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초콜라떼 산타페레뇨(Chocolate Santafereño)
콜롬비아 메데진과 보고타를 다녀왔다고 하면 많은 콜롬비아 사람들이 되묻는다.
"메데진과 보고타 중 어디가 좋았어?"
메데진에서 거의 2개월 정도 생활하고 보고타로 내려온 탓에 나 역시 메데진에 치우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메데진 전철역에서 내려 에어비앤비 집으로 향하는데 높은 산 윗자락까지 촘촘하게 놓여있는 집들 광경, 그리고 대중교통수단으로 오가는 케이블카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기후가 연난 온화한 편이라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기분 좋은 날씨만큼 메데진 사람들은 친절했다.
콜롬비아의 수도는 보고타이며, 메데진은 제 2의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다.
반면, 약 4일정도 머물렀던 보고타의 느낌은 역시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다른 남미 도시와는 큰 차별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보고타는 내가 머무르는 4일 내내 비가 왔다. 보고타에서의 기억은 항상 축축했고 종종 쏟아지는 폭우로 바람막이를 입고서도 벌벌 떨어야 했다.
황금의 도시, 보고타
여타 유럽, 아시아 국가와 비슷하게 중남미도 대도시, 수도를 방문하면 대부분 무료워킹투어(Free walking tour)가 꼭 있다. 팁투어 개념으로, 고정 금액없이 투어 끝난 후 만족도 만큼 팁을 건네는 투어 형태로 그 도시의 주요 여행지 뿐 아니라 도시의 역사, 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정말 유용하다.
대부분, 해당 도시 출신의 젊은 사람들이 영어 혹은 스페인어로 진행하며 2~4시간 정도 도보로 이동하면서 도시를 구석구석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해당 도시에 도착하는 첫날 혹은 그 다음날 워킹투어에 참가하면 워킹 투어 가이드에게 각종 맛집 정보 등을 포함해 도시를 여행하기 위한 유용한 꿀팁 등을 얻을 수 있다.
나와 C가 워킹투어를 신청한 날 역시 흐렸다. 빨간 모자를 쓴 워킹투어 가이드는 약 20여명이 넘는 외국인을 인솔하며 콜롬비아 보고타 교통편, 보고타의 금융/미디어 중심지 등에 대해 소개를 했다. 사실 대부분 이야기는 들을 때 흥미롭게 듣지만, 굳이 메모를 하지 않는다면 듣고 흘릴만한 내용들이 많다. 우리가 굳이 이 도시의 어떤 사람이 살았고, 이 건물이 수백년된 사실 등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면 '금'이었다.
보고타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로 '황금박물관'이 있다. 고대 문명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금 유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만큼, 콜롬비아는 중북부에 금광이 많으며 세계적인 금 생산국으로 유명하다. 메인 광장인 볼리바르 광장(Plaza Bolivar)에는 전통적인 금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들을 볼 수 있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서성이는 가게가 있었는데 이들 손에는 은밀한 봉투가 쥐어져 있다. 불법 금거래를 하는 현장이라고 가이드가 말해준다. 누구나 불법인 걸 알지만, 눈감아주는 현장인걸까.
금은 현재 콜롬비아의 중요한 경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과거엔 스페인 열강들을 불러 일으키는 일종의 불운이었다. 보고타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보야캬(Boyacá)란 지역엔 엘도라도 전설이 있는 구아따비따 호수(Guatavita lake)가 있다.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칼데라 안에 위치한 이 호수 주변은 과거 고대 문명이 살았던 지역인데, 당시 원주민 사람들이 황금과 보석을 호수에 던지며 신들에게 바쳤던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 엘도라도 전설에 매혹당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보석과 금을 찾아 남미를 들쑤시고 다니게 된다.
쏟아진 폭우에 중단된 워킹투어
워킹투어 시작한지 약 1시간 정도 지났을까. 흐릿하던 날씨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비가 후두두두둑 소리를 내며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안보일정도로 쎈 폭우로 2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저마다 처마 밑에 서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항상 그랬듯, 이 비 역시 곧 그치겠지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빗줄기는 굵기를 계속 유지했다. 결국 가이드의 안내로 우리 모두는 한 카페에 들어가 40분 정도 커피를 마시며 대기를 해야 했는데, 시간만 흘러가고 투어의 맥이 끊겨 몇몇 외국인들은 가이드에게 팁을 쥐어주고 안녕을 고했다.
