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피알레스 콜롬비아 (Ipiales)
"에콰도르 가세요? 그럼 여기 꼭 가보세요"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한달살기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알게된 한국인A는 항해사였다. 그는 배를 한번 타면 수개월간 못내리는 대신, 휴가로 수개월이 나온다고 했다. 배를 타는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보통 직장인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는 그 기간을 남미여행을 빠르게 훑어보는데 바치기로 했다고. 여행 사전 조사를 전혀 안해서 어느 지역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는 나와 달리, 단기간내 많은 여행지를 들러야 하는 그는 이미 남미 여행 정보에 빠삭했다.
콜롬비아 다음으로 어디갈거냐는 물음에, 나는 '당연하게도' 에콰도르라고 답했다. 에콰도르에 갈라파고스가 있어서, 혹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육로 국경을 넘는 여행을 좋아하고, 이왕이면 가볼 수 있는 나라는 다 가보자는 주의였다.
"오, 에콰도르 가시는구나! 저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애매해서 결국 빼기로 했거든요. 진짜 가보고 싶은 곳 있었는데, 여기 진짜 추천해요. 사진 보는 순간, 와 여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런 거 아냐? 대박이다. 하는 곳이었어요"
그가 보여준 사진은 협곡 속에 지어진 거대한 성당이었는데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성당이 어디있냐니까 콜롬비아 국경 마을에 위치해있다고. 그렇게, 나는 콜롬비아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정했다.
22시간 봉고차, 3번의 환승 끝에
타타코아 사막에서 국경 마을 이피알레스(Ipiales) 까지 가는 교통편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가는 루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글에서도 정보가 거의 없어 C와 나는 버스터미널로 가서 여러 버스 회사를 전전하며 이피알레스 가는 방법을 물어봐야 했다.
이피알레스로 가는 직행 차량이 없기 때문에 모꼬아(MOCOA)라는 도시로 가는 봉고차에 탔다. 정해진 출발시간은 없었다. 정원이 차면 출발하는 시스템인데 호객행위를 할 땐 항상 "10분이면 출발해요!" "지금 바로 출발해!" 라고 말한다. 표를 사서 안에 들어가면, 그 10분이 지나도 여전히 똑같은 멘트로 다른 사람들을 유혹한다. 약 1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간이 좌석까지 펼쳐 사람을 밀어넣듯 채운채 출발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태우기 위한 차량이다보니 좌석간 간격이 좁다. 뒤로 젖힐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90도 수직 상태인 의자에 앉아서 최소 10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의자 쿠션은 뼈대의 딱딱함이 느껴질 정도로 닳아 헤진 상태이다. 배낭을 따로 싣는 짐칸마저 사람들로 채웠기 때문에 우리의 거대한 배낭은 다리를 놓는 공간에 쑤셔 넣고 그 위에 다리를 쪼그리고 올리거나 다리를 쩍벌려서 사이에 배낭을 넣어 그 상태로 이동해야 했다. 이게 얼마나 끔찍하냐면, 그 10시간동안 중간에 휴게소나 화장실 들르는 짧은 시간 빼고 내내 꼼짝 없이 똑같은 자세로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다. 모꼬아(MOCOA)란 도시에 도착하면, 우린 다시 그 곳에서 국경마을로 향하는 교통편으로 갈아타 9시간을 또 이동해야하는 일정이었다. 편안한 프리미엄 버스를 타도 22시간은 힘든데 다리 조차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봉고차로 울퉁불퉁한 도로의 요철을 느끼며 가는 것은 더욱 고역이었다. 그렇게 우린 총 3번을 갈아타 22시간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무렵, 만세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해방감을 느꼈다.
왜 이들은 협곡 속 성당을 지었을까
이피알레스에는 아침 8시쯤 도착했다. 다행히 미리 알아봐둔 숙소가 아침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 곳이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거의 기절할 듯 침대에 쓰러졌다. 약 2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닭튀김과 눅눅한 감자튀김을 아점으로 먹고 밖으로 나섰다.
콜롬비아의 마지막 목적지는 라스라하스 성당(Santuario de las lajas)으로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근방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어서 그걸 타고 약 20분 내외로 이동하면 도착한다. 다만, 도로에 그냥 내려주는데 여기서 약 15분~20분간 걸어가야 한다. 여전히 기대했던 성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여기가 맞는건가 살짝 의심이 될 무렵, 저 멀리 아련하게 성당의 모습이 보였다.
가파른 협곡 속에 꽁꽁 숨겨놓은 듯 지은 성당이기 때문에 입구를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야 기대했던 그 성당을 비로소 마주칠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불교 사찰을 방문할 때 산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이 곳 성당이 그러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연 속에 파묻힌, 이 정도 스케일의 성당을 본 적은 없는 거 같았다.
독일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라스라하스 성당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 보단, 상당히 새 것의 느낌이 강해 살펴보니 1949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18세기부터 이 곳에 세워진 예배당이 있었는데 성지 순례지였다고 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756년 한 수도사가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여행기를 통해 성지로서의 이 곳을 언급했다. 왜 굳이 협곡에 힘들여 성당을 지었을까. 이는 1754년, 이 곳 마을에서 구두로 전해진 전설에서부터 비롯된다.
1754년, 이 곳 마을에 사는 원주민 여성 마리아 무에세스(María Mueses)는 그녀의 딸과 함께 폭풍우를 피하려고 과이타라강 협곡의 큰 암석 틈으로 몸을 숨겼다. 그녀의 딸은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갑자기 어머니를 향해 "엄마, 혼혈 여인이 나를 부르고 있어요" 라며 말해 마리아는 깜짝 놀랐다. 딸이 말하는 혼혈 여인은 다름아닌, 협곡 거대한 돌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 그림이었다. 이 사건은 지역 주민과 교회 당국에 의해 기적이라 여겨졌고,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성지가 세워진 것이 라스라하스 성당이다. ('라하스 lajas'는 평평하고 넓은 돌을 뜻한다)
고요한 자연 속, 깎아지른 절벽 위 성당은 신성함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기 보단, 오히려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화려함이 주는 이질감이 주는 자연과의 대비가 인상적인 곳이다. 각종 자연 속 고초를 겪으며 원정을 떠난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가 이 정도 아우라는 줘야, 험난한 여정을 보상받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22시간 넘게 힘들게 찾아 온 이 곳은 내 콜롬비아 구글맵에서 마지막 점으로 저장 되었다. 콜롬비아에서의 3개월 한달살기 및 여행이 끝이 났다. 이제 에콰도르로 향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