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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Aug 19. 2023

내가 똥강아지라 관뒀습니다

무해하고 약한 존재들에게

신문사에서 알바를 했다. 부고 알림 작성, 우편물 가져와서 편집실 기자들에게 전달하기, 탕비실 간식 준비, 소포와 택배 부치기 등 잡무를 맡았다. 당시 한쪽 다리를 끌며 비뚤게 걷던 30대 중반 계약직 언니가 사수였다. 6년 차 그녀의 별명은 전무님. 회사의 역사, 인력배치, 자금사정, 인물을 비롯해 내외부 시설과 복지제도까지 사람들은 각 부서에 문의하기 전에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를 따라 우편물 뭉치를 들고 회사 곳곳을 누빌 때 모두로부터 듣게 되는 회사 내 사건사고와 뒷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어서 3시간 근무 시간을 30분처럼 줄여줬다.


계약직 그녀는 본인이 하마를 닮았다며 스스로를 함마라고 불렀다. "함마 왔습니다아"가 그녀의 인사였다. 까만 플라스틱 테보다 두껍고 볼록 굴곡이 있는 안경알에 확대된 함마의 눈은 홀로그램처럼 얼굴에서 떠있었다. 숱이 많은 단발머리를 대충 묶어 목 뒤에 머리가 잔뜩 튀어나와 있었고 흰머리도 다듬지 않은 잡초처럼 검은 머리 사이사이 자리했다. 늘 드라마에서 보던 시장 상인과 비슷한 옷차림으로 다녔다. 계절감 없는 낡은 체크무늬 남방에 아무렇게나 입은 바지. 점과 기미 그리고 벌어지고 뒤틀린 이빨들은 '나도 가족들도 돈 벌면 나에게는 10원도 쓰지 않습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얼굴의 잡티는 제거하는 데 개당 만 원도 들지 않아 보통 사람들도 괜히 부끄러워 얼굴의 때처럼 여겨 없애고, 주변에 교정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든 요즘이지 않나. 그녀는 세상풍파를 막아줄 우산 같은 가족도 부족한 능력을 채워주는 인맥도 결정적으로 더 가지려는 욕망까지 없음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다녔다.


사람들은 우편물과 택배를 놓고 지나가는 그녀를 붙잡고 5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매일 편지들을 각자의 자리에 놓으려면 거의 모든 부서의 모든 책상을 지나다니게 된다. 취재부, 회계, 인사, 기술팀 직원 할 것 없이 사람들은 그녀와의 대화를 즐겼다. 오래지 않아 그녀의 인기비결을 알게 됐다. 그녀는 먼저 질문하는 법이 없었다. 상대가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는 사려 깊은 그녀였다. 결정적으로 함마는 말을 옮기지 않았다. 얼굴에 귀만 달린 사람처럼 열심히 듣고, 웃고, 함께 찡그리고 화내지만 그 말을 다른 부서 사람에게 전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에서도 욕하지 않았다. 옆에서 같이 듣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말을 몇 분간 지겹게 늘어놓는 사람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모든 이의 비밀을 지키며 아무에게도 해를 입혀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는 대신 말한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는 그녀였다. 가족보다 가까운 반려동물 상을 당했는데 휴가도 못 쓴다던 직원의 책상에는 곱게 포장한 책 한 권을 올려놓았다. 일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웠다는 직원의 책상 위에는 박카스 한 병을 두고. 업계 최저 수준의 연봉을 주던 신문사로 유명한 곳이라 나 역시 10원 단위까지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봐서 계약직인 그녀의 급여 역시 법이 보장하는 가장 얇은 수준의 쥐꼬리였을 텐데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와 단 둘이 있을 때 대화보다는 침묵을 선호하는 나에게도 그녀는 편한 존재였다. 6년 차 사수였는데도 권위의식이 없었고 내 일까지 해주려는 그녀를 말려야 할 정도였다. 내가 질문하거나 말하기 전에는 먼저 말하지 않는 그녀와 나 사이의 적막은 어색함이 없었다. 그녀는 물과 같은 존재였다. 어떤 사람이 앞에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모양이 바뀌듯 온 에너지를 타인에게 집중했다. 인기 많은 함마 아래서 일한 덕분에 자주 각 부서의 회식에 불려 갔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소고기, 회, 고급 한정식 등 알바하는 대학생이 먹기 힘든 고단백 음식을 저녁으로 먹었다. 주로 회식은 유쾌한 일이 생긴 부서에서 하니까 덩달아서 기분 좋게 술까지 얻어 마셨다. 밥만 먹고 2차는 깔끔히 가지 않는 함마 덕분에 나도 괜히 지루한 노래방으로 얻어먹은 부채감에 끌려가지 않아도 됐다.


