 내가 화공님과 친할 생각이 없던 이유라면 나는 좀 더 원초적이고 날것인 실제적인 세계가 궁금했어
나미 문명이 실제적 세계가 아니라고? 도쿄야 말로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인 곳 아닌가? 그런 곳이 실제 아니면 대체 뭐지?
규이치 아니, 내 말은 문명의 혜택이나 점잔 떠는 가식이 없이 인간의 가장 극렬한 본질만 있는 곳이 전쟁터란 말이지.
마플 그러면 규이치님은 화공이 《풀베개》에서 누누이 말한 ‘비인정(非人情)’과 ‘인정(人情)’의 세계를 어떻게 구별하나요?
규이치 화공이야 비인정의 세계를 인간의 정리(情罹)를 초월한 세계로 인식했고, 인정의 세계를 근대문명을 수혈받은 도시, 즉 도쿄와 그곳의 인간들로 규정한 것 아닌가요? 저는 전쟁터를 선택한 게 다르고요. 왁달박달한 인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무심한 세계를 비인정과 인정의 세계로 구별합니다.
마플독자들의 평을 보면 소세키의 다른 작품과는 다른 문체와 논조로 전개한 《풀베개》 주제를 여러 갈래로 잡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는데요. 추려보면 광기의 시대를 연민으로 대한 소세키, 소세키의 예술론을 소설형식으로 차용한 작품, 비인정과 인정의 세계로 예술을 구별할 수 있는가? 와 같이 간추려집니다.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은 소세키는 이 작품에서 예술론을 펼친다는 것이죠. 비인정의 세계만으로는 화공의 예술론이 완성되지 못하고 인정의 세계, 즉 화룡점정 같은 연민이 개입하면서 소세키의 예술론이 마감됩니다. 규이치님과 나미님의 전남편이 살벌한 전쟁터인 만주로 떠나는 기차에 승차한 모습을 보는 나미님의 연민 어린 표정이 소세키가 가리킨 예술론이죠. 그런데 이 연민은 선명하게 콕 잡히지 않아요. 저는 그게 소세키가 말한 일본인의 미의식, 정서, 예술론인가? 이런 물음표가 생깁니다. ‘마음결’은 마음보다 훨씬 복잡하니까요.
나미 화공은 중국 남종화나 문인화, 왕유나 이백, 도연명 시를 빌려 인간세계의 번잡하고 번란한 경계를 벗어나 신선의 경지에 오른 상태의 예술을 지향했음을 피력합니다.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인간 세계와는 다르게 무심한 경지이죠.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고단한 세속을 잊고자 음풍농월 세계를 이상향으로 지향하지만 그건 몽유도원의 세계라고 자각합니다. 저도 애정 없는 결혼을 해서 도쿄에서 살아봤고, 그것도 상처 있는 결혼생활이었잖습니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네요. 지금, 이곳, 여기를 벗어나면 비현실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되는 것이죠. 예술은 상상력을 먹고 자라지만 소세키는 상상력만으로는, 초월한 세계만으로는 예술이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화공으로 하여금 인정의 세계를 추가하게끔 만들었지요. 소세키의 작품들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시시콜콜 그리고 있거든요. 인간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인간을 조명하는 소세키 작품들을 상기하면 《풀베개》는 소세키의 인정 어린 세계관을 화공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이 소설 마지막에 화공이 제 서글픈 얼굴을 보면서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라고 외치죠. 그 연민은 화공과 제가 옛날에 온천여관 나가라 아가씨가 가가미 연못에 몸을 던진 얘기를 나눌 때 전조를 띄었어요. “제가 몸을 던져 떠 있는 장면을, 괴로워하며 떠 있는 게 아니라 편하게 죽어서 떠 있는 장면을 예쁘게 그려주세요”라고 저도 나가라 아가씨처럼 연못에 몸을 던질지도 모른다고 농반 진반 이런 말을 했잖아요. 화공에게 처음으로 연민이라는 화두를 던진 영국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는 이 소설에서 독특한 중심에 있죠.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에 나오는 햄릿의 약혼녀 오필리아는 햄릿이 아버지를 죽이자 미쳐버려서 연못에 뛰어들어 죽었잖아요.