결국 20명이 넘는 인원에서 우리를 포함한 약 7~8명 외국인만 비 그칠 때 까지 기다리고 함께 광장까지 걸어갔는데 가이드는 내심 우리가 고마웠는지 지나가면서 물어보지 않은 정보도 쉴새없이 공유했다.
투머치토커였던 가이드의 수많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콜롬비아 보고타에 오면 초콜라떼 산타페레뇨(Chocolate santafereño)를 마셔봐. 핫초코에 치즈를 녹여 먹는건데 이상하게 들릴 지 몰라도 보고타 사람들의 티타임 음료야"
핫초코에 치즈를 넣어서 먹는다니. 이건 무슨 괴랄랄한 조합인가. 보고타 사람들은 초콜라떼 산타페레뇨를 영국의 애프터눈 밀크티 문화에 비유한다. 늦은 오후, 사람들과 초콜라떼 산타페레뇨를 하나 주문하고 소셜 활동을 하는 매개라고. 나와 같이 설명을 듣던 치즈에 진심인 유럽 사람들은 "으으"하면서 질색했지만 치즈에 편견없는(?) 한국에 온 나는 들으면서 "오호?"하는 호기심부터 들었다.
핫초코에 치즈 녹여먹기
오후 5시에 워킹투어가 끝나고 C와 나는 배가 고파 한 식당에 들어섰다. 육식주의자 C는 고기가 가득한 콜롬비아 음식을 시켰고, 나는 메뉴판에 초콜라떼 산타페레뇨와 타말레(Tamales)를 주문했다. 타말레는 중남미의 전통 길거리 음식으로, 옥수수 반죽 안에 고기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옥수수잎으로 감싼 후 찐 음식이다. 고기가 든 옥수수떡같은데 살짝 묽은 재질인데 각 나라별로 타말레 스타일이 다르다.
초콜라떼 산타페레뇨는 단순 음료 뿐 아니라 함께 곁들여 먹을 빵들이 함께 나왔다. 치즈는 생각보다 상당히 컸는데 이를 뜨거운 핫초코에 조금씩 잘라 녹여 먹는다. 그리고 버터냄새가 가득한 빵을 조금씩 찍어 핫초코에 찍어먹는 스타일이다. 치즈를 핫초코에 녹여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냥 초콜릿에 치즈의 식감이 더해졌다고 할까? 일단 치즈 자체가 유럽식 치즈처럼 향과 맛이 강한 스타일이 아니고 와인 먹을 때 종종 곁들여 먹는 래핑카우의 치즈 재질이라 은근 핫초코 맛이랑 잘 어우러졌다. 치즈에 진심인 C는 질색하며 입도 데진 않았지만, 먹는데 편견없는 나는 "새로운 경험이네"하고 훌훌 다 마셨다.
남은 치즈는 빵과 얹어 먹는 와중에 타말레가 나와 난감했다. 치즈 자체가 열량이 높고 빵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배가 불러왔는데 타말레도 거대 사이즈였다. 그래도 맛은 봐야지하고 잎을 조심스레 열었는데 냄새가 좋았다. 타말레는 그동안 길거리 음식으로만 접했는데, 식당에서 이렇게 갓 쪄낸 타말레를 먹으니 또 독특한 느낌이다.
숟가락으로 타말레를 가르니 내부 속에 고기가 한가득이다. 고기 양념이 우리나라 갈비찜을 살짝 떠올리게 하는 달짝 짭쪼롬한 맛이었는데 옥수수 반죽이 약간 쌀밥 역할을 하면서 이게 은근 잘 어울린다. 그동안 다양한 타말레를 먹어 봤는데 보고타에서 먹은 이 타말레는 그 중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별미였다. 입맛 까다로운 C도 내 타말레를 한 입 먹어보더니 "오 인정"하면서 틈틈이 내 타말레를 훔쳐 먹었으니.
거의 6개월 넘게 개인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하며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잠시 한국에 돌아와 중남미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