그녀 덕분에 사내 인터뷰를 하고 사보에도 실렸다. '우편물을 나르는 두 마리 제비'같은 이상한 컨셉이었으나 사람들이 전무님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회사에서 많은 이의 애정을 받는 존재인 듯 보였다. 비정규직에 중요도가 낮은 업무를 하지만 그녀 삶의 목적은 신문사 출퇴근 같았다. 나도 그 누구도 함마를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이상한 컨셉의 사보 인터뷰를 맡은 호기심 많은 신입 기자는 업무를 빙자해 거의 알려진 게 없었던 그녀의 개인사를 질문했다. 그는 사보에 싣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며 훅 들어왔고 덕분에 나도 함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가족도 연인도 없이 작은 반지하방에 홀로 산다던 그녀는 6년 동안 일하면서도 거의 휴가라는 걸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 남들 보폭의 반만큼 딛고 내가 세 발자국 갈 때 한 발짝 걷는 그녀였다. 그런데도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본인이 늦으면 누군가 우편 업무와 부고 작성 업무를 대신해야 하니까'였다. 타인에게 피해는 눈곱만큼도 주지 않으려는 성실함까지 그녀는 완벽히 무해한 존재였다.


학비를 벌려면 학기 중에 과외까지 해야 했던 당시, 하루 3시간 신문사 일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꿀알바였다. 학교에서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다가 함마 덕분에 아무 스트레스 없이 비싼 저녁까지 얻어먹었으니. 최저임금에 차비는 지원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경전처럼 끼고 다니며 읽었던 진보 신문지의 속사정을 염탐할 수 있다는 특전도 매력적이었다. 신문사가 나를 뽑은 이유는 최근 많아지고 있는 택배와 우편물들을 분류하고 자리로 송달하는 업무와 제보 전화들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신문은 매일 마감시간이 있어 우체국에 다녀오는 시간과 부고기사를 작성하는 시간이 겹쳤다. 그녀의 몸이 한 개라서 생기는 약간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알바생 위치에 맞게 나는 없는 존재처럼 조용히 시키는 일만 했다. 대신 그녀의 일을 덜어주려 우편 분류 방식을 바꾸고, 제보전화를 기록하는 양식을 재정리해줬다. 함마는 역시 똑똑한 대학생이라며 부장에게 별 것 아닌 나의 도움을 크게 칭찬해 줬다.


함마가 가장 좋아했던 업무는 부고기사 작성이었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한 글자씩 정성을 다 해 되짚었다. 혹여라도 고인의 이름, 가족 이름과 관계, 직장과 직급 등이 잘리기라도 할까 통신사에서 가져올 때부터 신문 지면에 인쇄된 부고칸을 확인하고 또 되짚었다. 그때만 해도 자동 시스템이 아니라 부고 기사를 받아와 직접 신문 인쇄본 파일에 얹어야 했다. 전체 기사가 있는 페이지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 그녀에게만 허용된 업무였다.


당시 노동법상 비정규직은 2년 이상 채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함마는 2년씩 총 세 번을 재계약해 6년째 비정규직이었다. 오랜 시간 휴가한 번 쓰지 않던 그녀가 갑자기 3박 4일 휴가를 냈다. 그녀가 먼저 사유를 말하지 않아 나도 그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묻지 않았다. 첫 휴가를 떠나며 그녀는 나에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부고 기사에 이름이 잘못 나가거나 한 글자라도 잘려서 나가면 안 된다고. 사실 복사해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조심해서 잘하겠다고 부장에게 한 번 더 확인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며칠 동안 나는 기계적으로 맡은 일만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함마가 없으니 직원들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덕분에 아무도 내게 개인사와 회사 일을 말하지 않아 업무가 빠르게 끝났다. 우편물에 날개가 달린 듯 제자리에 소리 없이 놓였고 부고 기사도 원래부터 지면에 있는 것처럼 빠르게 전달됐다. 우체국까지 다녀와도 2시간이면 일이 끝나 회사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다 읽었다.


그녀가 돌아오기 하루 전. 부장은 나에게 3시간 일 하면서 5시간만큼의 일당을 줄 테니 비정규직으로 등록을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함마 자리에 오겠냐는 제안을 한 거다. 놀란 나는 첫마디가 "함마 선배도 알고 있어요?"였다. 부장의 대답은 이제 더 이상 계약 연장이 힘들 것 같다고 통보했고, 새로운 직원 뽑는 동안은 계속 휴가를 쓰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부장은 나에게 빠릿빠릿하게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걸 눈여겨봤다며 능글맞게 웃었다. 지가 보긴 뭘 보나, 함마가 말해줘서 알았으면서. 내가 했던 별 거 아닌 일들을 큰 소리로 부장에게 자랑하며 헤실헤실 웃던 그녀가 자꾸만 생각났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직원도 효율성을 기준으로 나무처럼 뎅겅 잘려나가는 현장보다 부장이 더 끔찍했다.


