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냄새. 나에게 미스코리아 대회는 저릿한 담배냄새로 남아있다.
지역 예선을 통과한 열다섯 명 내외 본선 진출자들은 대회 전까지 주최 측이 준비한 스케줄에 참여해야 했다. 첫날 첫 스케줄은 지방자치단체의 시청을 방문하는 거였다. 지역 축제 홍보의 일환이었다. 매일 아침 8시 전까지 집합 장소에 모여 다같이 작은 버스를 타고 기업과 정부의 각종 행사장으로 가곤 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집에서 입던 옷에 대충 선크림을 바르고 준비장소로 갔다.
그런데 웬걸. 나만 빼고 다들 속눈썹까지 완벽하게 붙인 방송용 풀메이크업을 하고 왔다. 대회날도 아니고 사전 행사날에,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속 이런 이벤트에 참여할 텐데 다들 연예인인가 싶었다. 분명히 오리엔테이션 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말고 편한 복장으로 오라고 했는데 말이다. 스폰서, 내정자, 유명 미용실 간 경쟁, 대회기간 동안 천만 원을 쓴다는 루머 등 여러 논란에 공신력이 추락하고 있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참가자들에게 대회 전까지 개인 비용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모든 비용은 주최 측이 부담한다면서.
지자체와 협찬사 방문 일정은 형식적인 사업 설명을 주고받을 때 미소 지으며 앉아있다가 커다란 현수막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미스코리아 방문’ 촌스럽고 큼지막한 현수막 뒤에 열다섯 명이 일렬로 서 환하게 웃으면 대포 같은 카메라 몇 대가 눈을 뜨기 힘들게 셔터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첫날 온 정신은 안 그래도 넙데데한 내 얼굴이 생얼로 단체 사진엔 어떻게 나왔으려나에 쏠려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솔자가 카톡 단체방에 올려준 사진 속 내 모습은 눈코입이 흐릿한 츄파춥스였다. 마른 몸에 상대적으로 큰 얼굴이 돋보이는. 사전 행사일정에서 겉모습은 본선에서 진, 선, 미를 가리는 평가요소가 아니었지만 꽃다발 속에서 나도 나뭇잎이 아닌 꽃이 되고 싶었다.
인형처럼 예쁜 독보적인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비슷한 체형과 어중간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의 화장과 머리손질을 거치면 본래 모습보다 몇 배는 사진 속에서 괜찮아 보였다.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은 나는 일렬로 늘어선 예쁨을 돋보이게 만드는 추레함일 뿐이었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 낄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다.
현직 모델, 전직 아이돌 연습생, 연극영화과 학생 등 전문가들의 꾸밈을 받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십여 명의 동기를 제외하면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새벽부터 완벽한 화장과 머리로 등장할 수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다 준비된 행사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서 15명의 후보자들은 대부분 무대 뒤에서 단체춤을 연습하거나, 하릴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좁은 공간에 다 같이 모여 밥도 먹고 여러 대화를 하면서 금세 안면을 텄다.
배우를 준비하며 미스유니버시티, 미스춘향, 고추 아가씨, 사과 아가씨 등 각종 미인대회를 취미처럼 나갔던 언니들은 목소리도 컸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직업 미인대회 출전인들은 쓸데없는 신경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 성격 좋게 묻기 전에 큰 소리로 여러 정보를 공유해 줬다. 첫날의 주제는 머리와 화장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가였다. 연예인들이 다니는 강남 유명한 미용실에서 이미 오랜 기간 협찬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을 제외하면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을 때 최소 15만 원에서 평균 20만 원 이상 돈을 내야 하는데. 소속사나 친분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꼭두새벽부터 풀메이크업으로 나타난 걸까.
본인이 다니는 미용실에 어떤 연예인이 다니는지 자랑 섞인 일화를 신나게 얘기하는 사람들 뒤로 핸드폰만 무심하게 쳐다보는 곱상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예선과 오리엔테이션 때 긴 대기시간을 함께 보내며 말을 튼 나처럼 말없는 후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제차 매장 입구에서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우를 준비한다는 그녀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화장과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알면 안 되는 비밀을 말해주려는 건지 큰 눈을 굴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 손을 내 귀에 대고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강남 뒷골목에 아가씨들 다니는 곳으로 가면 오만 원도 안 들어"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해 괜히 나도 목소리를 죽이고 "아니 연예인이나 모델 아가씨들 다니는 곳은 최소 20만 원은 내야 된다던데?" 친구는 킥킥거리며 "아니, 나는 술집 언니들 화장해 주는 미용실에서 했는데 열 번 현금으로 선금내면 47만 원이라고" 게다가 괜찮은 옷까지 빌려준다고 했다.
