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는이가 Sep 27. 2020

폐가와 시골 땅을 샀어요.(2부)

시골에서 내 땅 만나기부터 계약까지.


마당의 꾸밈새에서 한눈에 귀촌 가정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이를 앞장세워 쭈뼛거리며 인사하고 다가갔다. 왜 이 집 앞을 기웃거리고 있는지부터 말을 시작했는데 관심 있게 들어주셔서 대화를 이어가기 편안했다. -2016년 10월 23일-

그 관심이란, 겪어본 이들 사이에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아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모르는 사람에게 차를 내어주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이곳에 자리 잡은 과정의 큰 지도까지 펼쳐 보여주셨다. 그분들은 마음이 가는 땅을 찾아 오랜 시간을 다녔었고 냉대를 겪으며 차라리 부동산을 갈까도 하셨다고.
결국 우리처럼 군에서 만든 귀농, 귀촌 빈집 정보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경위였다. 빈집 정보에는 마을 이장님 번호가 적혀 있으나 현재 이장님은 아니란다. 빈집 정보 업데이트가 느린지 5페이지에 달하는 목록은 2015년 3월 24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을회관의 어르신이나 이장님을 무작정 찾아가서 환대받으며 정겹고 싼 집을 얻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동화책 속에 넣고 싶다. 물론 예전에는 그렇게 얻는 과정이 쉬웠을지도 모르나 요즘은 시골 땅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불가능이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점점 작아지는 나를 만나볼 수는 있다.
외지인을 반길 마음도 관심도 없을뿐더러 특히 관광지에 가까운 마을일수록 "네 놈도 그놈이냐?” 하는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웠다. 내가 좋다고 여기면 이미 남들도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소리, "당신들 한발 늦었어~"  입장 바꿔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생각해보면 마을 주민의 그런 반응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부정하고 싶어도 내가 바로 '그놈' 맞기 때문에 머쓱하거나 붉어져 근처 국밥집에 가서 따듯한 국물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대화 중간에 아저씨께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셨는데 이 마을에 땅이 있긴 하다니 저수지 건너편 가게로 가보라 일러주셨다. 처음에는 그 말에 솔깃하다거나 살만한 땅 있느냐고 물어보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차를 얻어마시고 있는 이 집의 마당에 가득 찬 월출산만 눈에 들어올 뿐, 나는 언제쯤 누군가에게 차를 내어줄 수 있을지 그저 먼 일 같을 뿐,




중개인을 만나다.

아쉬운 인사를 하고 나와서 동네를 구경했다. 마을에 가구수는 많지 않았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별일 없어 보였다. 여느 마을처럼 빈 집이 있긴 하지만 죽어가는 마을 같지 않았다. 집을 짓고 있는 곳도 있고 귀촌 가정이 몇몇 있어 보였다. 월출산 뒤로 해가 넘어가니 몰랐던 개울 소리와 산새 소리가 크게 울린다. 

피곤하니 어서 집에 돌아가자~” 군침 닦고 동네를 나서는데 화장실에 볼 일이 급하여 저수지 건너편 허름한 휴게소에 들렀다. “바로  아래가 말씀하셨던 예전 이장님 가게 인가? 어쩌다 왔으니 가보기나 ... ........?” 가게 앞까지 갔으면서도 우리는 돌아설 핑계를 찾고 있었다. 저녁 밥때라 분주해 보이시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긴 망설여져 돌아서려니 숲의 어둠 속에서 내 상체만 한 닭 두 마리를 거꾸로 들고 걸어오는 큰 걸음이 보인다. 그 걸음의 그림자 안으로 그이의 등을 밀어 넣었다. . ".. 혹시  마을에......"라고 그이가 입을 떼기 무섭게 알아들으시고 반기셨다. 엇! 이런 친절한 반응? 어색했다.


나는 대화 보다도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닭 머리에 시선이 꽂혔고 이 작은 생명의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해서 대화를 끊고 기다리겠다 했다.


기다리다가 대왕 호박에 눈이 갔다. 구 이장님이 개미 눈곱, 도마뱀 코딱지, 닭 귀지를 넣고 마법수프를 젓고 있음이 상상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다.
대화는 간결하고 직선적 이였다.
대략적 위치를 설명하시는데....


아까 동네 구경 중에 사진 찍은 그 집일세?

마음에 들어서 찍은 건 아니고 그저 제대로 무너진 폐가 사진이 필요해서 찍은 건데.. 이 집이라니!?


내 핸드폰을 받아 들어 사진을 보시더니 여기가 맞다고 하신다. 나는.... 그 집의 정보보다 침 흘리던 두 마리를 처리한 손, 내 핸드폰을 잡고 있는 구 이장님의 손에 시선이 꽂혔다.



•170평.  차후에 270평으로 알게 됨
•지목은 모두 대지.
•등기 깨끗함.
•소유주 1인.
•군더더기 없는 가격.

이제야 점점 시선이 구 이장님 눈동자로 옮겨졌다.
이 정도라면 매입하는데 걸림이 없어 긍정의 뉘앙스만 풍겼다.

1. 남향
2. 우리가 원하는 산기슭의 요란한 지형.
3. 마을의 끄트머리에 외져있음.

