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미화 Jan 18. 2024

나쓰메 소세키 《마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았다”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가 숨을 거두기 2년 전인 47세에 쓴 장편소설 《마음(心, こころ)》 은 《춘분 지나고까지》, 《행인》과 함께 후기 3부작으로 꼽는다. 주인공 ‘나’는 여름방학 때 바닷가에서 점잖고 지적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를 만난다. 첫눈에 반한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1914년 4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에 <심선생의 유서(心先生の遺書)>라는 제목으로 110회 연재했다. 9월 20일 자비로 이와나미(岩波書店) 출판사에서 펴냈다. 소세키 작품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자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주요 인물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서 작가 소세키, 주인공인 ‘나’와 미스 마플이 가상 대담한다.




마플 안녕하세요. 소세키님, 주인공님과 함께 인사 나누시죠.

소세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까지 여기서 뵙게 되네요.

소세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외려 더 잘 부탁드립니다.

마플 두 분이 인사를 나누셨으니 이번 대담 진행 방식을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근대 자아, 메이지 천황과 아버지 죽음, K의 죽음, 선생님 죽음, 작품 배경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오늘은 작품의 주요 인물인 선생님이나 선생님 친구인 K님이 참석하시지 않아 아쉽지만 작가님이 대신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소세키 네, 제가 밝힐 수 있는 부분까지는 토론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마플 고맙습니다. 주인공이신 나님은 여름방학 때 친구가 부른 가마쿠라 바닷가에 가서 선생님을 처음 봅니다. 친구는 결혼을 독촉하는 부모님 성화에 곧 떠났고 나님 혼자 남습니다. 초가집이 있을 정도로 문명화되지 않은 시골이었음에도 피서객들이 꽤 있던 것 같은데요. 선생님을 처음 본 날은 물건을 맡겨 놓는 찻집에 앉아 젖은 몸을 말리고 있던 중이었어요. 선생님은 평범한 모습이지만 선생님 옆에 있던 서양인의 “유난히도 하얀 피부 색깔이” 눈에 띄는 바람에 선생님까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떨어뜨린 안경을 찾아주면서 말문을 트이게 됐지만요.

 맞습니다. 당시 1907년 전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에 개방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바다에서 옷을 벗는 일은 흔치 않았어요. 살을 거의 감추다시피 하고 머리에는 고무 두건을 쓰고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옆의 백인 남성은 팬티 바람에다가 피부가 하얘서 이목을 끌었지요.

마플 저는 그 주변 묘사가 문학적인 은유로 감춰진 듯싶습니다.

소세키 단순한 묘사였는데요.

마플 두 가지 이유로 말씀드릴게요. 선생님과 서양 남자는 거의 동시에 헤엄을 치기 시작했죠. “그들은 머리가 조그맣게 보일 때까지 먼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 다시 일직선으로 해변으로 돌아왔다” 저는 이 문장이 작품 제목인 ‘마음’을 비유했다고 봅니다. 마음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곡선처럼 돌아가다가 일직선으로 내달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마음결’이 작동하는 거지요. 작품 말미에 이르러 선생님이 나님에게 K 얘기를 고백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마음의 과정에는 밀물과 썰물처럼 여러 가지로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네” 이 대목을 소설 전반부에 암시 장치로 작가님이 설정한 것 같고요. 문학적 은유를 의심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선생님 얼굴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았다”라고 쓴 문장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라고 했죠.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플 저는 이 작품에서 다른 독자들의 감상문처럼 속죄와 외로움을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십분 동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근대문학이므로 근대 자아에 궁금해요. 근대 자아를 말하기 전에 자아를 먼저 짚어볼까요? 《마음》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건 내 얘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은 매일 봐서 너무나 익숙한 내 얼굴인 거죠. 《마음》에서 선생님의 마음과 행동을 보면서 나는 저 상황에서 저러지 않을 거야, 저건 잘못된 행동이야, 하고 독자는 다짐하지만 작가님은 작품에서 선생님이 당시 보여준 배신과 거짓, 욕심과 이기심을 인간의 보편적 욕망, 나아가 인간 내면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꿈틀대는 어두운 덩어리로 설정한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도덕과 윤리라는 숭고한 가치관이 있지만 특정 상황 앞에서, 또는 일상에서 이 가치관은 무기력하게 허물어지기 쉽습니다. 눈앞의 탐심이 밀물처럼 들이닥쳐 도덕, 윤리, 정의, 양심, 절제를 무참히 밀어내거든요. 지각 있는 인간이라면 늦지 않게 멈추어야 할 때를 알죠.

