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첫 4년 동안은 대부분의 수업이 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휘가 가장 풍부한 아이가 가장 많이 이해할 것이고, 반면에 어휘가 가장 빈약한 아이는 최소의 것을 이해하기도 힘들 것이다.”
“아이들의 듣기와 읽기 수준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 같아진다. 그전까지는 읽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것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짐 트렐리즈,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중에서-
어떤 책, 어떤 영상을 보더라도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독서라고 말한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구성하는 단어를 이해하고, 배경지식을 습득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즐기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책을 읽는 행위는 꽤 복잡하고 고난도의 뇌활동이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에서 아이의 듣기 수준과 읽기 수준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 같아진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높은 수준의 내용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
그런데 이 '책 읽어주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 24시간 중 15분이라도 책을 읽어주자는 저자의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실천은 또 다른 영역이다.
워킹맘의 저녁 시간은 정말 쉴틈이 없다. 회사를 다녀오고 나면 식사를 차리고, 아이들을 씻긴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을 빨고, 청소기를 돌린다. 밥을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와중에 아이들은 또 집을 어지럽힌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나서 아이 공부를 봐주고 나면 9시가 된다. 9시면 양치질하고 잘 준비를 해야 한다.
잠자기 전 아이에게 책 1권씩 읽어줄 시간은 되지만 문제는 내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정신을 썼던 터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다. 힘을 내서 책을 읽어줬는데 아이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 열이 뻗쳐온다.
영유아시기에 책 읽어주기가 최고의 교육이라는데...
이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의무감으로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읽어주는 게 과연 아이에게 좋은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그 시간을 나도 즐기면 좋을 텐데 잘 안된다. 없는 힘 짜내어 로봇처럼 읽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노력한다 싶어 박수쳐주고 싶다가도 '이게 의미가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도 올라온다.
엄마가 읽어주기 힘들다면...
그래! 꼼수라도 쓰자!
"오디오 QR코드 있는 그림책 중에서 골라 와."
핸드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오디오를 틀고 그림책을 보여준다. 나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 같이 책을 넘긴다. 엄마의 품에서 엄마 목소리로 읽어주는 게 최고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면 품이라도 제공한다. 오디오로 듣는 그림책은 음향효과와 실감 난 목소리로 저절로 몰입이 된다. 엄마의 품에서 실감 나는 오디오로 듣는 그림책도 나쁘지 않다.
할 일이 많아 아이를 안아주기도 어려울 때는 TV로 동화책을 보여준다. 통신사별로 제공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동화책이 아주 많다. 그림도 조금씩 움직이면서 글자도 나온다. 재미도 있고 한글 공부도 조금씩 된다. 만화보다 훨씬 나으니 죄책감없이 힘들 때는 TV도 이용하는 거다.
이것도 저것도 읽어줄 시간이 없었다면 잠자리에 누워 잠자리 동화를 같이 듣는다. 누워서 아이를 껴안고 이런저런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를 듣다가 잠이 든다. '뭐, 이것도 책 읽어주기지!'라고 뻔뻔하게 생각해 버린다.
보통 7살인 둘째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다른 데서 놀고 있던 딸도 가까이 와서 듣는다. 읽기 독립이 된 3학년 아이지만 엄마의 낭독 소리에 관심을 가져준다. 그래서 가끔 딸에게도 책을 읽어준다. 딸과 내가 한 문장씩 번갈아 가며 읽기도 하고, 어려운 낱말은 뜻을 추측해 보도록 질문도 던진다.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며 편들어주기도 하고 같이 욕하기도 한다. 오히려 아이가 큰 후에 함께 읽는 이 시간이 더 알짜 같다.
좋은 걸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채소가 몸에 좋은 것을 알지만 매 끼니 골고루 챙겨 먹기 어렵다.
운동이 몸에 좋은 것을 알지만 매일 하기 쉽지 않다.
아이 교육에서 책 읽어주기가 다라는데 꾸준히 읽어주기 힘들다.
시간이 되고 컨디션도 좋으면 엄마가 읽어주고, 아니면 하루 쉬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책 읽어주기가 좋다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못하더라도 너무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좀 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