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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30. 2023

이 별에서 마지막 편지를 보내요 -1-

제주행 티켓을 끊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마주하는 J는 이제 지긋지긋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지만 매 순간 삶 너머로 시선을 거두는 자기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이 이젠 지겨워져 버린 것이다.




J는 여행의 마지막쯤 죽을 생각이었다. 이직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주일이라는 긴 휴가가 주어졌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맞이한 가장 긴 휴가였다. J는 당장이라도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망설임 없이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사지 않았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끝을 맺어야 함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간. J는 그 순간이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마음이 힘들어서도, 현실에 문제가 생겨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지구의 중력이 사물을 끌어당긴다는 당연한 이치처럼 절로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토록 강렬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에게 스스로 죽기를 권유받았을 때에도,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무너졌던 날에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J는 자신의 직감에 충실하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J는 스스로에게 다정하지 않으면 타인에게도 다정할 수 없다는 격언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어딜 가나 금방 사람들의 호감을 샀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다정하지 않으면 곧 죽을 사람처럼 늘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주 가끔 꾹꾹 누른 마음이 터져 나올 때면, 자신의 시꺼멓고 더러운 우울이 타인마저 오염시켰다. 그렇게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온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날, 그런 날에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칼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J는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 유리막을 쳐야 함을 깨달았다. 자신에게서 나는 구역질 나는 우울을 숨기기 위해서. 어릴 적 타인으로부터 심어진 그녀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흐르며 세월의 풍파에 자연스럽게 마모될 것 같았던 이 불신들은, 마음 한가운데 굳건히 자리 잡아 이스터섬의 모아이처럼 천년만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제주행을 택한 건 바다에서 죽고 싶기 때문이었다. J는 여행지를 고르며 작년에 친구들과 함께 갔던 필리핀 여행을 생각했다. 그곳에서 생전 처음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경험했고, 쏟아지는 햇빛 아래서 수영하며 J는 마치 바다가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바다 근처에 집을 짓고 매일 둥둥 떠다니리라. 작은 소원도 가졌다. 하지만 그녀에게 미래는 너무 멀리 있는 환상이었다. 가끔 그녀가 어울리지 않는 행복한 미래를 꿈꿀 때면, 현실은 그녀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려 죽음에게로 인도했다. 죽음은 30년 동안 언제나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언제나, 손을 맞잡아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할 만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이해하는 친구와 손을 맞잡는 것.


J는 부러 가족을 깨우지 않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휴가를 떠나기 위한 여행객들로 공항이 북적였다. 전날 잠을 얼마 못 잔 탓에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샀다. 의자에 앉아 바라본 커다란 통창 밖으론 비행기가 즐비해있었다. 누군가는 공항을 설렘의 장소라 했지만, 그녀에겐 그리움이 더 큰 장소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임에도 그녀는 저 미래로부터 불쑥 찾아온 그리움과 인사를 하곤 했다. 아직 경험하지도 않은 미래의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푹 젖게 만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J도 현실을 조금은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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