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렇게 구질구질할 생각은 없었다.
너무 덤덤한 마무리가 문제였는지 뒤늦게 후폭풍이 몰아쳤다. 도대체 연애가 뭐라고 모든 노래 가사가 내 얘기 같고 구구절절 맞는 소리만 늘어놓는지, 한 줌의 위로도 없이 무수히 많은 공감만 남겨둔 채 누구나 그렇듯 홀로 이별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결국 첫 연애의 첫 이별에 어쩔 줄 몰라 곱씹고 곱씹다 결국 이런 짓까지 하고 말았다. ‘전 남친에게 띄우는 꽤 오래 만날 줄 알았던 우리가 헤어진 이유’로 시작하지만 전 남친이 이 글을 봤으면 하는 마음 반 안 봤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그림과 글을 기록한다.
PC방에서 놀다 부랴부랴 나온 그 친구와 가장 날씬해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나온 나는 시작부터 기대치가 달랐다. 너무 기대가 없어서였을까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확신 때문이었을까 소개팅으로 만난 우리는 첫눈에 반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래도 가장 최근에 구매한 셔츠를 입고 나왔다는데, 그 말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몇 년이 지났어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그날의 페이즐리 패턴 셔츠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첫 만남의 장소는 인사동 골목에 있는 오래된 찻집으로 다소 어두운 조명 아래 낙서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당시 나는 과제 때문에 낙서화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다행히 그 친구도 바스키아의 작품을 알고 있어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덕분에 두 번째 만남을 망설일 필요도 없이 그 친구가 알고 있다는 대학로에 위치한 ‘바스키아’라는 칵테일바를 두 번째 만남의 장소로 정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장마철에 소개팅을 해 비 오는 날이면 예쁜 추억이 많다. 처음 만난 날, 첫 데이트, 특별한 이유 없이 건넨 선물들. 두 번째 만남에선 같은 우산을 쓰고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과 칵테일바 ‘바스키아’에 갔다. 별로 인기가 없는 곳인지 그날의 손님은 우리를 포함한 두 테이블이 전부였다. 한차례 파스타를 먹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어색한 거리에 앉아 낯선 칵테일을 마시며 성선설을 이야기했다. 영화 ‘캐빈에 대하여’를 얘기하던 중 어쩌다 성선설까지 넘어갔는지 모르겠으나 나름 진지하게 철학을 나누고 최근에 읽었던 책, 가장 좋아하는 영화, 여행지 등을 알아갔다. 대화가 끊어질 듯 말 듯 한참을 같이 있다, 막차를 타고 보내며 첫 데이트가 끝이 났다.
앞으로 이어질 그림과 글은 이별로 가는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이다.
헤어짐의 결정적인 이유가 없어 드라마틱 한 재미는 없지만 당사자들은 꽤나 심각했던 과정이 담겨있다.
‘이거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이 맞을 수도 있을 만큼 극 사실주의로 풀어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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