소세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려는 계산적 본능인 이기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좀 전에 지각이라고 하셨는데 이 지각은 자아를 먼저 건드리고 나옵니다. 자아라는 개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말한 에고(Ego)입니다. 자신의 생각, 판단, 감정이 외부와 접촉해서 반응하는 사고력의 총체로 흔히 ‘자신’이라고 합니다. 중세에도 지각은 있었지만 개인의 존엄성보다는 집단, 이를테면 종교, 정치권력인 왕권, 사회제도를 장악한 귀족, 영주에 몸과 마음이 종속된 상태였고요. 지각 있게 행동한다는 건 관습의 성체로 쌓아 올려진 중세시대에 반역이자 반란으로 불순한 도전으로 위험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불순한 행동이 근대를 열었다고 봅니다만.

소세키 그렇지요. 종교개혁, 의회민주주의, 왕권 쇠퇴, 국제무역, 문예운동은 이 결과물인 셈입니다.

마플 다시 한번 역설적으로 이 도전은 제국의 탄생과 식민지 건설로 연결되고요.

소세키 참으로 중세의 불순하고 불온한 잉태는 인류사에서 기발합니다. 자아는 중세에도 있었지만 근대인의 자아는 이전 시대의 자아와는  다르게 해석됩니다. 근대 자아 대표라면 르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 <제1 성찰>에서 전개한 이론인 코지토 에르고 숨(Cōgitō ergo sum)”이 많이 회자됩니다만, 철학자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불완전한 명제라고 주장합니다. ‘생각한다’라고 말할 때 이미 생각은 ‘한다’라고 하는 과거 시제가 붙었으므로 나는 과거에 존재한 대상이 되고 마는 셈이죠. 다른 주장도 있는데요. 생각을 안 한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부재하는 것도 아니라고 해요. 그래서 데카르트는 고심합니다. <제2 성찰>에서 “ego sum, ego existo”이라고 해요.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나아갔죠. 이후 칸트, 흄, 헤겔, 니체가 근대의 자아에 고민을 합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유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종합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요. 니체의 자아는 신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어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근대인은 중세인보다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자아를 열심히 고민했죠. 저는 알다시피 문부성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독일문학과 철학을 포함해 서양 민주주의를 체험했어요.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문호를 개방했지만 자아, 지각, 근대를 고민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머지않아 제국주의로 전진하기 위해 경제부국을 추구하면서 천황에 충성하는 일원화된 정치관이었거든요.

마플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 일보다 명왕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일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소세키 사람은 또 하나의 행성이니까요. 바로 그 마음은 자아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므로 저는 인간에게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바다 산맥처럼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마플 해령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세키 바다 골짜기인 해구를 탐험하는 일도 스릴 있지 않을까요? 지구의 70퍼센트가 바다이고, 그 바다는 오늘도 수많은 화산 분출로 지각변동을 합니다. 바다가 화산이 주축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음을 탐구하지 않으면 자기를 잃어버린 죽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봐야죠.

마플 한편으로는 생경할 정도로 보기 싫고, 부정하고 싶은 내면으로의 탐구이므로 어떤 의미로든 고통을 각오해야겠군요. 저는 이 작품 초반에 바다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바다야말로 미지의 세계로 문학에서는 인간의 마음 깊이로 비유합니다. 《마음》은 곧 자아를 인식하는 나, 즉 독자의 마음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세키 작가는 독자가 작품을 해부해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반대이기도 합니다.

 끝없는 논쟁을 유발해 독자를 골탕 먹이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요? 허긴 작가님도 이런저런 마음이 있으니까요.  




마플 아아, 《율리시스》 는 두께만으로도 여간한 인내심 없이는 짜증유발이죠. 흐흐. 자, 그럼 이제 메이지 천황과 아버지의 죽음을 토론하겠습니다. 《마음》에는 모두 세 가지 죽음이 나오잖아요. 메이지 천황, K, 선생님의 죽음입니다. 메이지 천황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과도 연결되고요. 메이지 천황이 죽은 1912년에 천황과 전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 위치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겠습니까? 천황은 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고 노기 장군은 러일전쟁을 비롯한 일본의 제국주의 확장 전쟁에 나섰던 강대한 일본 국방의 상징이었고요.

