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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이 책 밖으로 나왔다.

(한강하구, 자전거여행)(13)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30471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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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산다. 순간 순간이 이야기고, 사건 사건이 이야기다. 오늘도 나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가득했을 것이다. 오늘 나의 이야기중 하나는 아침 7시 30분에 있었다.


매일 7시 커피숍에서 공부하시는 할리스 아저씨(그냥 내가 붙인 별명이다)가 있다. 출근길에 보니 할리스 앞에 지게차가 다니고 있었고 공사를 하는지 불이 꺼져 있었다. 순간 '그럼 할리스 아저씨는 어떻하지?' 이런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안절부절 서성일지도 몰라'라는 상상으로 유쾌하게 걸어갔다.


건물에 들어서자 할리스 밖에 할리스 아저씨가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군'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할리스 아저씨 곁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안 보는 듯 뜯어봤다. 50대 후반의 아저씨였다. 빨강파랑 파카를 입었지만 다부진 체격에 눈동자에 힘이 있었다. 역시나 뭔가 불안한 듯 할리스 문 앞을 안절부절 서성였다. 소설 속 주인공이 책 밖으로 나와 안절부절 못하는 듯 했다. 내일부턴 다시 커피숍 유리창 통해서만 볼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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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은 읽어도 읽어도 놀랍다. 이번 챕터에서는 바위를 묘사하는 글이 바위처럼 '턱'하니 다가왔다.


수만 년을 물의 흐름에 씻긴 바위들은 그 몸 속에 흐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든 연약한 부분들을 모조리 물에 깍인 그 바위들은 완강한 단단함으로 물속에 박혀 있었는데, 그 단단함은 유연하고 온화한 외양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바위는 박혀 있는 바위인 동시에 흐르는 바위였고, 존재 안에 생성을 간직한 바위였으며, 가장 유연한 형식으로 가장 강력한 내용을 담아내는 바위였다.


그것들은 수만 년을 깍인 과거의 바위였고, 변화와 생성을 거듭해갈 미래의 바위였으며, 박힌 자리에서 흐르고 또 흐르는, 출렁거리는 바위였다.


마지막에 '출렁거리는'에 감탄했다. 저 자리에 '현재'나 '지금' 같은 단어를 썼다면 내용과 비유가 아무리 훌륭했어도 뻔하디 뻔한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출렁거리는'을 씀으로써 살아있는 찬란한 문장이 되었다. 김훈의 문체와 필력은 읽어도 읽어도 놀랍다. 어디가 끝이란 말인가.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욱 감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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