마플 이 그림은 오필리아가 천천히 물에 가라앉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익사하는 순간을 포착한 겁니다. 완전히 익사했다면 물에 떠오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52, 캔버스에 유채, 762 x 111.8 cm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런던)
나미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필리아 얼굴이 더 섬찟하면서도 창백하지요. 물가에는 수초와 여름 꽃들을 화려하게 배치해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고요. <오필리아>는 시신만 없다면 인상화풍의 아담하고 정감 있는 연못 그림이지만 물 위에 떠서 눈을 뜨고 죽은 오필리아 때문에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마플 <오필리아>는 19세기 중엽 런던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사조인 라파엘 미술 그룹이 전파한 회화 양식이에요.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화풍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었다고 비판하며 자연묘사와 섬세한 기법을 중시한 고딕 양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 미술그룹 멤버를 라파엘전파 형제회라고 부르는데요. <오필리아>를 보면 수초나 꽃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출한 기법이 섬세하잖아요. 특히 오필리아가 입은 앤티크 드레스는 화가 밀레이가 구입해서 실내 작업을 할 때 모델에게 입혀줬다고 알려졌어요. 게다가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의 서레이(Surrey) 인근 이웰(Ewell)의 시냇물가에서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배경 작업을 그렸다고 해요. 사유지에 무단 침범해서 건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아 조사까지 받았으니 밀레이는 오필리아에 영혼을 쏟아부어 작업을 했을 겁니다. 이 그림을 두고 인상화풍이라고 오해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 같아 빈약한 지식으로 아는 척을 해봤습니다.
나미 화공이 연못에 빠진 저를 예쁘게 그려달라는 제 말을 진심으로 생각했는지는 몰라요. 동백꽃이 떨어진 연못에 아름다운 여인의 시신이 떠 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상상했겠지요. “도륙된 죄수의 피” 같은 검붉은 동백꽃이 떨어진 연못에 익사한 제 얼굴을 상상하다가 제 표정에 연민의 정이 없다고 금방 생각을 바꾸죠. 일본어로 가가미(かがみ, (鏡))는 거울이라는 뜻으로 나가라 아가씨나 오필리아처럼 익사를 비추는 비유인 듯싶어요.
마플 아시다시피 《풀베개》에는 초반부터 죽음 이야기가 나와요. 고갯길을 넘을 때 차를 마신 찻집 할멈에게서 화공은 나가라 아가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듣습니다. 여관에서 만난 나미님과는 가가미 연못에서의 익사를 얘기하죠. 마지막에는 규이치님이 전쟁터로 떠나는 어쩌면 살아서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별장면이 나오고요. 화공은 탈속의 경지인 비인정의 세계를 나타낸 중국의 시경세계를 소요하고 싶어 했어요. 서양문학을 호의적으로 평가한 모습과는 반대로 화공이 서양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몇 가지 이유 가운데 구도에 치중했고, 관객을 의식했다고 지적하지만 저는 “마음을 쓰는 순간 시정의 풋내기가 된다”라고 한 말에서 이 마음을 주목합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 마냥 “마음에 적합한 대상을 선택”했지만요. 작가 소세키는 말년에 쓴 장편소설 《마음》에서처럼 마음에 천착한 작가인데요. 《풀베개》에서 이미 내면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는 거죠. 마음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초연한 자세로 비인정의 예술론을 펼친 화공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나도 앞으로 만나는 사람을, 농사꾼이든 장사꾼이든 면서기든 할아범이든 할멈이든 모두 대자연의 점경(點景)으로 그려진 것이라 가정하고 보려고 한다” 이 말은 인간을 가리키는 비유인 ‘하늘 아래 벌레’를 연상하게 하는데요, 화공이 읊는 하이쿠나 소묘를 앞에 두고 제삼자처럼 평가하는 장면에서 보듯 화공이 정의한 비인정의 개념이란 “자신의 느낌 자체를 자기 앞에 놓고 그 느낌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그대로 차분하게 남처럼 이를 검사할 여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죽음은 연못에 익사한 죽음과 전쟁터에서 죽는 실제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자가당착에 빠진 예술,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하면 서양 문명을 쫓느라 일본 고유의 미를 상실한 당대 일본 예술을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전쟁터에만 인간의 실제적 본질이 있다기보다 근대문명에 흠뻑 도취되어 혼잡한 도쿄 같은 거대한 도시에서도 다방면으로 인간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쟁터에서 먼 문명 세계 한복판에서도 오필리아처럼 정신을 잃은 참혹한 죽음도 있으니까요. 오필리아가 죽을 수밖에 없던 웅장한 햄릿의 성이 곧 전쟁터 아니겠습니까. 이상 규이치님이 러일전쟁에 지원한 이유가 빈약해 보이는 건 인간 본질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규이치 음, 제가 말한 인간 본질은 도쿄를 완전히 부정한다기보다 그렇지만 역시 직접 피가 튀는 전쟁터에서 생사를 체험하며 인간 본질을 가장 철학적으로 소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역시 화공이 산길을 오르면서 말한 것처럼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군요. 하하.