소세키 굉장했지요. 메이지 시대(1868~1912)는 1867년 마지막 막부가문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정권을 반환하면서 시작되었어요. 마침내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서 근대문명을 꽃피운 서양 열강과 견줄 만큼 국력이 신장된 시기입니다. 조선이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지요.


메이지 천황(1852~1912)


 그럼 천황제를 강화하기 위한 법령은 어떻게 진행된 건가요?

소세키 1889년에 대일본제국주의헌법이 확정․공포됩니다. “천황은 신성하기 때문에 침범할 수 없다.”라는 문구를 삽입해서 천황의 신성불가침을 못 박죠.

 으아~완전히 신이군요!

마플 강력한 천황제를 주창하고 설계한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은 오늘날에도 일본 우익사상의 창시자이면서 근대화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소세키 그렇습니다. 존왕파인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로 일본 역사에서 숭배받고 있어요. 요시다 쇼인은 《유수록(幽囚録)》이라는 책에서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 정한론(征韓論),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주장합니다. 우익사상에 젖은 일본인은 지금도 쇼인의 이 말들을 시위 때마다 혐한 발언으로 사용합니다. 물론 다수의 일본인은 이런 시위를 무심하게 지나칩니다.

마플 쇼인은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라는 발언을 해서 막부 말기에 수감된 것으로 압니다.

소세키 쇼인이 《유수록》을 쓰고 막부 타도를 외쳤을 때는 막부의 마지막 숨이 붙어 있을 때이므로 국법을 어긴 거지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처형당했지만 쇼인이 남긴 업적은 대단해요. 현대 일본 정치체제를 지배한 ‘조슈벌(長州閥)’ 세력에 첫 삽을 뜬 인물입니다. 조슈 지방에서 역대 수상이 줄줄이 나왔고, 육군대장도 많이 배출했지요.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메이지의 아버지 쇼인은 천황제를 통해 일본을 태평양의 군주국에서 세계의 군주국으로 진화하는 사상을 주입했던 것입니다. 조선 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요시다 쇼인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조슈번은 오늘날 야마구치(山口) 현으로 2022년 피살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조상도 이곳 출신이고, 쇼인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고 공언했지요. 한국의 보수정당 모 정치인은 아베 전 총리를 조슈번의 적자라고 말해서 논란이 되었더군요. 마플님은 아세요?

마플 금시초문입니다. 방금 찾아보니 그 정치인이군요. 그분의 평소 발언으로 보면 놀랍지도 않습니다. 자, 쇼인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천황 숭배의 헌법이 공포됨으로써 이제 천황은 인간이 아닌 신격화된 대상으로 종교성까지 부여받게 된 것이죠? 그러니 메이지 천황의 죽음은 메이지 시대의 종료를 알리는 조종이 된 거군요. 메이지 유신을 경험한 세대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이 짐작 가네요. 신념과 삶의 존재성을 지탱해 준 정신적 지주가 사라졌으니 절망이 컸을 테고요.

 선생님도 메이지 천황의 서거 소식을 듣고 절망감에 빠졌던 듯 이런 말씀을 했어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네. 그때 나는 메이지 정신이 천황으로 시작해서 천황으로 끝난 듯한 기분이 들었네. 가장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았던 우리들이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필경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심하게 내 가슴을 쳤지.”

