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서윤 Aug 04. 2021

원시적인 게 아니라

약 7년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미술관 소장님이 최근에 나를 Primitive Artist(원시적인 예술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놀리는 것이다.


소장님은 종종 제삼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서윤씨 말하는 거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방금도 문어체처럼 말했어.”


그냥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서른 살 나이에 말을 잘 못한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흠이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건 원시적인 멋도 아닌 그냥 모자란 것이다.

말 하나도 똑바로 못하는 것은 재치 있게 말해 원시적이지, 실은 그냥 모자란 것이지 않나.


대화의 내용도 그렇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나는 유내일은 없고 오늘만 사는 아저씨가 된다.

자칫 즉흥적이고 현재에 열정적인 사람처럼 비칠 수 있으나, 조금만 더 대화를 하다 보면 멀리 볼 줄 모르며 내용에 깊이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것이다.


정말 장기 계획을 세울 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라는 사람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을 때, 실패 감당하지 못할 그릇의 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잔잔 바리 같은 오늘의 계획만 세우며 하루살이같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소장님의 눈에는 primitive artist처럼 보이나 보다.


스무 살에는 목표가 강하고 꿈이 명확했으며 야무져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말을 참 좋아했다.

‘처음은 아니라도 최고가 되는 삶을 살자.’

(두 번째 중2병 시기였다.)


그러나 사람은 결정적인 계기가 없어도 변하게 되는 것 같다.

혹은 ‘열심히 살아야 해!’하는 안 맞는 옷을 꾸역꾸역 입고 살다가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든가.


많이 무기력해졌고

많이 유연해졌다.

큰 목표가 없고 매사에 열정적이지 않다.

지금의 내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절대’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스무 살에 열정적이었다가 서른 살에 많이 무기력했으니 마흔에는 다시 열정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정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