함마가 직원들에게 쏟은 마음 그리고 시간과는 별개로 그녀의 업무는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업무도 아니고, 어차피 정규직들이 받는 복지나 혜택을 제공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우편물 수발과 부고기사 작성 직무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게다가 걸음도 빠르고, 직원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니 일처리도 훨씬 빠른, 계약 연장 따위는 고민해주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이 그들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겠지. 그러고 보니 함마는 신문사에서 6년이나 일했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직이라는 단어가 민망하게 어느 회사, 어느 직무에서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내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면 직원들의 심신 안정과 생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함마도 나도 어쩌면 사무실에서 거둬준 똥강아지 같은 존재였을까. 언제나 꼬리를 살랑이고, 직원들의 말을 다 들어주지만 절대 말을 옮기는 법 없는 충성스럽고 무해한 것들. 하지만 있던 없던 상관없고 모두의 개이기 때문에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존재. 그녀가 성실하게 출퇴근하는 6년 동안 함마가 계약직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루종일 책상 한구석에서 말없이 오탈자만 찾는 직원조차 대학교 졸업장을 가졌으니 그녀는 정직원이 되기엔 자격 미달이었을 거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 쓰지 않는 피 같은 돈까지 망설임 없이 써가면서 애정한 직원들 중 한 명이라도 함마에게 방송통신대학교의 졸업장이라도 딸 수 있도록 조언해 줬다면 어땠을까. 나는 왜 저런 생각을 그때 못했나. 아니면 함마라도 계약을 세 번이나 연장할 때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데 사내 힘 있는 누군가에게라도 정직원이 되려면 무엇을 하면 되느냐는 질문한 번 하지 않았을까. 대책 없이 순수한 사람은 각자도생의 정글에서 늘 도태된다.


큰 호의를 베풀듯 계약직 전환의사를 일주일 내로 밝혀달라는 부장의 말은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이미 이번에는 계약 연장이 힘들 거라는 것을 알았다며 애써 웃으려는 함마를 보면서도 나는 알 수 없이 화가 났다. "야이 똥강아지들아 너네가 처먹는 소고기값만 모아도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수 있겠다"라고 소리치는 대신 그만둔다고 말했다. 신문사의 구석구석과 직원들을 난초처럼 돌봤던 그녀를 위해 한 마디 시원하게 하는 대신, 혹시나 나의 언론사 입사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를 먼저 계산해서였다. 공고를 내자마자 몇 통씩 들어오는 이력서는 6년을 하루처럼 성실했던 함마도, 신문사를 학창 시절 내내 동경했던 나도 대체하는 데 몇 시간도 필요 없음을 증명했다.


지금도 종종 길에서 그리고 대기실에서 우연히 노동자와 힘없는 이들을 대변한다고 떠드는 그 신문사의 신문을 마주칠 때면 어느 쪽 다리가 짧은지 확연히 보이는 걸음걸이로 멀리서 외치는 함마의 일그러진 얼굴과 비뚠 이빨 사이로 "안녀어엉"하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다. 나도 약자라는 핑계로, 창창한 내 미래를 지킨다는 핑계로 무해한 그녀가 무생물처럼 잘려나가는 현장에서 입뻥끗 하지 않는 똥강아지임을 깨달으며 그만둬버렸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심한 저항은 퇴사였다. 함마의 존재는 그녀가 언제 거기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완벽히 빠르게 지워졌을 거고 그 자리는 트럭처럼 쌓인 무해한 존재들이 채우고 또 채웠겠지.


이로부터 8년 후 대기업에서 큰 금액의 장학금을 줄 장학생을 뽑을 때, 최종 면접 자리에 이 신문사의 기자가 있었다. 당연히 기자는 같은 고향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후보 중 가장 빛나는 이력이라며 나에게 질문했고, 나는 자랑처럼 신문사 알바 경력을 앞세워 한 명에게 주는 거액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사보에도 실린 알바생이라는 너스레를 떨며.


만약 당시에 신문사 책상이라도 뒤엎으며 함마를 위해 싸웠다면, 나는 해당 신문사 알바 경력을 쓰지 못했을 거고 장학금도 내 것이 아니었겠지. 부조리에 눈 감고 조직 내 사람에게 거슬리지 않는 선택을 하는 똥강아지가 되어야 갑자기 그리고 계속 그만둬도 나중에 별 탈 없이 자본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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