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아이들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들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긴 한데, 아이들 자체의 매력이 가장 큰 것 같다. 악기 레슨, NGO 인턴, 국제기구 인턴, 대학원 조교, 오케스트라 활동, 치과 데스크 보조일, 피아노 학원 레슨 알바 등을 다양하게 하며 여러 직업군을 얕고 넓게(?) 경험해왔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의외로 가장 잘 맞는 직종 중 하나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다. 해보기 전까지는 "선생님 절대 안해! 절대 안해!"를 반복하던 나였는데, 막상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아이들을 예뻐하는 마음의 씨앗이 뿌려지더니 그 이후로는 아이들이 쭉 예쁘게 보인다. 물론 정말 말 안듣는 아이들은 제외하고... 나도 사람이니까!!!!
아주 많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비교적 꽤나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나는 문서 작업만 하기보다는 사람과의 대면 관계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되고난 후 아이들과 교류하다보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할 때 큰 에너지를 느끼며, 특히 아이들의 작은 말과 행동에서 큰 감동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이 곳 태국에서도 똑같다. 전체적으로 미소 띈 얼굴이 기본값으로 장착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지만, 또 학생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다보면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 개개인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가장 가깝게 마음을 많이 나눈 학생은 밴드부 학생인 카오또라는 여학생. 현지 학년 체계로는 마테욤 5(five, '모 하'로 불림. 태국어로 5가 '하'이기 때문.), 한국 기준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인 카오또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중이다. 카오또는 참 스윗한 친구인데 배려심이 몸에 탑재되어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서 적절한 행동이 어떤 것일지 생각한 다음에 바로 실천하는 멋진 능력을 가진 친구다.
어느 일요일, 현지 음악선생님 댁에서 밴드 연습을 할 때였다. 그 날 내가 치마를 입었는데 앉으면 살짝 길이가 올라가자 근처에 있던 귀엽고 커다란 쿠션을 내 무릎 위로 덮어주면서 치마 때문에 혹시 신경쓰일까봐 줬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첫만남에 자신의 이름인 카오또라는 왕실 디저트를 선물해주며 어머니께서 직접 나를 생각해서 만드셨다는 말을 건넸다. 만들기가 워낙 까다로워서 아직 이 디저트를 못 먹어본 태국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며 내게 건네주던 카오또 디저트. 마음만큼이나 맛있던 귀한 디저트.
뿐만 아니라 저녁 식사 전 다들 음료수 어떤 걸 먹을지 말을 하며 뭘 사올지를 골랐는데, 나도 대세를 따라 콜라를 선택했다. 이후 밥을 먹을 때 따로 음료수를 달라거나 목이 마르다거나 등등의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 목이 마를세라 얼음을 한 가득 커다란 컵에 붓고 콜라를 따라서 건네주며, 얼음이 녹고 밍밍해지자 그걸 보고 파악해서 새로운 얼음과 콜라로 교체해와주는 모습이 정말 센스있고 감동적이었다. 난 밍밍한 콜라도 물 같아서 나름 맛있다고 생각하며 잘 먹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선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내가 태국에 있는 만큼, 학교 밴드 아이들과 k-pop을 함께 준비해서 외부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 중 한 곡이 그룹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인데 카오또가 나와 함께 이 곡을 부르기로 했고, 연습날이 되자 내게 선생님, 제가 이 곡을 준비해왔는데 제 발음이 맞는지 한번 봐주실래요?라고 묻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저 폭풍 칭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오랜만의 밴드 연습 시간에서, 내가 옆이 트인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그걸 보더니 빛의 속도로 자신의 아우터를 내 무릎 위에 얹어주며 덮으라는 세심한 배려. 쓰다보니 매번 그녀를 걱정시키는 옷차림(?)이라 미안하네. 하지만 치마밖에 못 입는 태국 학교라서 바지는 거의 안 챙겨왔는데 그래서 그런가 공교롭게도 매번 카오또를 난감하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이어진 밴드 연습 중 내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그녀가 팝송을 불렀는데 자꾸 가사를 너무 철저하게 발음하려고 해서 그런건지 박자보다 노래가 조금씩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전체 밴드 연습이 끝나고 내가 키보드를 칠 테니 한번 더 연습해보겠냐고 제안하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서 연습을 더 한 다음, 비트를 생각하고 따라가라고 그렇지 않으면 느려질거라고 조언하니 눈을 또 한번 반짝이며 조언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외에도 내 방에 바퀴벌레가 출몰해서 팁을 구하는 글을 올리자, 자신의 집에 바퀴벌레 스프레이가 있다며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던지.. 참 아이가 너무 스윗하다. 외국인 선생님이 오면 영어를 쓸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던 카오또. 영어를 학교에서만 배운거냐고 하니까 그렇게 하기엔 부족함을 느껴서 넷플릭스 등을 통해서 영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추가적으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음악적인 재능도 있는데다가 언어적인 감각도 있어서 밴드 연습시에는 우리의 영어 통역사 역할도 곧잘 하는 그녀. 그래서인지 음악 선생님을 할지, 아니면 언어 쪽으로 더 살릴지에 대한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그랬다. 아직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와의 시간이 또 다른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국에서도 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아이, 한 아이를 깊게 알아갈수록 그 친구와 나 사이의 서사가 쌓여가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이의 서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그 친구를 바라보고 알게 되는, 또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서사가 생기기도 하고.. 이렇게 한 사람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바라보며 함께하고 나눌 수 있는 점. 이게 선생님이란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