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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May 22. 2024

영원한 것은 아름다울 수 없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3/6)

https://blog.naver.com/pyowa/223454655189


흔한 것은 당연하게도 소중하지 않다. 흔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건 '영원'이 붙게 되면, 거짓이 되거나 아름다움을 잃는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고통', '영원한 생명', '영원한 직업', '영원한 건강'........



은하철도 999의 결말은 어릴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영원한 생명의 별'에 도착한 '철이'는 알게 되었다. 영원한 생명이란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건강도, 희망도, 시간도 무의미하게 되어 결국 생명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 세상이었다.


사미승은 금각도 전쟁과 함께 불타 사라지는 소중한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금각은 불타지 않았다. 금각은 도도하게 영원의 미로 우뚝 서있다. 금각은 사라지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내려보고 있었다. 금각은 금박과 황금 봉황으로 꾸며진 커다란 어둠의 유기체였다. 사미승은 인생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려다가도, 금각의 권위와 아름다움에 휩쓸려 삶에 집중할 수 없었다. 금각이란 물질이 삶의 아름다움을 방해했다. 


절대적 존재의 미는 어딘가에 스스로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원한 미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와 상관없는 미가 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런 미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내게는 미美가 아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따분한 물체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영원을 동경하지만, 사라지는 것에 공감한다. 인생은 사라지기 마련이어서, 우리는 영원을 공감할 수 없다. 우리는 사라지는 것을 애틋해 할 뿐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라져버리는 일상의 모든 것은 인간에게 아름다울 자격이 있다. 인생에서 격리된 아름다움은 인간에게는 무의미한 아름다움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거기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은 아름답다.


이번 달 금각을 가까이서 봤다. 전쟁 후 방화로 불타 다시 지어진 금각이다. 사진보다 훨씬 더 진한 금박에 둘러쌓여 있었다. 금각의 지붕에는 커다란 봉황이 시간은 나와 상관없다는 듯이 날개를 펴고 있었다. 



여자는 내 환영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그것은 전혀 처음보는 별개의 개체라는 연상에 그쳤다. 머나먼 별의 광선이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이 지상의 모습이 변해 있듯이, 여자가 변질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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