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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는이가 Jun 16. 2020

독일에서 시골로 귀촌하다.

어떻게 시골에 살게 됐어?

서울촌놈은 평생 한 번 가본 적 없던 남쪽.

하루에 버스가 네 번 오는 작은 시골마을.

추억의 LPG 가스통에 연결된 가스레인지.

난방은 당연히 기름보일러.


와~그런 데서 어떻게 살아?
귀촌을 왜 한 거야?



어쩌다 시골에서 살 용기를 냈냐는 친척의 질문에 진심을 말하려니 머리에서 쥐가 나려고 한다.

“그냥 했어~”

라고 건성으로 받아치긴 했는데 늘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 방대하고 묵은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찾아 비행기 타고 5년 전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때는 겨울을 앞둔 가을.

우리는 어둑해지는 호숫가에 앉아서 겨울 냄새를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호수 건너편에는 손에 빵을 쥔 노인이 있었고 거위를 포함한 모든 새들이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래서 그 새들은 배불리 먹었을까?

다음날 아침에도 혹시 모를 맛있는 우연을 찾아 어슬렁거렸으리라...... 나도 그렇게 길들여져 있었다.




큐레이터였던 그이와 혼인신고만 하고 바로 독일로 갔었다. 그건 예술가로 여생을 살고 싶은 내 의지가 반영된 행보였다. 독일에 가보니 듣던 대로 모든 면에서 좋아 보였다. 오후 4시의 놀이터에는 아빠들이 많이 있었고 노동자들은 여유로웠으며 휠체어와 유모차가 어디든 갈 수 있는, 대화와 토론이 일상인 곳. 그러나 독일이 아무리 선진국이고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지만 그것은 돈을 쓰는 외국인의 시선 거기까지의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방인 딱지를 뗄 수 없기에 억울하고 난처한 상황은 불가피했고 몇 번 그런 상황에 처해보니 ‘모국에서는 뭔들 못하랴...'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고작 한국에서 쥐고 있던 집 보증금과 몸이 전부였던 우리. 더 나은 사회에 속하면 저절로 변할 나를 기대했나 보다.


 타국에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사건이 지나가고 우리는 한동안 독일 곳곳과 주변국을 계획 없이 돌아다녔다. 그 텅 빈 여행 중에 남편이 조심히 내민 카드가 있었으니... 그 카드에는  이천만 원으로 혼자 집 짓기라고 쓰여 있었다.


실제로 인터넷 속의 그 남자는 영수증을 들이밀며 이천만 원으로 집을 지었다 주장하고 어떤 노인은 오백만 원에 밭 딸린 집을 사서 고쳐가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금액부터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내 손으로 낙원을 만드는 그들은 주로 남쪽의 기운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남쪽나라라니..

뭔가 하와이스러운 환상이 그려지지 않는가!


우리라고 못할 건 뭐야.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어,

중고차라도 사려면 하루빨리 남쪽으로 가야 해!

내가 더 서둘렀다.


그렇게 낙원을 찾아 떠났던 긴 여행이 마무리되고

낙원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안녕! 베를린.

당케! 베를린.



이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은는이가의 유튜브채널에 놀러오세요^_^

https://youtu.be/bMBWjogVa2g


** 독일행은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기에 좋은 수단이 되어줬습니다.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떨어져 의식할 대상이 없어졌을 때 진짜 내 모습이 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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