4. 차로 진입 가능.
5. 군청 가까움.
6. 정신적 지주 귀촌 선배 계심.  
7. 상수도, 지하수 동시 사용.


이 정도 장점이라면 다른 단점은 단점이 안 되겠다.
그래도 시골 땅은 재 매매가 어렵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며칠은 고민하고 낮에도 가보고 해야겠는데 구 이장님은 다음날 바로 계약서류를 작성하기 위한 명의자 정보를 물어보셨고... 우린 어리둥절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우리는 염치 불고하고 이 마을의 귀촌 선배 부부에게 조언을 청하였다. 퇴근하고 늦은 시각이라 잠깐만 시간을 뺏을 생각이었는데 그분들이 더 신나서 긴 시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금은보화 같은 정보는 처세의 지침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쭈뼛거리고 찾아온 이방인에게 그렇게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고 아직도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계약 이틀전.

그다음 날, 아침 일찍 구이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으니 당장 도장 들고 오라고 하신다. 근무 중 갑자기는 시간을 못 낼뿐더러 해 뜰 때 한번 더 보고 나서 선택의 마침표는 내가 찍고 싶었다. 갸우뚱하고 있는 중에 집주인은 벌써 계약서 도장 찍고 올라가셨다고 한다..... 사람 불안하게 워째 이리 과하게 서두르시는 걸까? 그이가 민방위 훈련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밀어 금요일에 뵙기로 했다. 목요일엔 그이가 민방위 훈련 가면서 나를 현장에 내려주었고, 그 땅 근처에서 나 혼자 시간을 보내봤다.


초현실적이다. 대나무가 집을 부수고 있었다. 볕이 잘 드나보다.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마음에 종이 울렸다.
산이 둘러 있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별일 없을 것 같아.

흠을 잡으려 애썼지만 크게 싫은 구석이 안 보였다.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은데 그이를 기다리기까지 족히 세 시간은 남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빈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여자를 나만 빼고 다 보고 있었더라. 마을이 조용해서 아무도 안 보는 줄 알았다. 목이 말라, 무화과 밭에서 몰래 하나 따먹었는데? 정처 없이 마을을 더 돌아다니기는 머쓱하고 읍내로 나가는 차편을 몰라서 저수지 건너편까지 걸어 나갔다. 휴게소 화장실 앞의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스티로폼 조각을 주워 깔고 앉아 멍하니 있으니 시간이 금방 갔다.




계약하기로 약속한 금요일

도시의 부동산처럼 [계약금-중도금-잔금]이런 순서는 없었다. 구 이장님을 만나 법무사에서 도장 찍고 계약서를 완성했는데 땅값 이외에 각종 세금+법무사 수수료+중개 수고비를 그 자리에 송금해야 한다. 구 이장님과 법무사는 친구사이라고 한다. 풀어놓은 예금에 여유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모르고 갔는데 다행히 그 자리에서 완납했다. 당시는 땅을 샀다는 기쁨보다 헐렁해진 통장에 허탈한 마음이 컸다.


*여기에서 중개 수고비란,,,?

부동산의 중개인에게 매매금액의 몇 %를 계산하여 주는 그런 수수료가 아니다. 부동산을 끼고 한 계약은 아니지만 수고해주신 분이 계시니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인데, 약간 과하다 싶은 정도로 하면 되나 보더이다. 그이가 4일을 온몸으로 일하고 2만 원 더한 액수가 훌러덩~사라지니 속이 메어지지만... 구 이장님이 나서면 대부분의 일처리가 수월하다니...... 앞으로 이 마을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그래야 한다 하더이다. (지금 생각하면 고급 정보의 가치. 발 벗고 나 서주신 것. 그 감사 표시 하나의 목적으로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시간 지나 생각하면 아쉽지 않게 드리는 편이 늘 후회가 없다.)




땅주인이 되다.

법무사에서 몽유병 환자의 한밤중 같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이제 당당히 내 땅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비 온 뒤의 풀숲을 헤집고 다녔더니 양말까지 축축해졌는데  발가락의 눅눅한 불쾌감이 붕 뜬 기분을 현실로 잡아끌었다.


전화가 왔다.
고액 거래라 유심히 봤는데 상대편에서 바로 빼가더라, 보이스 피싱당한 것 아니냐, 은행에서 온 확인 전화였다.


구 이장님의 서두르시던 모습이 오버랩되었으나...... 에이 설마~했다.

곧이어 전 땅주인의 전화를 받았다.
집 뒤로 이런저런 나무가 있고, 집 앞에 모싯잎도 따먹으라고 일러주셨다. 땅주인은 떨림이 섞인 벅찬 목소리였다. 우리의 쿨 거래에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아쉬움도 보였다. 아부지께서 명당이라며 팔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는데 아드님이 결혼을 하게 되어 급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우리아부지도 언니 결혼식 전에 다급히 시골로 땅 팔러 가셨던 생각이 났다.

그날은 이제부터 해야 할 백만 가지의 숙제를  펼쳐 놓고 어지러운 밤을 보냈다.

곧 시작될 개고생의 깊이와 넓이는 모른 채......




위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은는이가의 유튜브 채널에 놀러오세요.

https://youtu.be/Db4L88czrIA


매거진의 이전글 폐가와 시골 땅을 샀어요.(1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