마플 메이지 정신의 최종목표는 부국강병을 일궈 제국주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삐딱한 제 성정으로 보자면 제국주의는 전쟁광들이 만든 이념인데요. 그런데 소세키님은 당시 일본 국민들의 일반적인 반응과는 달리 건조한 평을 남기셨어요. 죄송하지만 1912년 7월 20일 일기를 발췌해 보겠습니다. “밤, 천황이 중환이라는 호외가 나왔다. 요독증으로 인한 혼수상태의 보도였다. 水神祭의 개최가 중지되었다. 천황은 아직 서거하지 않았다. 그러니 水神祭를 금지할 필요는 없다. 영세민은 이 때문에 곤란함이 많다. 연극 그 외의 행사도 정지하느냐 마느냐로 소란스러운 듯하다. 천황의 병은 만민의 동정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렇지만 영업이 직접적으로 천황의 병환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은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다. 당국은 여기에 대해 간섭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천황의 병환 때문에 국민의 생업을 중지할 이유가 없으며, 수신제를 금지한 당국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볼까요. 천황 임종 소식을 들은 1912년 7월 30일 일기 단 한 줄입니다. “오전 영시 사십 분, 폐하의 서거 내용을 공시. 같은 시간에 왕위 계승식이 거행되었다.” 천황의 죽음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는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세키 작가님을 투영했다고 하는 《마음》에서 선생은 왜 메이지 천황의 죽음을 강하게 인식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을까요?

소세키 K에 대한 죄의식 때문입니다. 자살을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요. 천황 서거 후 순사한 노기 대장도 자신의 패전을 명분으로 세웠습니다.

마플 그러니까 안 그래도 평생 K를 향한 죄책감 때문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자살을 할 명분을 천황의 서거에서 찾은 거군요. 생존한 부인은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모르면 그 또한 절망적일 테죠. 메이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천황의 죽음을 삶의 종착점으로 삼는다면 그럴듯한 명분으로 보이긴 하네요.

소세키 네, 선생은 자살의 명분으로 메이지 시대의 종말을 착상한 겁니다.

 제 아버지도 메이지 천황 서거를 크게 통감하셨어요. 천황의 서거 소식을 알린 신문을 손에 들고 탄식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어요. “아아, 천황께서도 결국 돌아가셨구나. 나도....” 아버지는 천황을 줄곧 ‘천자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천황을 신격화했습니다. 메이지 시대를 천황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큰 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 충격이었던 듯싶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같은 시기에 병석에 누운 천황과 자신의 상태를 비슷하게 여기고 있었잖아요. 자신 또한 악화된 신장질환으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황이 앞선 거죠. 그 후, 노기 대장 순사사건을 듣고 나서 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이 쇠약해졌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버지는 의사조차 이렇다 하게 치료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와중에 구토와 정신혼미 상태를 반복하면서 천황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자살 명분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만.


서재에서 : 나쓰메 소세키


마플 아버님의 병환 묘사는 병약한 소세키 작가님이 세세하게 잘 표현했는데요. 학생 때는 복막염으로 고생하고 영국 유학 당시에는 위궤양이 발병하고 말년에는 당뇨병까지 앓았으니 고생이 심하셨어요.

소세키 신경과민증으로도 시달렸습니다. 혹자는 정신병이라고도 합니다. 병문안 온 손님들에게 “참호 속에 들어가 병마와 대치하는 기분”이라고 호소할 정도로 처절한 투병인생입니다. 《마음》의 아버지는 질병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플 작가가 앓는 병을 보면 천형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습관도 불규칙하고, 운동부족에, 뇌는 과부하이고요. 게다가 어지간한 인기 작가가 아닌 한 돈도 못 법니다. 곤란한 직업임에도 글쓰기가 무엇인지 작가는 돌밭길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많은 독자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왜 그런 고난의 길을 동경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자기 존재를 글로 확인하고 싶은 걸까요? 글 쓰는 길은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기도 합니다.

소세키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야 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운명이지요. 그 길이 아니면 삶을 지속할 의미가 소멸되거나 적어도 반감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마플 K가 고집을 꺾지 않은 도(道)의 길도 그렇습니다. “고집 센 그는 의사는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도쿄로 온 것이었네. 나는 그에게 그것은 양부모를 속이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추궁했지. 대담한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어. 도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일은 해도 괜찮다는 것이었어. 그때 그가 쓴 도라는 말은 아마 그 자신도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겠지” 선생님이 나님에게 고백하면서 들려준 이야깁니다. 저는 이 얘기의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 K가 지향한 도의 길은 결국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패착을 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런 셈입니다. 친부모와 양부모 속을 썩이면서 도의 길을 확신했잖습니까. 자신이 선택한 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면 주변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플 신념이 확고했지요. 흔히 신념은 긍정적인 단어로 비치지만 그거야 본인에게나 긍정적인 가치관이지 주변의 가족, 친지, 친구가 헌신해야 하고, 심지어 희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K는 자기 신념을 달성한다면 모든 게 다 이해받고 잘 풀릴 것으로 단정했던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K는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과도한 금욕생활을 하면서 주위 환경을 도의 길로 나아가는 일에 장애물로 인식했으니까요.

