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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an 24. 2024

넷플릭스에 나온 콜롬비아 맛집

Ajiaco 아히아꼬 

콜롬비아 부카라망가에서 한 달 살기를 끝내고 드디어 수도 보고타로 향했다. 어렸을 적 부루마블 게임할 때 "제발 보고타!"를 외치며 주사위를 던졌던 기억이 생생한 만큼, 보고타란 도시 이름 자체가 주는 알 수 없는 설렘이 있다. 하지만, 메데진에 1개월 넘게 지내면서 메데진 토박이들의 "보고타는 위험해, 별로야, 거기 사람들은 차가워"라는 수많은 보고타 험담(?)들로 인해 보고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와 제2의 도시로 꼽히는 메데진은 모종의 라이벌 관계로 서로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메데진에 있을 때 친구들이 "우린 지하철도 있고 교통수단이 발달되어 있어"하며 자랑스러워하곤 했는데 이 말엔 '수도인 보고타는 부정부패 때문에 지하철 계획만 수년째 세우고 진행도 못하고 있다'라는 속 뜻이 담겨있다. 보고타 사람들도 종종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번번한 지하철이 없는 것에 살짝 열등감을 표출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보고타에 가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넷플릭스 푸드 다큐 시리즈인 <길 위의 셰프들 : 라틴 아메리카> 편 때문이다. 콜롬비아,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등 라틴 아메리카 각국별 대표 음식을 쭉 훑어보기 좋은 이 다큐시리즈는 20분이란 짧은 시간 내에 한 국가에서 먹어봐야 할 길거리 음식 3~4가지와 그를 요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콜롬비아의 경우 보고타 먹거리를 조명했는데 그중 주인공이었던 요리는 다름 아닌 감자 닭고기 수프인 Ajiaco(아히아꼬)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 길 위의 셰프들 라틴아메리카편 

아히아꼬는 보고타의 대표 음식으로도 꼽히며 우리나라 육개장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독특하게 보고타 이외의 다른 지역에선 의외로 아히아꼬 파는 곳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난 콜롬비아에 2개월 넘게 살면서 이 음식을 보고타에 도착해서야 처음 맛볼 수 있었다.


"보고타 시장에 먹으러 가기"

부카라망가에 있을 때 콜롬비아에 살고 있는 러시아 친구 A가 놀러 와 1주일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A는 10년 전 러시아를 떠나 콜롬비아에서 어엿 5년째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는 시니어 개발자로 지금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C와 절친이다. 지금은 콜롬비아 해변 도시인 카르타헤나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타에 간다니까 마침 자기도 보고타에 여자친구와 같이 와있다며 함께 만나자고 했다. 


A는 보고타에서도 예전에 1년 정도 생활했기 때문에 이 도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보고타 어디 가고 싶은지 알려주면 자기가 가이드해 주겠다고 친절하게 제안했다. 


"페르난도 보테로 미술관이랑 페르세베란시아 시장(Mercado la perseverancia), 이 두 개만 가면 돼"




페르세베란시아 시장 

페르세베란시아 시장은 주요 관광지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딱, 국물 요리 먹기 좋은 날씨다 싶었다. 기대에 차 내부에 들어가니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붐볐다. 우리나라 신림동 순대타운처럼, 홀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깔려 있었고 여기저기서 각자 메뉴판으로 영업하고 있었다. 


수십 개가 넘는 가게 중에서 넷플릭스가 나온 가게를 찾으려고 한 바퀴 쭉 둘러보는데 그 어디에도 '넷플릭스에 나온 가게'라는 표시가 없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넷플릭스에 나온 맛집'이라고 크게 현수막이라도 걸어났을 법한데 여기에선 굳이 그런 표시 안 내다걸어도 장사가 잘된다는 자신감이 있는 걸까. 사실 대부분 식당가 앞 테이블이 꽉꽉 차 있어서 C와 A는 그냥 자리 나는 곳에 앉자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같은 메뉴를 파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 푸드 다큐에 나왔던 보고타식 감자 닭고기 수프 아히아꼬(Ajiaco)가 너무 먹고 싶었다. 게다가 보고타에서 가장 맛있는 아히아꼬로 보고타시 표창까지 받은 곳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식당가 앞에 줄을 길게 선 사람들에게 "이 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아히아꼬 먹으려면 어디에 줄 서야 돼요?"라고 물으니 다들 하나 같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더니 "아히아꼬는 저기"라고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는데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주전자처럼 생긴 용기에서 노란 국물을 떠먹고 있었다. 


생각보다 회전율이 좋아 한 15분 정도 기다린 끝에 우린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TV에 나온 맛집에 살짝 반골 기질이 있는 C는 굳이 아히아꼬 대신 메뉴판에 있는 다른 음식을 시켰고 A와 나는 아히아꼬를 주문했다.

에피타이저 감자 엔파나다 

 여기에 에피타이저 겸 나눠 먹을 용도로 엔파나다를 시켰는데 감자와 허브잎으로 속을 채운 이 엔파나다의 맛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엔파나다를 좋아하는 C는 "와, 이거 진짜 맛있는데! 먹어 본 엔파나다 중 손에 꼽는 거 같아"하며 감탄했고 A 역시 나중에 음식 다 먹고 모자라면 이 엔파나다 한번 더 시키자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콜롬비아 아히아꼬 

이어 우리가 주문한 메인 음식은 금세 나왔는데 비주얼은 소박했다. 작은 양은 냄비 채로 서빙되어 뚜껑을 열자 감자의 노란 빛깔 수프에 닭고기, 허브 잎이 올라와 있다. 아히아꼬는 약 세네 가지 다른 감자를 조합해서 만드는 게 특징이란다. 국물을 휘저으니 옥수수가 있다. 생각보다 안에 있는 건더기는 그리 많지 않다. 


아보카도와 밥이 함께 서빙된다 

대신, 아보카도와 밥을 함께 내주어서 국밥처럼 먹을 수 있었다. 첫 국물을 떴다. 곱게 갈린 감자의 식감에 크림의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사실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라기 보단, 정성이 담긴 감자 수프에 가까웠다. 여기에 따로 나온 아보카도를 살짝 잘라 국물과 함께 먹어보니 은근 잘 어울렸다. 찰기 없는 밥을 크게 한 스푼 떠서 국물에 담가먹으니 "아 이거다" 싶었다. 역시 이건 밥을 말아먹어야 완성되는 음식이었다. 짜고 매운 간이 없이 깔끔하고 담백해서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반면, 보고타 1년 살면서 아히아꼬를 숱하게 먹어왔던 러시아인 A는 "맛있긴 한데. 사실 이거 먹으려고 여기까지 오는 건 아닌 듯. 예전 보고타 집 근처에 잘 찾아보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집 많았던 거 같아"라며 국물을 남김없이 비웠다. 비주얼이 훌륭하진 않아도, 살면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까진 아니더라도 비가 오면 종종 생각날 음식이다. 우리나라에 육개장이 있다면, 콜롬비아엔 아히아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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