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뒤면 일곱 살이 되는 첫째는 뭐든 조금씩 빨랐다. 말도 빨리 했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본인의 의사표현도 잘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 말을 안 듣는 시기도 빨리 온 듯 싶지만(ㅠ_ㅠ) 부쩍 좋고 싫음의 표현이 확실한 요즘, 아이의 교육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다섯 살 후반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여섯 살 3월이 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주었다. 보통 초등학교 입학 후 시작하는 것 같아 약간 빠른 감이 있지만, 악기 하나 정도는 능숙하게 다뤘으면 싶었고 피아노는 가장 기본이 되는 악기이니 빨리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등록 후 얼마 간은 정말로 재밌게 피아노를 배웠다. 어느 정도로 몰입했냐 하면 집에 있는 커다란 보드 칠판에 삐뚤빼뚤 서툰 솜씨로 오선지를 그려놓고 음계와 음표를 그려가며 "엄마, 이거 무슨 음인지 맞춰봐! 그리고 이건 사분음표야, 이건 온음표고 저건 쉼표야." 하며 나도 학창 시절 음악시간 이후로 잊고 지냈던 단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렇게 7~8개월쯤 즐기면서 배우는 듯하더니 고비가 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이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 나도 피아노 학원을 3~4년 정도 꾸준히 다녔고 이후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를 하는 것이 수월했기에, 적어도 초등 저학년까지는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이는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연습하는 것이 지겨워서라고 했다. 바이엘 교재의 양손 연습을 하고 있는데, 양손을 모두 연습해야 하니 당연히 전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뛰어놀기 좋아하고,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여섯 살 남자아이에게는 지겨울 법도 했다. 그렇다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바로 그만두게 하자니 너무 짧게 배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태권도나 미술 같은 것은 하다가 그만두고 나중에 다시 등록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피아노는 그만두면 지금까지 익혀왔던 것들이 물거품이 될까 봐 조금만 더 오래 배웠으면 했다. 그런 마음은 일단 뒤로 숨겨놓고 그러면 피아노를 그만두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태권도도 싫고 영어도 싫다고 했다. 무엇이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4시 반, 집에서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두 가지 흥미 있는 것을 배웠으면 했는데 다 싫다니... 그러던 중, 학원에서 매 년 개최하는 작은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는 7세부터 참가하지만 6세 중에서도 6개월 이상 수강한 아이들은 참여가 가능하다고 했다. 연주회에 참가하려면, 한 곡을 완전히 외워서 쳐야 하므로 새로운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에게 참여를 권했다. 의외로 싫다고 하지 않길래 참가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연주회 발표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의 빈도가 줄었다.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일단 연주회까지는 잘 마치고 생각해보자고 아이를 토닥였다. 피아노에 다시 흥미를 붙이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연주회에 엄마가 보러 간다고 하니 집에서 스스로 연습도 하고 나름의 연주회 준비를 했다.
대망의 연주회 날,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려서 첫 번째 순서로 진행했다. 매일같이 집에서 품고 자는 우리 아들인데 말쑥하게 입고 피아노 연주를 하러 청중 앞에 선 모습을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재롱잔치, 동요대회 등 학부모 참여 행사를 전혀 하지 않는 기관에 다니고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떨지도 않고 담담하게 잘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물개 박수를 쳐주었다. 대견하고 기특했다. 연주회를 잘 마치고 다시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 아이는 또 물었다. "엄마, 나 연주회 끝났는데 피아노 학원 언제까지 다녀야 해?" 아이의 물음에 선뜻 답을 못했다. 나는 여전히 계속 피아노를 배웠으면 했고 아이는 정말로 이제 그만두고 싶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 상, 무슨 일이든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고비는 찾아올 수 있고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실력이 향상되면서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인데, 아직 어린아이에게 이걸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는 그 날 네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너무 멋지더라. 다른 누나, 형들처럼 피아노를 오래 배우면 더 멋진 곡을 칠 수 있을 텐데. 계속 배우는 것은 어때?" 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아이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현재 확정된 새 어린이집에 가게 된다면 나의 퇴근길에 같이 하원 하게 되니 3월이면 어쩔 수 없이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다. 우선 2월까지는 재미있게 해 보자고 달래서 오늘도 등원 길에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려 보냈다. 지금은 피아노 학원이지만, 아마 앞으로 키우면서 내가 시키고 싶은 것과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달라 고민하는 일이 무수히 많이 생길 것이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겠지만 부모로서,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이런 고비가 왔을 때 조금만 견디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는 부모가 될까 봐 계속 내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배워두면 좋은 것을 분명히 알기에 시키고 싶은 욕심과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이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것을 익히고 잘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