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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막은 자의 것이다.

(화성앞바다, 자전거여행)(15)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333077535


자본주의는 무엇이건 돈으로 평가하려한다. 돈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 누구나 함께 쓰는 것은 아무나 쓸 수 없도록 바꿔간다. 물고기를 잡는 것도, 미역을 키우는 것도,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것도 돈으로 바꾸어 나간다.


간척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갯벌이었다. 김훈 작가가 말한 것처럼 '갯벌은 막은 자의 것'이다. 갯벌을 못 들어가게 할 수 없으니 갯벌을 막았다. 국가는 자본가의 힘을 빌려 갯벌을 막아 땅을 만들었다. 자본가는 비용만큼 땅을 받고, 나머지는 국가의 소유다. 비용은 부풀려지고, 막 간척된 땅은 헐값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 값은 올라 자본가와 국가는 큰 이익을 본다. 갯벌과 수로가 사라진 대가다. 조개를 잡았던 아낙과 선창에서 물고기를 내렸던 어부가 사라진 대가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간척지다. 간척사업을 마무리하던 중 일제는 2차대전 패배로 기울고 있었다. 일제는 간척사업을 일제에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매각하였다. '갯벌은 막은 자의 것'이니 끝도 없는 간척지와 염전은 1인 소유의 것이 되었다. 간척지만큼 갯벌과 수로는 사라졌고 거기서 자유롭게 먹고 살았던 사람들은 1인 소유의 논과 염전에서 일하는 품팔이가 되었다.


자본가는 서울에서 살았으므로, 간척지에서 나온 소출은 1987년까지 모두 서울로 올려졌다. 1945년에 광복이 되었지만, 간척지의 사람들은 그때까지 소작농과 품팔이로 살아야 했다.





고창 소작답 양도투쟁, 제36주년 기념식 열려(23.9.11.)


소작답 양도투쟁 의미를 되새기는 ‘고창삼양사 소작답 양도 제36주년 기념식이 11일 심원면 궁산마을 초입에서 열렸다.


이곳은 1985년 고창 삼양사 소작 농민들이 1949년 토지개혁 대상에서 제외된 삼양사 소유의 간척지를 되찾기 위해 투쟁을 벌인 곳이다. 형식적이었던 1949년 토지 개혁과정에서는, 10여 년 간 소작을 주고 있던 삼양사 소유의 고창 간척지가 미간척지로 둔갑돼 농지개혁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1985년 4월, 고창 삼양사 소작 농민들은 ‘삼양사 소작답 양도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각 계에 청원서를 냈다. 같은 해 8월에는 고창군 심원면 궁산 저수지에서 집단적인 시위를 벌이는 등 조직적인 투쟁을 벌였다. (민중의 소리 김철수 기자)


고창 소작답 양도투쟁은 1949년 토지개혁에서 제외된 삼양사 소유의 간척지를 되찾기 위해 1985년 250여명의 농민과 학생들이 연대해 투쟁한 사건이다 12차례의 협상을 통해 결국 평당 1881원(당시 평당 1만원 정도)에 유상 양도하기로 하고 2년간의 투쟁이 끝이 났다.


고창군과 기념사업회, 기념탑설립추진위원회는 이날의 역사적 의의와 정신을 기리고 농민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한 헌신과 노력을 재조명하기 위해 매년 기념행사 개최와 금년도에는 궁산마을 입구에 기념탑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노형수 부군수는 “고창 소작답 양도투쟁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혁명의 역사에 많은 의미를 남겼다”며 “토지소유권을 두고 대지주에 맞선 싸움이 양측의 합의를 통해 농민들에게 양도된 사례는 유일하게 고창뿐이다”고 전했다.(전라일보, 신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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