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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Sep 02. 2023

완벽한 행복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살면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는지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직원들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했다. 그 흔한 사내정치도, 알력다툼도 억 단위로 굴러들어 오는 돈 앞에서는 바퀴벌레처럼 소멸됐다. 일이 적은 건 아니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잠시 짬이 나면 한숨을 쉬면서 직원들은 명품을 온라인으로 쇼핑하곤 했다.


"월급이랑 보너스가 통장에 쌓이는데 돈 쓸 시간이 없네." 직원들은 행복한 투정을 나누며 뭘 해도 잘 되는 기쁨을 만끽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현장을 매일 목격했다. 전국 각 영업점에서 새로터진 온천처럼 따끈따끈한 투자금이 쏟아졌다. 노력과 경쟁, 쥐어짜기로 얻은 성과가 아니어서 더 달콤했다. 각 지점들은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으며 스트레스 없는 성과 자랑을 이어갔고 모두가 옆 부서와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부담 없이 칼퇴근하던 조직 말단 경리와 매일 야근하던 부장이 중요한 프로젝트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정도로 의사소통 구조도 평등했다. 전체 영업점 관리를 맡은 증권사 본사 마케팅팀 인턴이었던 나 역시 존재만으로 존중과 환영을 받았다.


처음 맡은 업무는 신상품 판매 실적을 기준으로 순위가 높은 지점에 치킨과 피자를 보내주는 일이었다. 수천 개의 엑셀 열과 행을 정리해 계산식을 몇 가지 쓰고 나면 간식을 받을 지점이 선정됐다. 사수에게 선정 과정과 결과를 보고하고, 오후에 따끈한 간식이 간다고 영업점에 연락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매일이 잔치 같은 회사에서 업무를 하니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마케팅팀이 한 해 중 가장 바쁜 때는 VIP와 임원, 사장단과 함께 서울을 둘러싼 네 개 산맥을 하루에 등반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증권그룹 회장님의 산사랑은 유명했다. 직원과 고객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산봉우리를 등반하는 전통은 실적 천국의 신성한 제의처럼 느껴졌다. 회장과 함께 새벽부터 하루종일 욕 나오게 힘든 산행을 함께하는 여덟 시간은 승진행 고속열차였다. 그래서 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의 명단과 누구가 누구와 같은 조인 지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대상자 선정 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업무 중 하나는 가장 달고 맛있는 천일염을 구하는 일! 당시 회장님은 산을 오를 때면 식사시간 외에는 물과 소금 그리고 액상 포도당을 게임 아이템 투입하듯 몸의 신호에 따라 예민하게 양을 조절하며 먹었다. 짐승 같은 갈증과 허기짐이 몰려올 때 회장님 혀 끝에 닿는 소금은 완벽해야 했다.


마케팅팀의 부장과 차장 등은 조를 짜서 땅끝 염전으로 향했다. 트렁크에 실어온 소금을 팀원들과 조금씩 찍어먹어 보면서 조향사처럼 향을 맡아보고, 소믈리에가 와인을 구분하듯 연신 쩝쩝대며 맛을 평가했다. 실제로 색과 향, 질감 그리고 단맛의 정도등이 달랐다. 소금이 무슨 맛이 있겠나 했던 나의 오산이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험한 산을 오르는 과정을 준비하려면 사전답사를 하며 동선을 확인하고 식사위치 잡기, 안전관리 시나리오 예측, 이정표 설치 등 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성과나 마감기한을 압박하는 사람이 없어 바쁜 가운데도 자율적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내려고 노력했다. 본사 직원들은 각 지점에서 적어도 5년 이상 근무하며 우수직원으로 선정된 사람들로 구성됐다. 때문에 각 영업점별 여러 에피소드를 나눌 수 있어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학벌이나 출신지역 등은 의미가 없었다. 장기근속은 학연과 지연을 희석시키고 회사가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되게 만든 거다.


서열에 따른 위계질서 없이 별다른 노력 안 해도 성과가 나는 유토피아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은 말 그대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본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별로 좋지 않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엔 들어갈 수 없었고 되는대로 지원서를 쓰다 별로 크지 않았던 증권사의 영업사원, 창구직원으로 입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회사가 인수합병등을 거치며 몸집이 커졌고, 매일 출퇴근하며 원만하고 성실하게 일했더니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노력이 항상 인정받는 것은 아님을 모두가 알듯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잘 되는 일들이 있는 거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지, 조상 묫자리를 잘 모셨던지 아니면 기도를 열심히 했던지. 아무튼 이 증권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로또 맞을 확률로 몸과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매일을 파티하듯 일했다. 인턴인 나에게도 본인들의 업무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 줬다.