마플 한국 철학자 가운데 김영민 선생이 쓴 《자색이 붉은색을 빼앗다》라는 책에서 “순수주의는 더럽다”라고 했거든요. 저는 K를 보면 이 문장이 떠올라요.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맹신은 아집을 넘은 독단이죠. 이건 신념이 아니에요. 여왕 장미꽃 한 송이를 키우기 위해 둘레 작은 꽃봉오리를 모두 잘라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지요. K에게는 이 관계성이 결여되었어요. 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이고 자신과도 융통성 있는 관계 필요를 못 느꼈잖아요.

소세키 절에서 성장한 K는 세속을 몰랐습니다. 현실적인 삶과의 타협은커녕 자신이 진리라고 여긴 도(道)조차 마음에서 방향이 없는 상태였어요. 몸은 현실에 발 딛고 정신은 이상세계에서 허우적 댔던 겁니다. 저는 K를 통해 확신하는 신념이든, 아집이든 인간의 두려운 마음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작가님이 그린 K에게 도의 길은 어떤 길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금욕주의나 청빈이 도의 길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도의 길 끝에서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그 지점에 다다르는 마음의 경지라는 것도 불교에서 가리키는 무심이나, 해탈이라는 말 외에 세속의 인간인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마플님이 말한 관계를 주시하고 싶은데요. 제 의견이 건방지다면 혜량 해주세요. 헤헤.

소세키 도 앞에서 무너지는 K를 묘사하려면 도의 길은 명확해선 안 됩니다. 명확하지도 않은 길이고요. 선승이라도 도의 길을 법어로 삼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겠군요.

마플 K의 생각은 아가씨를 연모하는 마음, 즉 이성애적 사랑은 도에서 이탈하는 도의 파탄이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친구인 선생에게 아가씨를 향한 순애보를 고백하고 나서 마음이 갈팡질팡 뒤죽박죽이었잖아요. 말수가 더 줄고 선생을 피하기 일쑤였지요. “그는 평소와 달리 풀이 죽어 자신이 약한 인간이라는 것이 사실 부끄럽다고 말했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자신이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공정한 비평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 청춘남녀가 같은 거주 공간에서 서로 흠모하고 연정을 품는 게 오욕칠정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잖아요. 아가씨와 K의 사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도의 길을 고집한 K에게 남녀의 욕정은 죄악이었던 거죠. 그래서 K의 불안은 사랑의 고통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아니라 도의 길이 부서질까 봐, 결국엔 자신이 추구한 이상과 현실의 모순 때문에 괴로워하는 불안입니다.

 K는 왜 죽었을까요?

소세키 K를 쓰러뜨린 원인은 절망과 수치심입니다. 사랑의 열병에 끙끙 앓는 자신의 혼란한 마음을 비평해 달라고 했을 때 선생의 조언은 비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녀석은 바보다” 선생에게는 젊은 혈기에 신중함이 부족함에도 경청하는 태도가 없어요. 마음이 심란한 상대방이 하소연을 할 때 섣부른 조언이랍시고 넌 그런 것도 모르냐! 넌 의지가 부족해! 뭘 그런 하찮은 일로 고민을 하냐! 하는 식으로 따갑게 반응하면 상대방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침착하게 잘 들어주고 답변을 해주면 더 바랄 나위 없지요. 적어도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자세만 취해도 고민을 토로한 상대는 혼돈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K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심중을 덜컥 들켜버리면 모멸감과 절망, 분노와 증오적 행동이 즉각 반응할 겁니다. K가 고지식한 인물이라고 해서 수치심 때문에 죽어도 되는 인물은 아니잖아요. K를 죽인 건 경청하고 받아주지 않는 선생의 오만과 비열함입니다.

