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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Nov 15. 2023

한국인 없는 지역의 한식당 딜레마

콜롬비아 한식당 


고춧가루 없는 제육볶음

10년 넘게 간헐적으로 해외 생활하면서 해외 한식당을 내가 찾아가 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해외에서 한식이 당기지 않는 것도 큰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비싼 가격에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을 기대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방문하거나 꽤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에 있는 한식당들은 나름 최대한 한국에서 먹던 맛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다. 주요 손님 비중 중 한국인이 꽤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먹는 맛이다"라는 소리를 끌어내기 위해선, 한국 재료를 쓰고 비싸게 파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도시에는 한국 마트도 1~2개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거의 없는 도시에 있는 한식당은 어떨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Korean Restaurant'를 검색하면 딱 두 곳이 나온다. 하나는 한국식 치킨집이고, 나머지 하나는 꽤 많은 리뷰가 달린 '한식'을 파는 곳이었다. 리뷰와 평점이 전반적으로 좋았고 사진으로 봤을 때 꽤 그럴듯해 보여서 C가 한식당 가자고 노래를 부를 때 흔쾌히 오케이 했다. 


금요일 밤에 방문한 이곳은 꽤 핫했다. 좌식과 입식 테이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고 2층엔 룸 형태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 콜롬비아 현지인들이었다. 룸 공간에선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고, 1층 입식 테이블이 가득한 홀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K-pop 뮤직비디오 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린 신윤복 그림이 병풍처럼 펼쳐진 좌식 테이블 공간에 앉았다. 


메뉴판은 예상대로 찬란했고 가격은 의외로 합리적이었다. 갈비구이, 제육볶음 정식 메뉴가 한화로 약 12000원 정도. 독특한 것은 각 정식 메뉴 구성이었다. 돼지갈비구이, 소갈비구이, 제육볶음, 수육 등 메인 고기에 따라 세트 구성이 조금씩 달랐는데 김치는 별도로 주문해야 했다. 나는 매콤한 제육볶음을 C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제육볶음 정식을, C는 그토록 노래 부르던 소갈비구이 정식을 시켰다. 


춘권(스프링롤)과 소스에 절여진 탕수육, 잡채, 라이스페이퍼 계란쌈(?) 등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소갈비구이 정식엔 밥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내가 주문한 제육볶음 정식엔 밥이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메뉴를 다시 확인해 보니 제육볶음 정식엔 탕수육 대신 밥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이 적혀 있었다. 한식을 파는 곳에서 단품이 아닌 제육볶음 정식 메뉴에 밥이 포함되지 않은 게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밥을 추가 주문해야 했다. 

제육볶음 

제육볶음은 오묘했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매콤한 맛이 빠진 제육볶음이었다. 매운 것을 거의 먹지 않는 이 나라의 입맛에 맞춰 간장 등 다른 양념장으로 흉내 낸 듯했지만, 한국 제육볶음의 감칠맛이 없었다. 물론 제육볶음의 세계도 무궁무진하겠지만, 내가 한국에서 먹는 평균에 가까운 제육볶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갈비구이 

소갈비구이 역시 양념을 발라 구운 거 같긴 한데 이걸 한국식 소갈비 구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했다. 부위는 갈비가 맞긴 한데 딱딱했다. 오히려 립 바베큐 구이에 더 가까운 맛이었다. 상추쌈 한 장이 나왔지만, 쌈장은 없었고 아쉬운 대로 밥에 고기, 마늘과 디핑소스를 올려 먹어야 했다. 유일하게 만족스러웠던 것은 작은 종지 그릇에 담겨 나온 1600원짜리 김치와 잡채였다. 


"이 식당 Authentic한가요? = 한국에서 먹는 맛인가요?" 

외국인 손님이 많은 해외 한식당에 가면, 혹은 어느 도시에 외국인들이 나에게 한식당에 대해 물어볼 때 으레 하는 질문이 있다. "거기 제대로 하는 한식집(Authentic)인가요?" 이들이 한식당에 가기로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한국 사람들의 인정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만약 내가 Authentic하지 않다고 하면 이들은 "아 제대로 하는 한식이 아니래"하고 보류할 것이고, 내가 Authentic하다고 하면, 이들은 한식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가지고 방문할 것이다. 


Authentic : 진짜의, 제대로하는, 그럴듯한


누군가가 내가 간 이 식당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한다면 "Authentic하다곤 할 수 없지만, 한국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 도시에서,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무엇보다 콜롬비아 기준으론 살짝 비싼 식당에 속하지만, 한화로 12,000원~15,000원 내로 고기반찬이 포함된 정식 메뉴는 이곳 현지 사람들에게 '외식하는 기분 낼 수 있는' 정갈한 음식이었다. 


매운 것을 거의 먹지 않는 콜롬비아 사람들 입맛에 맞춰 고춧가루 사용을 최소화한 게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인 대상이 아닌 콜롬비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당인 만큼 이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제대로 된 한식을 선보인다면 재료 수급 문제로 가격이 높아질 뿐 아니라 이곳 현지인들 입맛엔 오히려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이곳 식당의 메인 타깃이 여기 사는 한국인, 드물게 오는 한국인 여행객이 아닌, 콜롬비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사람들 입맛과 지갑 사정을 고려해 최대한 현지 재료로 해결할 수 있는 반찬 등으로 구성해 단가를 맞추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물가가 낮은 국가에서 한식당을 차리려면, 한국맛 제대로 나게 하느냐 혹은 현지 입맛에 타협을 하느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한국맛 제대로 내 Authentic 한 한국 음식으로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 베스트이겠지만, 물가 수준이 높지 않고 한국&아시아 재료를 구하기 힘든 이곳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한식당에 난 썩 만족하진 않지만, 이걸로 "여기 식당 별로야"라고 감히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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