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찾아 떠난 해남, 일 년의 기록.
우리는 드디어 마침내 땅을 사게 된다. 해남에 머문 지 1년 만의 일이다. - 2016년 10월 23일-
그이는 버섯농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일 하는 동안 일터와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아파트를 월세로 임대하여 살았다. 저렴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버섯농장이 있는 작은 마을의 빈 집을 임대할 뻔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러지 않길 정말 잘했다.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생활은 시골살이에 투입되기 전, 준비 운동하기에 괜찮은 선택이었다.
버섯농장은 박봉에 토요일까지 출근해야 했고 바쁠 때는 일요일도 출근했다. 20대 청춘도 아닌 사람이. 더욱이 육체노동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버텨내기에는 쉽지 않을 고강도의 업무였다. 그때 상한 손목 인대가 아직까지도 말썽이다. 일은 고됐지만 이때 인내와 끈기의 굳은살을 형성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그이가 출근하면 나는 매일 아침에 수영을 하고 낮에는 인터넷을 통해 일요일에 답사할 빈집과 시골 땅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이가 일하는 버섯 농장은 외딴 마을에 있었기에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도시남자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도시락을 싸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식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 반찬을 싸 달라는데.... 마른반찬 말고 그런 게 있나? 급식이 없던 시절의 우리 엄마들은 도시락을 매일 어떻게 싸 댔을까?
주중에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게 보내고 일요일이 되면 정해놓은 동선을 따라 땅을 보러 다녔다. 어떤 일요일은 하루에 서너 지역을 답사하기도 했다. 우리의 일요일은 금보다 귀했다.
시골은 널린 게 빈 집이고 흔한 게 노는 땅이지만 팔지 않거나 소유관계가 복잡하여 정작 살 수 있는 땅은 드물었다. 또한 평당 가격이 낮으면 몇천 평을 사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적당한 규모는 평당 가격이 높았다. 농가주택에 한했던 선택지가 너무 적어서 오죽하면 선택의 폭을 임야, 농지, 맹지로 넓혀보기도 했다. 생활 기반이 없는 곳에 집을 지었더라면 나중에 상상도 못 할 더 큰돈이 들었겠지? 우리의 예산으로 마음에 드는 땅을 찾기는 마치 냇가에서 사금 캐기 같았다.
인터넷 부동산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한계에 달하여 다른 출구를 찾던 중, 귀농 귀촌 빈집정보 사이트에 기록된 빈집 주소를 기반으로 동네 염탐을 한 것이 결정타였다.
그이가 왠지 끌린다며 주소 하나를 집었고 찾아간 그 집은 위성지도와 지붕 색도 다르고 키우는 개도 있었다. 빈 집이 아니었다. 주인이 있었던 것이다.
늘 그랬듯 기대 없이 가볍게 갔고 낙담하는 것에도 이골이 나서 돌아서기도 잘 해왔는데 이번은 달랐다.
조용히 돌아서려는데 전면에 펼쳐진 마운틴 뷰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주인 부부가 때마침 마당을 돌보고 있으시기에 용기 내어 인사했다.
위의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