마플 K는 그렇게 둘레 인물들을 힘들게 만들면서 추구한 도의 길은 허상이며 자신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자각에 괴로웠던 거죠. 저는 K가 많이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도의 길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고, 아가씨에 관한 혼란한 감정도 다독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앞당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며 제 마음이 눅눅해졌고요. 소세키 작가님은 냉철하게 이 작품을 집필하셨지만 저는 쿠크다스처럼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의 마음을 향한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을 느낍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 K가 곁에 있다면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어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안아주고 싶어요. K를 죽인 무기는 선생의 비수 같은 행동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론 양자제도 때문에 불행을 초래했다고 생각해요. 소세키 작가님도 우여곡절 많은 이 양자관습 때문에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냈듯이 차남을 집안 서열에서 장남과 경쟁하지 않도록 절에 보내고 숙부집에 양자로 보내는 기이한 관습이 K에게 염세적인 가치관을 물들인 거지요. 자기에게 피와 살을 준 친부모인 혈연에게서 버림받고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에 온기를 쬘만한 마음의 벽난로가 어디에도 없었어요. 여기에 이상과 현실이 충돌되고 영혼까지 통하는 친구로 여긴 선생까지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았어요. 그 사실 때문에 선생은 평생 괴로워했지요. 아가씨와 K 대신 결혼했지만 속죄할 수 없죠. 선생의 부인은 자아를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탁한 생애였습니다. 남성들은 신식 교육을 받고 있는데 하숙집 아가씨는 거문고를 뜯고 꽃꽂이나 하면서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물러 있어요. 작가님의 보수적인 여성관을 엿볼 수 있기도 하고, 당시 시대 풍경을 짐작할 수도 있고요. 여성의 삶이 전근대에 묶여 있다고는 하지만 그 부인의 삶도 K와 남편의 진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가엾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근대에서 잉태한 비극이 근대로 넘어와서도 지속된 거지요.

마플 남성들이 신식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봉건적인 양자제도가 존속했잖아요. 메이지 시대는 경제와 군사제도만 빼고는 의식개혁은 요원한 것 아닌가요?

 메이지 시대란 개인과 국가를 일치시켜 부국강병과 산업입국에 올인한 것 같아요.



 

소세키 개인과 국가에 대한 제 생각은 1914년 가쿠슈인 대학에서 <나의 개인주의>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밝혔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기초가 되어야 할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그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만, 각자가 향유하는 그 자유라는 것은 국가의 안위에 따라서 온도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국가가 위험해지면 개인의 자유가 좁아지고 국가가 태평할 때에는 개인의 자유가 넓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짐작하시듯 국가에 속한 개인은 국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끼실 겁니다. 저는 메이지 시대와 함께 생애 대부분을 살았기에 메이지 시대에 아련한 애착이 있습니다. 어수선하고 급변하는 시대였지만 전통은 유지되었어요. 나님이 지적한 것처럼 양자 입적이라는 구시대적 관습 때문에 정서가 불안정했고요. 마플님도 한국의 군사정권을 한창나이에 경험하셨으니 폐단 때문에 괴로웠겠지만 그 시대라고 해서 모두 나쁜 일만 있던 건 아님을 인정하겠지요.

마플 그럼요. 가난하고 엄혹한 시대라고 해서 참혹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전쟁통에도 아기가 태어나서 희망을 주는 것처럼요.

