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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삐약이 Jul 03. 2024

[24'태국 파견교사] 잊고 있었던 기쁨

태국에 와서 나름대로 열심히 수영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찌 인생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노력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이것또한 내 삶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견지하고 받아들여야겠다. 살아오면서 나름대로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나를 잘 발견해오며 지내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또다른 환경 속에서 끝없이 나오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만큼 나 자신과 더 친해지는 시간이 되는 이번 3개월. 어느덧 그 여정도 중반이 훌쩍 지났다.   


자금을 더 들인만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또 한번 체감하게 되는 태국 생활이다. 이렇게 옮겨온 좋은 숙소에는 아담한 수영장이 있는데, 원래 수영을 전혀 즐기지 않았던 나 또한 이 소담스러운 매력에 한발짝 더 다가가서 가까이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들여다만 보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덥고 습한 기온에 어느샌가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현재 묵고 있는 팜프란 리조트의 아담한 수영장. 바닷물을 쓰는건지 소금을 푸는 건지 굉장히 짠 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꾸준히 하다가, 대학 입시를 마치고 나서 방학 기간동안 열심히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수영을 다니며 트레이닝을 했다. 그러곤 발길을 끊은지 엄청난 세월이 지나버렸다. 나는 내 자신이 수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번 태국 살이에서 수영을 더욱 많이 하게 되기 전까지는.



첫 국가공휴일을 맞이해 묵었던 방콕의 tierra residence

첫 공휴일을 맞춰 떠났던 방콕 여행에서 만난 숙소에는 이토록 비현실적인 뷰를 자랑하는 수영장이 있었다. 그저 보정한 사진이겠거니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언니와의 만남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수영장 마감 시간 직전에 급히 수영장을 탐색했다.


마지막으로 수영을 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랬겠지만, 처음에는 물 위에 뜨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분명 자유형부터 배영, 평영까지 다 배우고 접영은 따로 분리해서 배우다가 그만둔 기억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이 물 위에 몸을 띄운다는 게 너무나도 두렵게만 느껴졌다. 


결국 조금씩 내 멋대로 평영을 해보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태국에서의 첫 수영장을 경험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오전에도 수영장을 두고 그냥 넘기긴 아까워서 다시 향했는데, 옆에서 열심히 본격적으로 수영하는 외국인들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만 연신 하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의 시간이 다시 지나고, 7년 전 유엔 인턴시절을 함께 했던 중국인 친구와 약 5년만에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둘 다 수영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왕 수영장이 있는 걸 그냥 지나치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새 숙소엔 소담스런 수영장이 있었던지라 친구에게 미리 수영복을 챙겨오라고 말했는데, 그 덕에 후아힌에서도 수영은 몸이나 담그자라고 말하며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친구 덕에 묵었던 아마리 후아힌 호텔의 수영장


친구는 어릴 때 엄마가 교육을 시키려고 수영장에 보냈는데 본인이 물을 무서워해서 그랬는지 도무지 몸이 뜨질 않았다며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안 다니고 싶다고 말해서 결국 수영을 그만뒀는데 그게 지금 이렇게 와보니 조금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아프리카에서 일할 때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던 상사가 과로했으니 잠시 근처 국가인 모로코라도 가서 그냥 호텔 끊고 수영장에 몸이라도 담그고 있다 오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그 때는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나랑 같이 수영을 하진 않아도 그냥 수영장에 몸만 담그고 두런두런 얘기하며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이런 맥락에서 그렇게 얘길 했던 거구나.. 하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평영을 곧잘 했는데 중간에 숨 쉬는 것만 안돼서 어려워했다. 내가 가르쳐주고 싶었어도 나도 그럴 수준이 안됐기 때문에 그냥 각자 할 수 있는만큼 수영하고 여유를 즐겼다. 나 또한 긴 레인을 완주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조금 하다가 멈추면 언니 힘내!라고 외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기 바빴다. 우리 옆에서 열심히 왕복하며 수영을 하던 서양인 할아버지를 보고 친구가 분은 운동이다.. 우리는 그냥 휴양..? 이렇게 말하며 너무 대조되는 풍경을 느꼈던 것 같다.



따스하고 더운 바람이 온 몸에 훅하고 끼쳐오고, 체온보다 살짝 낮은 수영장의 물을 느끼며 오렌지색과 핑크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게 어찌나 행복하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그냥 물 속에 서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여러 공기와 소리, 초록초록한 풍경을 느끼던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빌드업이 쌓여서인지, 현재 옮긴 숙소에서 사부작 사부작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함께 있는 친구의 잘하는데?! 자세 괜찮은데? 잘 배웠는데?! 하는 칭찬에 힘입어 고개를 내밀고만 가능했던 평영의 두려움을 이기고 물안경을 끼고 고개를 물 속에 담그는 본격적인 수영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첫 3일 정도는 정말 힘들었지만, 조금씩 물 속에서 발차기를 하는 내 자신이 굉장히 자유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비록 너무 과다한 운동 열정으로 또 오른쪽 어깨를 살짝 다쳐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되었지만(난 늘 이게 문제다. 의욕이 과다해서 부상을 입어서 운동을 그만하게 된다) 이 몸이 다시 돌아온다면 남은 한 달은 더 열심히 수영을 하며 나와의 시간을 가져야지. 


어쩌면 좋아했었는데도 너무 긴 시간을 잊고 살아서 그 기쁨을 기억 저편에 꺼낼수도 없을 정도로 묻어두고 산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했지만 잊었던 기쁨을 다시 발견하면서 나 또한 재발견할 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남은 시간을 소중히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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