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를 배우는 책 위에서
네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하나의 낱말 앞에 우뚝이 멈춰 섰다.
contigo : 너와 함께
꼰띠고, 꼰띠고를 몇 번이나 써 보다가
너와, 함께가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있는 이 글자의 생김새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문득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어나 앉아
결연히 선언하시기를
“질료와 형상의 일체,
따라서 이 단어는 절대자의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함께라고 글쇠를 누르자
예민한 워드 프로세서가 황급히 나서
문법적 오류임을 즉결심판한다.
너와 내가 모국어로 만나는 일이
이처럼 나랏말쌈의 법률에 부당하여
붉은 물결표로 밑줄 그어진다면
우리 이 땅 아닌 곳에서라도 다시 만나자.
네 이름 자간 띄어진 곳
사이사이 바람 시린 날이 오면
나를 보러 통변通辯의 바다를 건너오라.
이곳 바르셀로나의 노을 진 해변으로.
저 붉은 물결을 헤엄쳐 내 곁으로 망명하라.
나의 손을 붙잡고
내 몸을 꽉 끌어안으러.
너와나, 하나의 단어單語 되어
이 외계의 뜨거운 낱말밭에
한 알 방언으로 마음껏 혀 굴려보자.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 정복.
꼰띠고, 꼰미고, 아미고,
너와함께,
영원토록 우노.
* 꼰미고 conmigo : 나와 함께
* 아미고 amigo : 친구
* 우노 uno :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