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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힘을 따라간다.

(일산, 자전거여행)(14)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326105931



나는 간척지에 살았다. 간척지는 모든 것이 반듯한 최첨단 구조물이었다. 논도, 수로도, 둑방도, 염전도, 저수지도 모두 축조된 것들로 반듯했다. 집도 염전을 따라 늘어선 반듯한 동네였다. 사리에 밀물이 들어오면 염전에 써야해서 양수장에 가두어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바닷가 마을이었다. 산은 낮게 잦아들었다. 염전 밖은 갯벌과 바다였다. 바다 뒤에는 다시 섬과 육지가 보이는 육지로 둘러쌓인 바다였다. 무한한 바다는 아니었지만, 머나먼 섬은 영원히 가볼 수 없는 외국의 어느 나라처럼 느껴졌다.


젖어 있지 못하면 그건 더이상 갯벌이 아니니 갯벌은 언제나 젖어 있었다. 갯벌에는 언제나 무한의 숫자로 나와 거품을 만들고 있었다. 어린 나는 갯벌에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졌다. 돌이 '퍽' 소리를 내며 뻘에 박히면 수천 마리가 게가 순식간에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성취감에 나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돌멩이를 던졌다.


모든 염전에는 바닷물을 퍼올리는 양수장이 있다. 기름냄새 가득한 양수장에 들어가면 엄청난 피스톤이 2개 있었다. 2미터도 훌쩍 넘는 것이었는데 커다란 원양어선에서 떼어온 것이라고 했다. '퉁', '퉁'하면서 돌아가는데 얼마나 소리가 크던지 옆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스톤은 어린 아이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은 오지 말라지만, 나는 용접을 구경하러 양수장에 갔다. 쇠를 붙이기도 하고, 쇠를 자르기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쇠를 붙일 때는 용접봉을 쓰니 작은 붗꽃이 엄청나게 튀었고, 불꽃은 나를 홀리기에 충분히 멋졌다. 나무가 탈 때 볼 수 있는 빨간색과 흰색 불꽃아닌 파란 불꽃을 볼 수 있다. 파란 불꽃에 잘려나가는 쇠를 보며, 쇠보다 불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최첨단의 시설은 모두 사라졌다. 거기엔 골프장이 들어섰다. 첨단은 시절이 지나면 또다른 최첨단에게 자리를 내어줄 운명으로 살아간다. 그곳에 변하지 않는 바다가 있다. 여전히 밀물이 들어서 갯벌을 적셔주고, 썰물로 빠지면 게들이 기어 나온다. 염전이 사라져도, 골프장이 문을 닫아도 밀물과 썰물은 계속될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 자체에 힘이 있고, 변하는 것들은 그 바깥에 힘이 있다. 변하는 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힘을 따라간다.


https://blog.naver.com/pyowa/223324107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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