소세키 나님의 형제는 근대교육을 받았습니다. 메이지 시대를 관통한 저도 근대교육을 받았지만 정신적으로 메이지를 수혈받은 저와 나님의 세대는 국가와 개인의 개념이 다릅니다. 나님의 형은 도쿄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출세지향적 가치관을 갖고 있고, 나님도 향촌이 상징하는 전통주의를 거부하잖아요. 근대는 이처럼 시골인 고향을 떠나 도시지향적으로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해체되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나님의 아버지가 임종하면 이 두 형제는 기일에나 고향에 가겠지요. 고향은 더 이상 돈이 나올 땅도 아니고, 이념적으로 매력도 없는 과거의 흑백풍경 같은 곳입니다. 두 형제에게는 국가보다 개인이 우선합니다. 메이지 천황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님의 아버지도 병세가 위중해졌습니다. 나님은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두고 도쿄의 선생 소식을 듣고 달려갑니다. 여기서 나님에게 두 명의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고향의 아버지와 정신적 아버지인 선생이죠. 근대의 문을 연 메이지 천황 죽음은 전혀 충격이 아니었어요. 두 형제에게는 돈과 도시가 중요했던 거지요. 이 일의 옳고 그름을 논쟁할 의도가 없습니다. 근대는 민족주의와 개인주의를 동시에 창조했습니다. 그러니 국가와 개인을 분리하는 일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마플 고향, 아버지, 국가와 개인을 듣고 있다 보니 시마자키 도손이 쓴 《파계》가 생각나네요. 다 아시듯이 이 작품은 메이지 시대의 일본 사회 변화와 개인의 갈등을 그렸습니다. 도손은 이 작품에서 일본의 전통과 현대, 개인과 사회, 도시와 시골, 교육과 무교육, 종교와 미신을 다루면서 메이지 시대의 격동을 리얼하게 다뤄요.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아버지의 계율을 어긴 백정 출신 아들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전개하는 이 작품은 부자 관계가 주제이죠. 주인공 세가와 우시마쓰가 왜 아버지의 훈계를 어기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만 봉건적인 가족제도에서 탈피해 근대가 수혈한 자아 해방도 다룹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제가 철폐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이야마의 초등학교 선생인 우시마쓰에게는 천민집단 거주지인 부락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사는 아버지가 있었고 덕분에 아들을 학교 선생님이라는 교양 있고 존경받는 직업을 갖게 했습니다. 우시마쓰가 재직한 학교에는 백정출신임을 스스로 밝힌 이노코 렌타로라는 선생이 있어요. 《마음》에서 나님이 선생을 정신적 아버지로 여겼듯이 《파계》에서는 우시마쓰가 렌타로를 정신적 아버지로 삼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백정의 아들이라고 말을 못 해요.

 정신적 아버지에게조차 사회적 불이익이 두려워 자신의 출신을 말하지 못하니 답답했겠군요. 친아버지는 신분을 말하지 말라고 훈계하고. 아버지라는 정체성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군요.

마플 그렇기도 합니다만. 《파계》에서는 정신적 아버지 외에 두 아버지가 더 등장해요. 딸을 절에 양녀로 맡긴 무사 집안의 가난한 아버지, 양녀로 맡은 아가씨에게 음심을 품은 양아버지인 주지승. 이 세 아버지는 성격뿐만 아니라 신분이 각각입니다. 백정인 천민, 무사, 승려는 이전의 가치관과 시대를 순식간에 전복한 급전환기에 사회적으로 힘없는 아버지들로 가족의 분열과 가정의 해체를 맞이한 구시대의 상징이죠. 메이지 유신의 바람이 사회공동체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친 겁니다.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상징입니다. 도손은 《파계》에서 신분차별을 극명하게 대조하는 구도로 세 부류의 교사를 설정해서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은 무기력한 아버지를 조명합니다. 과거의 아버지, 즉 새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념은 유신에 맞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숨어 살 수밖에 없으니 시대의 그늘이 될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의 계율을 어기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우시마쓰에게 렌타로 선생은 정신적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뚫고 나가는 이념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마음》에서 고향은 아버지의 죽음과 도쿄에서의 입신양명으로 잊혀가는 장소이지만 《파계》에서 고향은 극복 할 대상인 것입니다.

 두 작품 모두에게서 느끼는 건 메이지 시대 고향은 중요한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는 건데요. 저에게는 선생님이 사라진 도쿄에서 그 상실감을 잠시 느꼈습니다. 아버지와 고향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고향하면 어머니인데 왜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 등장이 미미하고 아버지가 고향을 대표할까도 궁금하고요. 당대 일본의 부모 서열이 갈린 것 같기도 하고, 작가님이 일부러 의도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마플 그건 작가님이 답변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나님의 선생이 젊었을 때 숙부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하지 않았다면 고향은 어머니를 상징하든 뭐든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겠지요. 고향을 떠날 때부터 염세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고백한 것에서 보듯 선생은 세상을 불신했습니다. 매사에 의심 많고 분석하기 좋아하고 자기 판단을 옳다고 단정했잖아요. 아가씨를 얻기 위해 K의 유서까지 두려워서 비열한 죄를 짓고 말았지만 아가씨를 사랑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소세키 제가 고향을 어머니 대신 아버지로 설정한 건 천황이라는 메이지 유신의 상징을 가부장적 사상에 연결해서 쓰려고 했는데, 혹자는 저더러 가부장적 작가관으로 지적하기도 하더군요.

