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며니 Aug 26. 2023

하루종일 사과해 본 적 있으세요?

하등의 사과, 상등의 책임

그날도 입구는 소란스러웠다. 주로 허름한 옷차림의 50대들이 바닥에 드러누우면서까지 내 자식 앞길을 막을 수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그들은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쓰는 세 살배기 마냥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소리를 치다 갑자기 일어나서는 출입 게이트를 뚫고 사무실로 올라가려고 했다. 경비들은 진땀을 빼며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된다고 재차 그들을 막았다. 넘어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입구로 달려드는 그들의 옷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경비들은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했다.


익숙한 출근길 풍경이었다. 내 아들은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담당자를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한강다리로 가겠다는 고함소리를 뒤로한 채 무표정한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낑겨타고 아홉 시 3분 전. 우리들의 책상 앞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화들은 울리고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 전화기 네 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우리들은 하루종일 죄송해야 했다. 최대한 수화기를 늦게 들어 올리고 싶다. "네... 죄송합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서..." 옆자리는 이미 업무를 시작했다.


학자금 대출본부 아르바이트는 '주택금융공사'라는 공기업 근무경력을 스펙으로 쓸 수 있는 데다가 당시 만연했던 무급 인턴 문화에 맞지 않게 최저시급의 1.5배를 주고 점심 식대까지 지원했다. 서류전형에 면접까지 보며 꽤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르바이트 자리에 선발된 인원은 세 명이었다.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하얀색 몸체에 회색 버튼이 달린 유선 전화기는 소리가 울리기 1초 전, 빨간 불빛이 먼저 들어왔다. 빨간 불빛은 응급 상황처럼 꺼짐 없이 울렸고, 부재중 수신 알림은 전화기가 감당할 수 있는 30통을 늘 훌쩍 넘겼다. 우리 업무는 매뉴얼도 필요 없었다. 그저 "1. 네. 알겠습니다, 2. 죄송합니다, 3.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어쩔 수 없습니다." 세 가지 말이면 모든 민원이 해결됐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 외 가뭄에 콩 나듯 이성적으로 학자금 대출 수혜자 선정기준 등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만 업무 담당자에게 넘겨주면 됐다.


우리는 계속 죄송해야 했다. 부모님이 아파 큰 빚이 쌓여 학자금 대출마저 못 받으면 대학을 졸업할 수 없는 청년이 이번 정부 대출심사에서 탈락했는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을 할 때도,  다짜고짜 벤츠 타고 다니는 놈 자식은 대출받는데 차 한 대 없는 우리 집은 왜 탈락했냐며 욕을 해대는 사람에게도.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하루종일 구구절절 하소연을 듣고 의미 없는 사과를 반복한 뒤 어떤 해결책도 줄 수 없이 전화를 끊는 일의 무한 반복이었다.


한 가지 숨구멍이라면 당시 알바를 관리하던 직원이 점심시간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같이 지킨다는 점이었다. 귀에서 피가 나게 고함소리를 들으며 기계적인 사과를 반복하는 아르바이트생과, 막내라는 이유로 선배들의 점심 메뉴 추천부터 시작해 각종 잔심부름을 하느라 정작 본인 업무를 할 시간이 없는 말단 직원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민원전화는 네 대 알바생은 세 명이었어서 고장 난 것처럼 하루종일 울려대는 전화통 한 대를 알바생 한 명이 양손에 수화기를 두 개 들고 번갈아가며 응대하거나 가끔 말단 직원이 함께 받아줬다. 고된 정신노동의 버팀목은 한 끼 5천 원 식대로 최대한 맛있는 집을 찾아가 대화 없이 밥을 먹고 오는 시간뿐이었다. 사죄 기계 아르바이트생 세 명은 부서로부터 업무 과중을 인정받은 덕에  한 끼 8천 원까지 부서에서 묵인해 줬고, 식후 카페에서 커피 한 잔까지 마실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여전히 회사 입구는 시끄러웠다. 아침부터 드러누워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던 아저씨는 점심시간인 지금까지 여전히 경비들의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니 씨벌, 내 아들은 신용불량자가 아니라니까. 내가 걔 이름으로 돈을 빌린 거라고. 아파서 일도 못하는 애한테 신용불량자라고 학비를 안 꿔주면 나가 뒤지라는 소리여?"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렸던 당신의 결정들이 결국은 잘못된 결정이었음을. 그 잘못된 결정이 자식까지 대출이나 채용 등 사회의 혜택에서 배제돼도 마땅할 만큼 신뢰할 수 없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들었음을. 그는 부끄러움도 없이 수십 명 앞에서 고함을 치며 방송해 댔다.


알바생인 우리는 "아들 이름으로 어떻게 대출을 받고 갚지도 않을 수 있냐"며 정작 중요한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을 피했다. 사기도박에 빠지거나, 감당 안 되는 소비로 카드빚을 져 20대 초반부터 신용 불량자가 된 경우도 있을 거다. 하지만 세상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사고, 질병, 사업의 실패 등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어린 시절부터 떠안아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시 학자금 대출 사업 예산은 턱없이 적어 신용등급이 상위권인 학생들도 대상자가 되기 힘들었다는 게, 로비에 드러누워 소리치던 아저씨가 모두에게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는데.


