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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Dec 27. 2019

크리스마스 풍경

모두에게 행복한 기억이 되기를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어 산타 할아버지 오시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첫째를 보면 아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자기 생일만큼 의미 있는 날이구나 싶다.

선물도 받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아빠 엄마도 회사에 가지 않아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날일까?


내게 크리스마스는 연애시절 특별한 데이트를 꿈꾸던  말고는 이렇다 할 감흥 있는 날은 아니었는데

첫째가 커가면서 선물을 준비하고, 특별한 일정을 짜면서 자꾸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종교가 없었던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별 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시기만 되면 엄마는 항상 캐럴을 틀었다.

플라스틱 테이프 케이스에 담긴, ‘북 치는 소년’이라는 제목과 웃고 있는 남자아이 얼굴이 실린 겉표지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실버벨’, ‘북 치는 소년’, ‘징글벨’, ‘창 밖을 보라’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주로 아이들의 목소리로 녹음한 앨범이었다.  

예전에는 겨울방학이 크리스마스 전에 시작했기 때문에 방학 초기의 설레고 신나는 마음으로 밖에서 실컷 놀다 어두워질 무렵 집에 들어오면 안 방에서 들려오는 캐럴의 노랫소리와 따뜻한 집안 공기, 식탁에 놓인 과일 그릇에 항상 충분히 담겨있었던 노란 귤...

이런 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크리스마스 무렵의 우리 집 풍경이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있나 없나

머리 맡을 손으로 짚어보던 기간은 아마 2~3년 정도였던 것 같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며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온다고 들떠있는 아이들을 위해 12월이 되자마자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장식해놓고,

거실 창에는 깜빡이는 크리스마스 전구도 설치해놓았다.

저녁 식사 후 모두 씻고 잘 준비를 하기 전 편안한 시간에

유튜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검색해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어 놓는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  

미리 구입해둔 선물을 방 문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양말 모양 주머니에 넣고

산타 애플리케이션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것처럼 합성 사진을 찍는다.


내가 어렸을 때와 사뭇 달라진 풍경이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며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마음만은 그 시절 나나,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근교의 호텔을 찾았다.

어린이집에서 생존수영을 배운 첫째가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해서 실내 수영장을 이용할 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싶기도 해서 미리 예약해두었다.

호텔 식당에서 평소라면 망설였을 가격의 크리스마스 디너를 주문해서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호텔 로비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물론 아이들은 사진 찍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트리 옆에 세워진 사슴 인형을 만져보고, 우리 집에 비하면 광활한 로비를 뛰어다니기 여념이 없다.


행복이 별 것인가 싶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면서

1년에 한 번뿐인 작은 사치를 기쁘게 마음껏 누리기로 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일정이었지만 어쩌면 어릴 적 기억 속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끌어내고 싶은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또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도 이런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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