나미 아까 내가 너에게 말한 것처럼 너는 고작 스물대여섯 살이고 큰 시련도 겪은 적이 없잖아. 네가 힘들다고 느꼈던 건 아마 도쿄에서 먼 시골인 우리 집에 오느라고 땀을 흘리면서 여러 번 차를 바꿔 타고 산길을 걸어온 일이 아니었을까? 따분한 서생이었던 너에게 생사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전쟁터는 마력으로 끌어당겼을 것 같은데?
규이치 그렇지 않아. 누나는 인생 시련을 겪어 봤다고 나를 너무 애 취급하는군. 젊은 꼰대인건가?
나미 허, 그렇게 생각하다니 황당하네. 국가를 위해서 전쟁에 지원이라니. 개인을 중시하는 근대인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어. 우리 아버지 말처럼 죽는 것만이 국가를 위하는 게 아니지. 찾아보면 자기 삶을 묵묵히 살면서 국가를 생각할 일이 많잖아. 어쨌든 규이치를 전송하면서, 또 내 전남편이 그 기차를 탔다는 사실에 나도 마음이 복잡했어. 마플님이 말씀하신 화공이 고심한 ‘마음’은 결국 제 얼굴에 나타난 연민이었던 셈이군요. 아무리 근대가 이성(理性)이라는 최고의 개념을 발명했다고 해도 인간에게 마음이 없다면 짐승이나 기계와 다르지 않다고 봐. 그 마음 가운데에서도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는 맹자의 측은지심과도 상통하잖아. 나는 이 연민은 공감이자 인류애 발현이라고 여겨. 마플님 말씀대로 화공의 입을 빌린 소세키 선생은 이 연민을 근대의 쌀쌀맞은 이성에 온기를 결합해서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화공은 욕탕에서도 저를 보고도 못 본 체, 그 자리에 없는 체 시침 떼는 음흉한 남자였어요. 그렇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재주가 있다 싶었는데 마음과 예술을 연결하는 고민이라니, 보기보단 진지한 구석이 있었네요.
마플 그렇습니다. 모리 오가이도 《기러기》에서 가만히 연못에 있던 기러기를 죽이고 불편해하지 않는 모습으로 근대의 몰인정을 비유했어요. 화공은 《풀베개》에서 이 마음을 많이 고민했잖습니까? 바닷가 이발소에 들른 그 이후 화공은 마음과 예술의 관계를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사실 깊은 생각을 독백하듯 독자에게 중계한 이는 소세키이죠. 소세키의 예술론을 정리한 부분이라 산문 형식으로 이 부분을 전개했어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그림이 될까”, “이 마음을 어떤 구체성을 빌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가가 문제다”, “제3의 그림에 이르면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기 때문에 그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마음에 적합한 대상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온 게 “연민은 신이 모르는 정이고, 게다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의 정이다”라고 결론 내립니다. 귀납적 결론은 논리적이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나미님에게는 연민이 없다고 판단했다가, 왜냐하면 <오필리아>처럼 나미님은 욕탕에서 “흘러가는 사람의 표정”외에는 없다고 느꼈거든요. 인정의 얼굴을 아직 드러내지 않은 비인정한 여주인공의 얼굴 단면만 본 거죠.
규이치 화공은 근대주의자인가요? 반근대주의자인가요? 툭하면 문명 비판을 하고, 도쿄의 인간들을 오합지졸로 묘사하고요.
