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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Nov 30. 2023

콜롬비아 싸구려 커피

콜롬비아 띤또(Tinto) 

콜롬비아의 흔한 풍경 중 하나는 길거리 빵집, 슈퍼마켓에 놓인 테이블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앉아서 슈퍼마켓에서 산 맥주를 먹거나, 엔파나다와 같은 간식을 먹는다. 종종 길거리 빵집, 슈퍼마켓에서 저렴한 점심 식사를 파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테이블을 유심히 살펴보면 100ml 남짓 사이즈의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가 놓여 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 톨 사이즈를 기본으로 먹는 한국인으로서 "저 커피가 성에 찰까" 싶을 정도로 양이 작다. 에스프레소보단 양이 많고 자판기 커피 사이즈보다 작은 이 애매한 사이즈의 커피는 바로 콜롬비아 사람들이 매일 같이 마시는 띤또(Tinto)이다. 


처음 띤또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무더운 메데진 날씨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한 로컬 빵집이었다. 콜롬비아의 대부분 빵들은 너무 달아서 로컬 빵집은 매번 구경만 하고 슥 나오곤 했는데, 이 날은 커피에 디저트 빵 하나 시켜서 잠시 쉬고 싶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롤케이크 빵과 블랙커피를 달라고 주문했는데 "띤또(Tinto?)"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띤또가 뭔지 몰라서 "설탕 없는 따뜻한 블랙커피 (un cafe negro caliente sin azucar)"달라고 다시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코코넛 가루를 묻힌 뻬라 데 꼬꼬(Pera de coco) & 띤또 

콜롬비아에서 띤또는 통상 블랙커피를 가리킨다. 길거리 빵집, 슈퍼마켓에서 파는 이 띤또들은 보통 한화로 300원~1000원 내외이며 콜롬비아 사람들은 보통 여기에 설탕을 넣어서 달달하게 먹는다. 혹은 아예 파넬라(Panela : 사탕수수 즙을 굳힌 당류로 중남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를 넣고 끓여 내놓는 곳도 많다. 즉, 띤또의 본 뜻은 서민들이 길거리에서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싸구려 커피이지만, 블랙커피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그래서 일반 카페에서도 "띤또"를 주문하면 아메리카노를 내놓는다. 


질 좋은 콜롬비아산 커피를 마시려면 유럽, 호주, 일본으로 가야 한다

콜롬비아는 명실상부 커피산지이다. 커알못이라도 콜롬비아 아라비카, 수프리모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세계적인 커피 산지인 만큼 콜롬비아 사람들은 매일 질 좋은 커피를 마실까? 슬프지만 정작 콜롬비아 사람들은 질 좋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띤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띤또(Tinto)를 처음 들었을 때 살짝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흔히 레드와인을 비노 띤또(Vino tinto)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물드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살짝 의역까지 덧붙여본다면 띤또는 '커피 물'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아메리카노도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은 것이니, 어느 순간 '띤또=아메리카노'가 된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띤또는 과거 커피 농장의 노동자들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커피 열매들을 모아 마시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물을 가득 넣어 연하게 끓인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종종 몇몇 띤또 노점상들은 커피라고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색이 연해 커피보다 "커피 맛이 나는 차"를 내놓는다. 지금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파는 띤또는 싸구려 커피 원두를 쓴다. 


이 띤또를 마시며 "역시 콜롬비아 커피는 훌륭해"라고 말하는 것은, 믹스커피를 마시며 "한국 커피 생각보다 맛있는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띤또는 콜롬비아의 국민 커피지만, 외국에서 소비하는 콜롬비아 고급 원두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띤또를 즐기는 사람들 


훌륭한 콜롬비아산 원두커피를 마시려면 콜롬비아가 아닌, 유럽, 호주, 일본의 카페로 가야 한다. 콜롬비아의 질 좋은 원두들은 대부분 수출하기 때문에 콜롬비아 사람들은 정작 자국에서 나오는 고급 원두보단, 저품질의 커피 원두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콜롬비아엔 정작 커피 문화(Coffee culture)가 없다"라고 종종 말한다. 스페셜티 커피만이 진정한 커피 문화라고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이 담긴 발언이다. 물론 콜롬비아에서도 스페셜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지만, 최소 3~4천 원이 넘는 가격은 1천 원 띤또를 즐기는 콜롬비아 서민들에겐 다소 부담스럽다. 물론 이는, 콜롬비아뿐 아니라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주요 커피 산지들이 겪는 현상이기도 하다. 띤또는 고급 커피를 생산하면서 정작 해당 커피를 소비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커피인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가 아니면 어때. 스페셜티 커피가 여유를 즐기며 커피 맛을 오롯이 즐기는 고상함이라면 띤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치열한 일상에서 잠시 숨 돌리며 마시는, 콜롬비아만의 커피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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