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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세 번의 데이트

후안, 콜롬비아 메데진

by 노마
콜롬비아 영어/스페인어 언어 교환 모임

후안을 처음 만난 것은 메데인에 있는 한 영어학원이었다. 이왕 한 달 살기를 시작했으니, 주기적으로 갈 수 있는 밋업 이벤트 등을 찾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영어학원에서 “영어/스페인어 언어 교환 이벤트”가 매주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원 이벤트이긴 하지만, 스페인어 연습하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오픈된 모임이었다. 첫 날 방문했을 때 야외 테이블에 그룹별로 앉아 각자 세 손가락을 펴서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 잘못 왔나 싶어 두리번 거리자, 스태프가 다가와 영어로 “혹시 왓츠앱 메시지로 연락준 사람이냐”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세 사람만 모여 있는 한 그룹에 나를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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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각자 손가락 3개에 얼굴 모양을 그려, 각자 이름을 붙인 다음 상대방에게 이를 소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언어교환 모임이지만, 사실상 학원 수강생들의 영어회화 모임에 더 가까웠는데 그도 그럴것이 이 곳에서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영어 초보자들이었기 때문에, 말문이 막히면 그들이 스페인어로 서로 “이거 어떻게 말하지”묻는 것을 들으면서 배우는 것도 꽤 있었다. 테이블을 돌아가며 대화 파트너들을 바꾸면서 이야기하다가 후반부에는 학원 스태프까지 포함해 모두가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오히려 이 후반부에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베네수엘라에서 와 이 곳에서 배달일을 하며 취업 준비하는 사람, 어렸을 적 미국에 살다와 이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영어 강사하는 사람, 의사로 일하는 사람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자연스럽게 낄 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보고 “어디서 왔냐”란 질문을 했다. 그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자기소개만 10번 넘게 했는데, 나중엔 누군가가 똑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신 소개해주기도 했다.


후안 역시 비교적 늦게 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날씬한 심슨을 닮은 백인 외모에, 꽤 능숙한 영어를 구사해서 처음엔 외국인인가 했는데 메데인 토박이었다. 이전에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고, 지금은 취업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날 그가 합류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버스 막차 시간이 불안해 자리를 떠야했는데, 그가 왓츠앱 번호를 교환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에게 번호를 찍어주고,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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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에게선 그 다음날 바로 연락왔다. 이번 주에 자신이 보고 싶은 연극이 있는데, 혹시 같이 가겠냐는 거였다. 자막도 없는 연극을 내가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하자 후안은 “너 스페인어 실력이라면 문제 없을거야, 아니면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라며 나를 설득했다. 총 4개의 연극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중 세익스피어 작품인 리어왕을 현대식으로 각색한 연극도 있었다. 리어왕 희곡을 대충 알고 있으니, 비교적 이해가 쉽지 않을까? 어차피 70분 연극이고, 스스로에게도 스페인어 도전하는 계기로 삼자는 생각으로 그의 연극 데이트에 흔쾌히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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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로서 일을 하며 세계여행을 합니다. 한국 환승하면서 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 후 다시 배낭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뻔하지 않은 여행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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