나미 반근대 아닌가? 본인은 근대의 상징인 도시출신에, 동양화가 아닌 서양화를 그리고, 기차는 편리하게 이용해 놓고 시끄러울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화공 자신은 근대인간이면서 전근대적인 일본 고유의 색, 정서, 문화를 즐기고 미적감각이 뛰어난 것처럼 인식하잖아. 하이쿠를 짓는 건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이상향의 밑그림이고. 어떨 때는 중국이나 서양 시를 외우고. 그러면서 기차역에서 마침내 동양의 시와 그림, 일본의 맛이나 풍광에 대한 애착이 비로소 끝나지. 근대의 대표 상징인 기차는 이 모든 것을 다 싣고 뒤도 안 돌아보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리니까. 말하고 보니 화공의 정체성은 아이러니하네. 마플님은 화공의 근대 개념을 어떻게 보나요?
마플 화공은 사실 근대주의자다, 반근대주의자다 딱히 구별하기에는 모호하게 보입니다. 화공은 도쿄의 인간 군상들이 권리만 챙기려 들고 시민으로서 의무도 저버린 채 위선에만 빠졌다고 비판하죠. 근대라는 굉장한 문명을 받아들여서 뭔가 의식도 기품 있고 세련되게 변할 줄 알았는데 부조리한 인간 본질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단 말에요. 화공처럼 비인정의 눈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는 기술의 발달과 국제교류, 사상기류의 확장 등 근대의 소란스러운 문명은 많이 피로하죠. 외피는 진보되어 전근대의 낡은 외투를 벗었는데 내면은 지리멸렬해 보이잖아요. <현대일본의 개화>라는 유명한 강의에서 소세키는 일본의 개화는 외발적인, 즉 외부의 힘으로 근대가 열린 점을 지적합니다. 바깥에서 기차처럼 빠른 속도로 밀려 들어온 근대는 일본의 고유한 맛을 잃게 만들었다고 하죠. 전근대 일본의 가치 있다고 생각하던 예술, 철학, 풍조가 쓰나미처럼 잃어버린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분석으로 보면 소세키가 자신의 분신으로 만든 화공은 반근대인입니다. 그런데 근대를 발명한 서양에서도 근대의 폐단인 너무 가열찬 속도 때문에 내적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가치, 이를테면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 존엄성 상실을 꼽았잖아요. 또 이렇게 보면 화공의 반근대는 정말 반근대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나미 일본의 근대는 출발부터 서양의 근대를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요.
마플 그런 면이 없지 않죠. 문명개화를 자각했을 때는 서양의 근대도 폐단이 속출한 상태였으니까요.
규이치 화공이 그토록 찾은 비인정의 눈, 저는 이걸 이성(理性)의 눈으로 보고 일본어의 ‘아와레(あわれ(哀れ, 憐れ))’, 즉 연민, 서글픔을 인정으로 보겠습니다.
나미 아니 너는 참. 정말 단답형 남자야.
마플 이래서 규이치님을 초대했던 겁니다. 하하. 규이치님이 내린 평가가 옳다 틀리다를 떠나 독자는 여러 의견을 밝히면서 풍성한 독서 양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거죠.
나미 마플님이 마지막으로 《풀베개》를 어디에 초점을 두어 읽었으면 좋은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마플 제가 감히 말하자면 《풀베개》는 소세키의 초반 작품입니다. 그러나 《풀베개》를 경계로 예술론과 비교문명론을 평생 궁리했으니 이 작품의 의의가 작지 않아요. 창작자로서 전환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풀베개》는 다른 작품과 다르게 화공의 입을 빌린 소세키의 근대인 개념, 예술관, 동서양 문명을 비교하는 산문을 압축해서 삽입해 놨죠. 여느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일정한 스토리를 평면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중간중간에 자신의 논조를 솔직하게 설명하잖아요. 저는 독자들이 《풀베개》를 읽으면서 이야기만 쭉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말고 소세키의 예술론과 문명론 주장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당시 일본 근대 문화 분위기를 엿볼 수 있고, 소세키의 작품 성격도 파악하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근대문학을 읽는 일은 역사적 의미로는 근대라는 시대를 읽는 일이자 근대인을 이해하는 일이거든요.근대는 현대와 뚝 떨어진 단절된 시대가 아니라 현대의 밑절미가 된 동력의 시간입니다. 현대의 문명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류사에서 번개가 휘몰아친 근대를 아는 일은 필수이지요. 밤도 늦었는데 더 의견 나눌 말씀이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