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떠났던 이유?
때는 2016년 3월 초
장소는 남해의 어느 바닷가 옆 마을
뚫린 창호지 사이로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이 따귀를 때리던 아침을 기억한다. 모닝콜의 내용인즉슨 오늘은 파래를 따는 날이니 채비를 하고 어디로 모이라는 것.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 한국 시간으로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우리 부부는 작은 언덕 위에 얹혀진 오두막집에 나란히 누워 아직도 허튼 꿈을 꾸고 있었다.
원래 계획된 목적지는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저렴하기로 1등인 해남이었지만 건너 건너의 연고로 인해 귀촌의 시작을 남해에서 하게 되었다. 남해를 거꾸로 읽으면 해남. 반대의 발음처럼 남해는 우리에게 해남과 정반대의 이미지로 남았다.
* 우리가 귀촌 지역을 남쪽으로 정한 이유는?
1.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땅값이 저렴해서.
2.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3. 적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만큼 겨울이 따듯할 거라는, 곧 난방비로 인한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는데.......
그러나 우리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남해는 관광계의 핫플이었던걸 몰랐다.
남해의 빼어난 경치를 내 집 창 밖에 걸어두려는 경쟁은 치열했기에 이미 높아진 땅값이 우리의 손에 닿을 리 없었다. 또한 당시에 지냈던 시골집의 냉기는 3월이 되어도 식을 줄 몰랐다. 단열이 잘 되는 현대식 구조의 집에 살면 문제 삼을 일은 아니었지만 남쪽이라도 꽃샘추위를 만만히 볼 일이 아니긴 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남해.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었건만,
한 달이나 머물렀건만,
땅을 찾아다녔던 한 달이 얼마나 팍팍했으면 그 흔한 멋진 풍경사진 한 장 없다.
그런데 우리가 결정적으로 남해를 떠난 계기는 높은 땅값이 아닌 아주 사소한 사건이었다.
귀촌을 시작한 만큼 우리의 각오는 대단했다.
1. 마을회관에 가서 음식 돌리기.
2. 깍듯이 인사하기.
3. 일손 돕기.
귀촌인을 위한 지침서에서 일러준 대로 행동했고 그런 행동은 어느 선 까지는 원주민과 융화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연애는 책으로 배울 것이 못된다.
우리가 가진 액수에 맞는 땅이 흔치는 않았지만 없는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지 괜찮은 건지 도대체 판단이 안됐다. 귀촌지원센터에 가서 상담도 해봤지만 갑자기 고사리밭을 사라고 보여주기도 했다. -_-;;;
부동산 중개소와 남해 곳곳을 매일 쏘다닐수록 우리는 점점 눈이 침침해져 갔다.
상심한 나날 중, 바닷가에서 바위에 붙은 굴을 돌로 깨서 뜯어먹곤 했는데 그 별것 아닌 행동이 위로가 됐다. 짭짤하고 달달한 그 굴 맛이 왜 이리도 서글프던지.... 그 맛을 어디선가 보게 된다면 해가 넘어가던 어스름한 하늘이 떠오를 것 같다.
물론 살던 마을에도 빈 집은 있었다. 그러나 시골집의 속내는 심플하기 쉽지 않다. 땅과 집주인이 제각각 이거나 땅 하나를 열댓 명이 나눠 가졌다던가 혹은 주인을 아예 만나 볼 수 없다.
그렇게 땅을 찾던 중에도 원주민 마음에 들기 위한 노력은 이어졌다. 어느 날은 길 건너의 강아지를 키우는 집 아저씨께서 집수리를 하고 계시길래 그이가 대뜸 가서 도와드렸다.
개를 키우지 않는 조용한 마을에 유일하게 강아지를 키우던 집이었다. 강아지들은 나만 보면 앙칼지게 짖어대서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소란을 피운 것 같아 위축되었다.
허름하지만 안정되고 소박한 그 집이. 아니, 원주민 의 편한 마음 상태가 부러웠다.
일손을 돕던 중에 아주머니의 식사초대를 받으며 마음이 따듯해지기도 했고 또 아저씨께서 그이에게 밭을 무상으로 무기한 빌려주신다고까지 하셨다. 애물단지 대나무 밭인지 산 꼭대기 밭인지 어떤 밭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리를 뻗을 자리라도 생긴 기분이 좋았었다.
다음날 강아지네 집으로 가는 그이의 뒷모습이 활기차 보였는데 웬일인지 점심도 안돼서 돌아왔다. 그이를 대하는 가족들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싸 하더란다. 어제의 그 선언은 합의되지 않은 아저씨 혼자만의 의견이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도저히 남해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 비단 그 작은 일화 때문이었겠는가마는 남해를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원래 가려던 해남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업을 먼저 구하자!”
그이는 독일에서부터 맛있다는 이유만으로 치즈와 버섯에 관심이 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구인중인 해남의 버섯농장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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