마플 아니신가요?

소세키 그건 독자의 읽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아가씨를 진심으로 연모한 건 K죠. 선생의 이기심은 K뿐만 아니라 부인에게까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상대의 약점에 치명타를 입혀서 죽음에 이르게 하고 K의 유서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을까 봐 잽싸게 읽는 모습은 세상을 불신하고 마침내 자신조차 기만한 선생의 검은 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 이 대담 초입에 마플님이 바다가 등장하는 장면을 주목한 것처럼 바다처럼 알 수 없는 깊은 움직임, 그 행위의 기원입니다. 자기를 속인 숙부를 그토록 원망하고 증오하고 천하의 비겁한 인간이라고 욕했는데 선생 자신도 숙부와 똑같이 인간실격인 것을 자각했으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움직임으로 지은 죄를 법령이 단죄하는 게 아닌 스스로 단죄한 셈입니다.  

마플 스스로 단죄했다는 말씀은 동의합니다. 선생의 죄의식은 K의 죽음 직후 보여준 야비한 행동에서부터 검질기게 시작한 거라고 보는데요. “내 행복에는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녔다”라는 고백에서 양심의 천둥소리가 들렸거든요. 자기기만이 위험한 건 남을 속이는 일은 쉬워도 자신을 속이는 일은 쉽지 않은데 그마저 자신조차 속일 때 인간은 절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담이 길어졌으니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K와 선생이 추구한 이념을 보면 염결주의, 순결강박주의, 자기본위주의가 연상됩니다. 근대의 혼란은 이처럼 마음을 한 방향으로만 경주마처럼 내달리게 한 것일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나님과 선생은 두 인물이 아니라 동일 인물 같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습니다. 나님은 젊은 날의 선생이고, 선생은 젊은 날의 자신인 나님에게 나만 옳다는 신념에 매몰되지 않을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비치고요.

 선생님 유서에는 이런 뉘앙스가 강한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자네는 나의 과거를 병풍처럼 자네 앞에 펼쳐 보여달라고 졸랐던 거야. 이제야 고백하네만, 나는 그제야 비로소 자네를 인정하게 됐다네. 자네가 진정 순수하게 나의 내면으로부터 어떤 살아 있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야. 내 심장을 둘로 갈라 뜨겁게 쏟아지는 피를 받아 마시려 했기 때문이라네. 그때 난 아직 살아 있었어. 죽음을 원치 않았어. 그래서 날짜를 뒤로 미루고 그 자리에선 자네의 요구를 물렸던 거야. 나는 지금 나 스스로 나의 심장을 도려내어 그 피를 자네의 얼굴에 쏟아부으려 하네. 나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고 그 대신 자네 가슴에 새로운 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네” 선생님은 메이지 시대의 종말을 기점으로 양심과 속죄의 세대교체를 원했던 것으로 추정해요. 늙은 선생님이 젊은 자신인 저에게 남긴 결과물인 겁니다. 바다의 수면만 보고 인간은 바다를 봤다고 합니다. 정말 바다를 본 것이 맞을까요? 바닷속 깊고 어두컴컴한 실체는 수면 바로 아래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햇빛이 닿지 않는 해저에 사는 생물은 기이하게 생겨서 이질감이 들지요. 그 모습도 바다인데 말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경하고 무섭지요. 그 모습이 자신의 또 다른 형상임에도 대개 사람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속이는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둘레 모두의 삶을 오욕으로 물들이죠. 《마음》은 선생님처럼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타자불신에 흠뻑 적셔져 평생 자아투쟁에 괴롭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선생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독자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젊음은 방종하기 쉽고, 늙음은 회한을 돌아보며 신중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잘 안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돈에 얽히는 일은 피하고 싶어 지는데요. 하하

마플 하하하. 소세키 작가님의 돈 얘기를 언제 다뤘으면 합니다.

소세키 돈문제로 힘들었습니다. 하하

마플 작가들이 그렇죠 뭐. 그럼 이상 《마음》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많은데 이만 마음을 놓아야겠습니다. 작가님도 나님도 살펴 가세요. 고맙습니다.

나, 소세키 안녕히 계세요.


-마플 합장(合掌)-


■ 참고도서 : 현암사/마음






매거진의 이전글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