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타타코아(tatacoa) 사막
벨기에 사람 C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여행지 찾아가는 모험을 상당히 좋아한다. 나도 그런 성향이지만, C는 보다 극단적인 모험가인데, 10년 차 디지털 노매드이며 이라크까지 여행으로 다녀왔을 정도이다. 우리 둘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던 것도 '파키스탄'이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콜롬비아 부카라망가에서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여행모드로 전환한 우리는 보고타에서 약 4일 정도 머물렀다. 콜롬비아 메데진과 부카라망가, 보고타 큼직큼직한 대도시 위주로 다녔던 우리는 에콰도르로 넘어가기 전에 콜롬비아의 자연을 느껴보고 싶었다. 원래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커피농장이 있는 살렌토 인근 가서 트레킹을 할까 생각했는데 C는 "Touristic(관광객들을 위한)한 트레킹 장소는 별로"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나에게 구글맵의 한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메마른 기암들이 가득한 곳으로 독특한 풍광이 인상적이었다. -오, 이거 뭐야? 기암들이 모여있는 그런 곳인가?
-사막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사막은 아니고. 하지만 편의상 사막으로 부르는 곳 이래.
-그래, 가자!
사막 앞 민박집 텐트에 짐을 풀고
보고타에서 타타코아 사막 가는 길은 꽤 복잡했다.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어서, 우린 보고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고 중간에 기사한테 내려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선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종종 콜롬비아에선 고속버스도 가는 길에 어느 지역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게 가능하다.
Aipe란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머무르고, 다음날 간단한 아침을 먹고 뗏목을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형 특성상 큰 강 넘어가야 했는데, 육로로 이동할 경우 4~5시간 빙빙 돌아가야 하는 반면, 뗏목으로 강을 가로질러 갈 수 있었다. 강 건너 마을 중심가에 도달하면 타타코아 사막까지 태워줄 툭툭기사를 찾아야 한다. 툭툭을 타고, 작은 마을에서 차가 잘 다니지 않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데 풀과 나무가 가득했던 풍경은 점점 황무지, 메마른 땅으로 바뀌었다.
타타코아 사막 근처엔 숙소가 거의 없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도 올라온 게 없어서 구글맵으로 열심히 찾았는데 사막 입구에 한 가족들이 하는 민박&캠핑장이 있었다. 이들은 큰 뒷마당에 텐트를 여러 대 쳐놓고 이 텐트를 게스트한테 대여해 주었다. 손님은 우리 둘 뿐. 덩그러니 놓여있는 텐트 1개에 짐을 풀었다. 타타코아 사막은 별 관찰하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텐트에 나오면 쏟아질 별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됐다.
이 넓은 사막에 우리 둘 뿐
타타코아 사막은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모래가 가득한 '사막'은 아니다. 과거 열대우림이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열대건조림이 된 것인데, 마치 가뭄 들어 쩍쩍 벌어진 것 같은 땅들이 기암의 형태로 솟아오른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흔히 '붉은 사막(Cuzco)'과 '회색 사막(Los hoyos)'으로 분류되는데 이 두 사막은 도보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붉은 사막은 이름 그대로 붉은빛이 도는 사막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붉은 산들이 겹겹이 솟아오른 모양인데, 적갈색 모래로 형성된 암석들이 산의 능선을 형성하고, 곳곳엔 거대한 선인장들이 있다. 능선 밑 움푹 패운 곳사이사이로 걸어다닐 수 있다.
회색 사막은 붉은 기가 없이, 잿빛 색깔에 가까운 사막으로 "유령의 계곡(Valle de los Fantasmas)"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회색빛으로 솟아오른 바위들 형상이 밤에 보면 마치 공동묘지의 유령 같은 모습을 연상한다.
우린 붉은 사막을 둘러본 후 회색 사막까지 가 볼 예정이었다. 붉은 사막으로 내려갔을 때는 한낮 12시.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였고, 이 넓은 사막에 우리 밖에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메마른 사막엔 그늘이 거의 없는데, 종종 거대한 선인장을 발견하면 그 밑으로 내려가 빨갛게 익은 피부를 잠시나마 식혀야 했다.
가뜩이나 뜨거운 곳인데,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에 까딱하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걸음이 빠른 C는 더위를 정말 못 참아 나보다 한참 앞서서 걸었다. 거의 뒤도 쳐다보지도 않고 빠르게 가버리는 C가 야속했다. "백인이라 화상을 더 잘 입는 피부니까" 하고 머릿속으론 이해해도 뒤를 거의 돌아보지 않고 혼자서 저 멀리 가버린 그의 모습에 퍽 서운했다.
아뿔싸. 그를 놓쳐버렸다. 어느 지점에서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다시 가려고 보니 C가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곳은 황량한 사막이었고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신호는 터지지 않는다. 규모가 엄청 크고 딱히 지도나 안내판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잃어버리면 말 그대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 격이다. 설상가상으로 물 역시 C가 들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저 덩그러니 사막에 혼자 조난당한 신세가 됐다.
나는 일단 C가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걷다가 종종 특정 바위에 노란색 칠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등산로처럼 경로를 누군가가 표시해 놓은 걸 깨달았다. 안도했던 것은 잠시뿐. 절망스럽게도 노란색 칠만 따라갔다가 이미 지나간 길을 삥삥 둘러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막막해졌다. C는 지금쯤 날 찾곤 있을까. 내가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빨리 가버린 C가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목까지 바짝바짝 말라와서 거의 울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울어봤자 누군가 들을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거의 2시간을 넘게 혼자서 사막을 헤매다가 드디어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탈출구였는데, 정말 얼굴이 빨개진 채로 씩씩 거리면서 올라간 그곳에 C가 벤치에 누워 있었다.
그는 나를 잃어버리고 당황해서 2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해 한참 동안 위에서 내려다보며 나를 찾았다고 한다. 내가 작게 보이긴 하는데 계속 방향을 못 잡고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마다 소리를 쳤다고 하는데 나는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이미 미지근하다 못해 뜨거워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C는 미안해했지만, 2시간 동안 혼자 물도 없이 사막을 헤맨 나는 이미 화와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미안. 근데 난 정말 햇빛에 오랫동안 있으면 피부가 화상 입어.
-아무리 그래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그렇게 빨리 가면 어떡해
-...
우리가 함께 여행하고 난 후 가장 처음으로 화가 났던 순간이었는데 거의 반나절 넘게 나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좀 심하게 화를 낸 것에 반성한다. 콜롬비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였던 타타코아 사막에서 1박의 절반 이상을 감정 상한 채로 여행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C는 이 때문에 밤에 별을 보지 못했다.
여행을 할 땐 종종 여행과는 상관없는 별 거 아닌 감정이 여행의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C에 대한 서운함이 폭발한 이 날, 인생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하고 놀라운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