고등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위해 2005년부터 정부에서 시작한 학자금 대출사업의 대출자 선정 기준은 문제가 많았다. 당시 연평균 대학생 수가 290만 명이었고, 4년 간 28만 명 정도의 학생이 학자금 대출 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사업의 취지는 저소득층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넓힌다는 것이었지만, 가장 도움이 절실한 이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국내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비율은 OECD 30개국 중 최하위권이었고 2023년 현재도 여전히 OECD평균 지원액의 반도 안 된다. 어차피 취업도 못하는 대졸자가 넘쳐나는데 굳이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까지 고등교육을 장려해야 하는지 정부가 고민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사과 전담 총알받이들은 매일 이유도 모른 채 눈에 눈물이 고였고 전화에 고개를 조아렸다. 집에는 빚이 많아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떠나 조부모 손에 자랐는데, 본인은 장애가 있어 식당 아르바이트도 못하지만 호적 정리가 안 돼 고소득자로 분류된 학생도 있었다. 본인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학생들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와 상황을 적어 조심스레 업무 담당자에게 혹시 구제책은 없는지 물었다. 권태로운 공무원의 상징 같은 동태눈을 한 학자금 대출 대상자 선정 업무 담당자는 귀찮다는 듯, 그런 식이라면 형평성에 어긋나고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기계적인 답변을 했다. 실제 의사 결정자들은 세 명의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을 방패 삼아 고요하고 하릴없는 업무시간을 즐겼다. 알바생 세 명을 채용할 예산은 있으면서 목숨마냥 대학 졸업장을 간절히 원하는 인생 막장에 놓인 그들에게 내밀 손은 없는 조직이었다. 내 적금이라도 깨야하나 생각을 하다가도 일면식 없는 사람한테 그럴 수는 없다고 단념하다 죄책감마저 느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할수록 나는 무력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 아닌가. 하지만 내가 직접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면 그 사과는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사회나 집단 속에서 때로는 잘못 없는 사람이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전쟁 때 전투기술 없는 젊은이들을 맨 앞줄에 세워 총알받이로 썼듯, 의사결정자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앉아 명령만 할 뿐 잘못된 명령에 대한 피해와 책임은 힘없는 말단의 몫이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내가 사과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가? 마음속 진실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헤매면서도 역시 학비가 필요했던 세 명의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은 하루종일 모두에게 미안해야만 했다. 점심밥을 두 그릇씩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꾸역꾸역 퍼먹고는 열심히 사과를 했지만 우리의 영혼은 뼈만 남도록 말라갔다.


고위직들이 만든 시스템이 이상하게 작동하는 건데, 그 시스템 오류 때문에 이용자들이 겪는 불편을  가장 아랫사람들이 하루 종일 사과해야 하는 상황은 익숙한 풍경이다. 시스템을 설계한 상사들이 오류를 해결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텐데, 핀잔을 듣는 건 아랫사람들의 몫이다. 의사 결정자들은 고요한 회의실에 앉아 지시만 할 뿐 가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과 감정노동을 떠넘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면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건 시스템 오류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일까.


아침부터 여섯 시간 넘게 로비에서 소리를 지른 결과 아저씨는 드디어 철옹성 같은 로비를 뚫고 9층 학자금대출본부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업무 담당자와 관리자가 아닌 아르바이트생 세 명의 읍소와 사과를 받는 것 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자식 앞길 망친 아비의 무게를 지고 현실이라는 지옥으로 돌아갔다. 돈과 백이 있다면 절대 맡지 않을 ‘줄곧 사과 업무’를 담당했던 세 명의 알바생들에게는 인턴 평가 후 정규직 전환을 해주던 당시 공사의 정규직 채용 시 가산점 혜택이 주어졌다.


만약 정규직 채용에 지원해 합격했다면 같은 나도 누군가를 인간 방패로 쓰면서 정년보장과 연금 등 각종 4년제 대졸자 직원 혜택을 받고 지루할 만큼 권태롭게 업무를 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당시 사업부 정규직 채용에 응시하지 않았다. 공채에 응시한다고 최종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2009년부터 학자금 대출 업무는 한국장학재단으로 전부 넘겨졌으나, 당시 주택금융공사의 각종 민원의 처리방식은 내가 일했던 곳과 다르지 않았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사연과 함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당시 학자금 대출 대상자 선정 방식의 개선점을 제안했을 때, '왜 이딴 걸 나에게 말하지'라고 말하는 듯한 담당자의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공기업뿐만 아니라 사기업을 포함한 대부분 회사에서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용자들의 분노는 콜센터 등의 전담 총알받이가 대신 맞아주는 구조임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치만 문제를 초래한 실제 업무 담당자와 의사 결정권자들의 대응 방식은 기업마다 다르다. 기업의 콜센터는 고충을 듣고, 고객에게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본사에 개선책 전달해 개선방안을 고민할 창구라도 있지 않은가. 학자금대출본부에서 단기 알바를 하며 느낀 거대한 무력감은 인간 샌드백 역할 외 어떠한 생각과 몸짓도 무의미했기 때문일 거다. 한 달 넘게 사죄만 한 경험 후, 최소한의 감정과 윤리를 상실한 조직을 만든 시스템에 개선의 여지가 있느냐는 내가 일할 곳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전 02화 내가 똥강아지라 관뒀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