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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 1년후, 난 다시 배낭을 맸다.

여행을 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에 대해

by 노마



많은 사람들이 걸작이자 인생 미드로 꼽는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에선 주인공 월터가 암 진단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인기 없는 화학 교사로 살아가던 그는 암 진단을 받고, 이후 가족들의 삶을 걱정하다가 우연히 약쟁이 핑크맨과 손을 잡고, 시판에 널린 마약보다 압도적으로 퀄리티가 우수한 마약을 만들어낸다.

Screenshot 2025-10-27 at 9.27.37 PM.png 많은 이들의 인생 미드 - 브레이킹배드

처음엔 자식들 등록금과 그의 아내가 여생을 걱정없이 보낼 정도로 돈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그는 점점 이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어마어마한 마약계 거물을 죽이고 자신만의 마약 비즈니스를 꾸리는 가운데 생일을 맞이한다. 정확히 1년이 걸렸다. 그가 첫 암 진단을 받고 가족들의 위로를 받으며 절망에 빠졌다가, 자신만의 마약 제국을 은밀하게 건설하기까지. 암 환자가 1년만에 저렇게 심장 떨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드라마 속 월터는 암 환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멀쩡했기 때문에 그저 드라마니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그리는 암환자들은 대개 허약한,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은 시한부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9월, 암 3기 중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첫 진단을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그나마 일찍 퇴사하고 자유롭게 내 일하며 여행하길 잘했어"라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스트레스 받다가 암에 걸리는 것보단 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까지, 앞으로의 내 운명에 대해 좀처럼 가늠하지 못했고, 최악의 경우 더이상 예전처럼 자유롭게 살기 힘들겠지란 절망감이 몰려왔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예방적 항암치료를 4개월 진행한 후 난 "어느 정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암 100% 완치라고 할 순 없고, 반년을 주기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더이상 약이나 주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빠르게 일상 생활로 돌아오며, 체력과 건강은 암에 걸리기 전만큼 회복되었다. (암 진단 받기 전,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지인들을 만나면, 나보다 더 조심스러워 하던 그들은 너무나도 멀쩡한 내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아팠던 거 맞아?"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그 누구도 내가 정말 큰 병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결국 여행이 일상으로의 회복이라는 것


IMG_0168.HEIC 파미르 하이웨이 여행 중 - 맞은편 강을 건너면 아프가니스탄 땅


다시 배낭여행할 수 있을까? 중증 환자가 해외 여행하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렇게 까지 여행할 필요가 있냐며" 비판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여행은 숙명이다. 특정한 곳에 안주하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보다, 항상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역마살이 껴도 단단하게 꼈다.


회사를 근성있게 오랫동안 다니지 못하고 퇴사-장기간 여행-새로운 일 등을 반복했던 것도, 본래 타고난 성향이 이랬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창문도 마음껏 못 여는 병실에 가만히 있는게 갑갑해서 수액 트레이를 끌고 병원 주차장만 수십바퀴 돌았을까. 누군가에겐 여행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라면, 나는 이미 계속 떠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유목민 DNA를 가진 사람들에게 강제로 논밭을 주고 정착하라는 것은, 반대로 잘 정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떠나버려"라고 등 떠미는 것과 진배없다. 즉, 결국엔 끊임없이 걷고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고 적응할 때 쯤 또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게 나에겐 일상이었다.



1년 후 난 다시 배낭을 맸다.

일찍이 중앙아시아에 관심이 많았다. "방랑하는 자들의 땅"이란 뜻을 가진 카자흐스탄부터, 요즘 하이킹으로 많이 떠오르는 키르기즈스탄, 파미르 하이웨이로 유명한 타지키스탄까지. 유독 중앙아시아를 사랑하는 전 남자친구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도 컸다. 그 나라를 사랑하다 못해, 유럽인으로서 중앙아시아에 여행업을 창업했을 정도이다. 올해 파미르 하이웨이를 7일간 차량으로 여행하는 투어로 첫 스타트를 끊은 그를 응원하는 겸 그의 투어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왕 파미르 고원 여행하는 김에 중국 서쪽 신장 자치구부터 시작해 국경을 넘어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돌고오자라고 결심했고 그렇게 40일간 배낭여행을 결심하고 중국 신장 우루무치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FullSizeRender 4.JPG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였던 파미르 하이웨이 (Pamir Highway)

정말 배낭여행해도 될까?란 걱정이 살짝 들긴 했지만, 이미 항암 종료하고 약 반년간 체력 일상 회복 거의 99%에 가깝게 해왔다. 먹는 음식만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소화기 계통 암은 식중독 등에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음식 위생 환경이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선 더욱 까다로워 져야 했다. 예전처럼 인도 시장 바닥에서 길거리 음식 자유롭게 먹고 다녀도 별 탈이 나지 않았던 강철 위장(iron stomach)이 아니다.


일명 푸디(Foodie)로 여행에서 만난 현지 음식으로 브런치를 연재할 정도로 음식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예전처럼 "아무거나" 먹으면 안된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앙아시아 지역은 음식 문화가 그리 발달되지 않았고 다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이 다소 빠졌다고 할까? 어느 곳을 여행하나 현지 음식으로 글을 남겨왔는데 아쉽게도 중앙아시아에선 다룰만한 음식이 그리 많이 없다. 대신, 중국 신장 자치구부터 시작해 중앙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을 브런치로 조금씩 연재해보려고 한다.

2025년 8월 중순~10월초까지 중국 신장자치구부터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건강하게 귀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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