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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Dec 03. 2023

언젠가는 들려줄 소식

막연하게도 내 삶의 끝은 사고라 생각한다. 막연하다고 표현했지만, 삶이 내내 그러했으니 확신이기도 하다. 
 

올해, 두 번의 교통사고를 겪었다. 한 번은 졸음운전 차량이 뒤에서 들이박았고, 또 한 번은 난폭운전 버스가 앞 버스를 들이박았다. 졸음운전 차는 들이박은 것도 모자라, 가드레일을 타고 올라오기까지 했는데, 덕분에 차가 올라오고, 앞 유리가 금 가는 걸 조수석에 앉아 지켜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두 사고 모두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의 부주의함이 아닌 누군가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기에 불길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대부분 그러했다. 작년에는 택시에 내리고 짐을 꺼내던 중 발이 깔렸다. 설날 아침이었고, 뒷좌석에 실린 짐을 꺼내는 중 벌어졌다. 자동차 바퀴에 깔리는 사고는 세 번 겪었다. 작년 사고와 합쳐서 두  번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친구가 잊고 지내던 사고 이력을 하나 말해주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아저씨 차에 발을 깔리고 몇 만원 들고 왔다는데, 생각이 날듯 말듯 해서 확실치는 않다. 


그 밖에도 골목길에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부딪혔다거나, 길을 건너던 중에 부딪혀서 튕겨져 나갔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는 혼 날 거 같아서 도망쳤다. 큰 사고가 아니었기에 다행인 일이었다. 어린아이를 쳤는데, 졸지에 뺑소니가 되어버린  운전자 입장에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아무튼 나의 교통사고 이력을 모두 더하면 8번은 된다. 5살에 한 번, 초등학생 때 세 번, 중학생 때 한 번, 30대인 지금 세 번을 겪었다. 크게 다친 건 5살 때뿐인데, 트럭 뒤에 놀고 있던 나를 못 보고 그대로 후진해버린 사고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애가 깔렸다고 소리친 덕분에 살았다고 한다. 사고로 인해 온갖 후유증을 얻었다. 삶의 첫 기억이 병원이다. 썩 유쾌한 시작은 아니다. 얼굴이 깔려서 머리에 금이 갔고, 코뼈도 삐뚤어져 20년 넘게 축농증으로 고생했다. 극심한 두통과 코막힘, 주걱턱도 얻게 되었다. 지금은 수술해서 코막힘은 거의 없어졌고, 두통도 사라졌다. 양악수술은 목숨을 걸어야 하기에 그냥 두는 중이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고통이었기에 그 일이 없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딱히 그러지 않는데,  어찌됐든 지금의 삶과 지나온 날들로 인해 ‘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럭저럭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됐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고를 당해서 이런 얼굴과 이런 몸으로 살고 있지만, 사고를 당하지 않은 삶이 지금보다 ‘최선’일 거란 보증은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렇다 보니, 운전은 절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죽하면 사주를 보러 갔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형이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가족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동생은 절대 운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했다. 대신 본 것까지 합치면 두 번 들은 셈이다) 누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냥 길을 걸어도 들이박히는 삶인데, 운전 하게 된다면 어찌 될지 솔직히 좀 무서울 지경이다. 뭐 부적을 쓰거나 굿을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거 같다. 이 핑계로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있다. 카카오택시라는 기술의 발전과 누군가 태워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고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다. 삶이 사고로 가득하다는 말도 이상하지 않고.  그러니 나의 마지막도 사고가 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거다. 이 이상하지 않은 일에 몇 가지 바람과 소망을 담을 뿐이다. 끝이 너무 빠르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과 시작과 끝 사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끝나는 순간은 순식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사고를 당하는 순간은 누군가 휘말리지 않고 나만 겪게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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