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지 우는지 춤추는지 넘어지는지
아이스크림 할머니에게 호미는 마치 신체의 일부 같았다.
“머더러 시골에 왔데! 여그를 머더러 왔어어~! “
저 멀리 밭에서 호미질을 하시기에 꾸벅 인사를 드리고 지나가면 한참 뒤 등 뒤로 허공에 돌 던지듯 외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말은 즉, 도시에서 온 젊은이는 고단한 농사일에 발 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겠지.
아이스크림 할머니는 해가 넘어가도록 호미질을 하시다가 날숨과 함께 ‘아이고오-! 아이고!’하며 힘듦을 토하곤 하셨다. (언젠가 댁에 갔는데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주셨기에 아이스크림 할머니라고 부르게 됐다.) 할머니는 농사가 싫다 싫다 하면서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밭일을 하셨다. 오전 밭일하고 점심에 집에 들어가 평상에 누워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는데 그게 벌써 작년 5월의 일이다.
깨와 고추모종이 심어 있던 자리는 장례를 치른 뒤 할머니의 딸이 아버지를 도와 나머지 농사를 이어갔다. ‘따님이 아버지 식사 챙겨드릴 겸 잠시 계시려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수고를 생각해서 밭은 어쩔 수 없이 하나보다 했는데 이듬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본격적으로 밭이 돌아가고 있다.
딸의 농사 솜씨가 어찌나 야무지고 알뜰한지 아스팔트 깔린 지점 끝까지 최대한 옥수수를 심고 쓸려 내려가는 흙을 붙들어 깨를 심었다.
1mm라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이게 어디 농사짓기 싫다는 사람의 밭이야.
딸은 엄마의 밭을 이으면서도 농사가 싫다고 누누이 고개를 가로저어댔다. 저번 주엔 통통하게 여문 옥수수 옆에서 마주쳤는데 본인이 일군 작물들을 곁눈질하며 못 볼 거라도 보는 듯 미간과 콧잔등을 구기고는 징글징글하다고 농사를 증오했고 여전히, 마주칠 때마다, 매번, 항상 증오하고 있다.
농사 잘 지었다고 칭찬을 하면 또 부정했던 만큼 좋아한다.
한 뼘 낭비 없이 생강심은 자리를 보라.
보는 내가 징글징글하다.
그것도 모자라 철망으로 벽을 치고 오이 애호박 늙은 호박 갖가지 다 심었다.
농사 싫다며?
고추 옆에 참깨.
참깨를 빙 둘러 수박 참외까지.
그 테두리에 옥수수를 또 덧대 심었다.
옥수수 옆에 도라지도 있네.
밭의 어디를 봐도 초록색만 그득하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왕성한 밭이 여기다.
본인의 집에 냉장고 세 대가 있는데 오랜만에 가봤더니
음식이며 뭐며 죄다 썩어있더란다.
냉장고의 음식이 썩어나가도록 농사에 신났으면서
엊그제는 수박 곁순 잘못 땄다고 애통 터져했으면서
그러면서 왜 계속 농사 싫다고 하는 걸까?
그 속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