게다가 옆 사람의 작은 아픔도 서로 나서서 도와줬다. 부서원들은 맛있는 빵집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아는 언니가 유기농 제빵 사업을 하는데 판로가 줄어들어 힘들다고 했던 지나가는 말도 흘려듣는 법이 없었다. 같은 팀 과장님이 추석 때 사내 행정망 자유게시판에 언니의 가게와 빵을 소개해준 덕분에 임직원 몇 백 명이 선물세트와 빵을 주문했다. 샘플하나 먹어보자는 말을 할 법한데도, 팀원들은 직접 빵을 주문해 먹어보고 개선점까지 정성스레 적어 사장 언니에게 전달해 주길 부탁했다. 증권사 직원들의 주문을 시작으로 입소문을 탄 언니의 빵가게는 직원을 두 명 고용해야 할 정도로 잘 되기 시작했다. 대가 없이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좋은 팀이었다.


말도 안 되지만 재미있었던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와 부서원들은 많이 친해졌다. 당시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며 돈이 필요해 단기 알바처럼 입사했던 터라 시키는 일만 하면 됐지만, 이것저것 본인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주려는 직원들 덕분에 나도 하루 세끼를 회사에서 먹으며 여러 업무를 경험했다. 전국 영업점 실적 관리, 창구 직원들의 고객 응대 서비스 교육, 천일염 공수를 비롯한 회장님 심기 관리, 신사업 팀과의 마케팅 전략 수립 등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했다. 나 말고 누가 와도 잘 먹이고 교육시켜 좋은 일꾼으로 키워줄 조직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지나치게 완벽한 온실 같은 사무실 속에서 때때로 불안을 느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온전한 행복의 끝엔 준비 없이 벌거벗은 채로 칼바람이 부는 바깥으로 쫓겨날 거라는 불안. 당시 직접 증권 거래를 하는 소수 인력 외에는, 증권사 영업점과 본사 근무 경력으로는 대부분 이직을 하지 않거나 드물게 다른 증권사 영업직으로 옮길 수 있었다. 금융업계 특성상 개인의 역량보다는 경제 흐름의 영향이 수익에 더 큰 변수인 경우가 많아서디. 증권 업계가 호황이면 별다른 노력 없이 성과급과 보너스가 나오고, 불황이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용 절감을 위한 인원 감축으로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 날이 좋으면 풍년이요 홍수와 가뭄이 오면 꼼짝없이 굶어야 되는 농부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시절인연이었다. 가장 좋은 때, 별다른 노력 없이 만나 가장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직원들은 나에게 정규직을 제안했다. 증권 업계가 호황이니 아프리카 여행은 잠시 미루고 경력과 월급을 쌓아서 더 큰 기회를 잡아보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어디서 태풍이 몰려와 내 일자리가 사라질지 몰라도 운 좋게 온 좋은 기회를 잡아 오늘을 성실하게 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입사 거절을 통보하는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며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이 났었다.


국내 경제 사정뿐만 아니라 지구 반바퀴 건너있는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금융 위기 쓰나미는 그들의 일터를 한 순간에 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 달 늘어가던 전국 각 지역의 영업점들은 썰물처럼 한 순간에 사라졌다. 대가 없이 타인을 위해 선한 결정들을 했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은 무기력하게 무너졌고, 좋은 사람들은 뿔뿔이 제 살길을 찾아 흩어져야 했다. 자영업자로, 몇 개 안 남은 영업점에서 실적을 쥐어짜는 관리자로, 영수증 정리 외엔 사무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 알 수 없이 서열이 정확한 회사로 일터를 옮겼다.


그때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도 불안한 행복을 착한 사람들과 끝까지 떨며 즐겼을 거다. 공공기관의 아프리카 시찰단 업무는 무급이었지만 그때가 아니면 없을 기회였다. 돈의 흐름에 몸을 맡겨 배를 불릴지, 배는 고프지만 돈의 물길을 메마른 땅에 틔우는 일을 할지를 선택하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양할 가족도 책임질 미래도 없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사무실을 뒤로한 채 그만두는 나에게 마케팅팀 직원들은 당신들의 한 달치 야근수당을 모아서 하얀 봉투에 담아 아프리카 식수 공급 사업 등에 보태달라고 했다. 너무 행복해서 그만두는 거냐는 농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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