그래. 4만 7천 원에 사진 속 나에게 눈, 코, 입을 만들어준다는데, 그리고 나뭇잎이 아닌 꽃이 되고 싶었던 나는 친구에게 가게 몇 군데 추천을 받아 바로 전화해서 다음번 일정부터 예약했다. 아침 7시 30분까지 미용실부터 한 시간이 걸리는 협찬사에 가려면 적어도 5시에는 화장을 받고 머리를 손질해야 했다. 탄탄한 베이스 메이크업부터 얼굴을 싹 지우고 다시 그리는 수준의 세심한 화장과 머리숱을 세 배는 많아 보이게 하는 고데기 손질에 가발까지 붙이는 머리를 하려면 한 시간 반은 필요했다. 청담역 뒷골목에 다섯 평 남짓한 미용실이 줄지어 있는 구역에서. 그중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곳은 엘리베이터 없는 허름한 빌딩의 3~4층에 위치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4층까지 걸어 올라가 도착했는데 미용실 입구 철문이 닫혀있었다. 다섯 시 땡. 그리고 다섯 시 반이 될 때까지 나에게 10회 비용을 일시불로 입금해야지만 화장을 해준다는 원장이란 사람은 전화도 안 받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원장의 손길만 믿고 비비크림조차 준비하지 않은 나를 원망하기 시작할 때쯤. 여섯 시가 다 돼서야 머리를 산발한 원장이 나타났다. 걷기와 뛰기 사이 애매한 속도로 탁탁 계단을 오르면서 "미안!"을 대충 흘렸다. 손잡이가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허름한 철문을 따려고 원장은 담배향이 짙은 바람을 일으키며 내 앞을 지나갔다.
삼십 분 안에 준비를 하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따질 시간이 없었다. 손톱 끝까지 연기 냄새에 절은 그녀의 손기술은 능숙하고 훌륭했다. 빠르게 샥샥 내 얼굴에 또렷한 눈썹과 반짝이는 눈, 촉촉한 입술을 그려줬다. 매일밤 이성을 홀리는 얼굴을 수십 개씩 만들어온 원장의 노하우는 내 얼굴에도 통했다.
"245라고 했지?" 라며 내 머리엔 열로 달군 헤어롤들을 가득 말아놓고 뒤쪽 의상실에서 하얀 원피스와 구두까지 재빨리 가져다줬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내 시선 위를 커튼처럼 살짝 가릴 만큼 길어진 인조 속눈썹이 눈꺼풀에 붙어있는 느낌도 기분이 좋았다. 4만 7천 원에 곧게 편 허리와 당당한 어깨로 방긋방긋 웃으며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고, 선팅 된 차, 창문 등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괜스레 베실베실 웃고 있는 나에게 술집 언니들이 가는 메이크업샵을 소개해준 친구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너한테 담배냄새 나." 그녀는 나를 조용히 화장실로 불러 휴대용 의류 탈취제를 온몸에 칙칙 뿌려줬다. 거기서 빌린 옷은 꼭 향수나 탈취제를 뿌려줘야 한다면서. 미스코리아 본선 행사기간 동안 대부분의 후보들은 가방에 탈취제를 가지고 다녔다. 자신이 또는 남이 피운 담배냄새를 없애야 했기 때문에. 똥에서조차 향기가 날 것 같은 외모의 가냘픈 그녀들은 연초 냄새를 숨기는 데 능숙했다.
산뜻한 꽃향기로 가득할 거라고 상상했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예상과는 달랐다. 재력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1년도 전부터 체형과 피부관리, 식단조절과 모델 워킹 등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했다던 몇 명을 빼고는, 꿈의 크기가 나의 위치보다 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실과 꿈의 괴리를 채운 건 끈적한 냄새의 담배향이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온갖 갑질에 시달리며 모델 일을 해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언니, 암투병하는 홀어머니를 모시며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좋은 집안에 시집가려면 미스코리아 대회 경력이 도움 된다는 결혼 중개업체의 말에 참가한 동생 등은 담배 연기에 스트레스를 태워 보냈다. 협찬사 사장이나 지자체 임원 등이 말도 안 되는 불쾌한 농담을 할 때면 나도 담배를 배워볼까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빼어난 외모, 굉장한 학벌, 명문대 예술학과에 입학할 정도의 춤과 노래 실력 등 여러 재능을 가진 꿈 많은 열다섯 명의 우리. 그리고 돈이 넘치는 강남 뒷골목에서 웃음과 젊음을 파는 그녀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주 넘게 매일 곱게 분칠을 하고 예쁜 옷과 신발을 신고 다녔더니 화장을 지우고 한껏 부풀린 머리에 샤워기 물을 끼얹어 축 가라앉은 내 원래 모습이 볼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동도 트기 전 화장을 받을 땐 담배냄새가 자욱한 술집 근처 미용실에서 영어 자기소개를 중얼거리며 외우고, 밝은 햇살 아래 지자체와 정부 그리고 대기업 행사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 자리에서는 번듯한 겉껍질에서 행여라도 더러운 삶의 냄새가 날까 연신 서로에게 방향제를 뿌려대야 했다.
실내 흡연이 금지된 후, 장소의 고급스러움과 위생은 냄새로 증명된다. 사람의 품위와 가난 역시 후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슷한 나이에 똑같이 웃음과 기회를 교환하던 젊은 우리 모두는 종이 한 겹 정도의 차이로 낮에 일하냐 밤에 일하냐가 정해진 게 아닐까. 호스트바에서 미소를 파는 남성과 미스터코리아 대회에서 웃통을 벗고 번쩍이는 근육을 내보이며 더 좋은 삶을 향해 이를 악 물고 매일 땀 흘렸던 젊은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리라. 구김살 없이 넉넉한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담배를 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젊은 나이부터 자기 몸 망가져가며 담배를 태우는 이들의 속사정은 녹록지 않은 삶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겉모습이 아무리 번듯해도 몸에 밴 냄새까지 속이긴 힘들더라.
꽃길은 걷고 싶은데 가진 건 없는 젊은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한정적이다. 연예인이 될 만큼의 끼나 외모는 아니지만 평균 이상의 명예와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이들을 정확히 겨냥한 대회가 미스코리아와 미스터코리아 등의 미인대회가 아닐까.
일찌감치 허울 좋아 보이는 공식 행사보다는, 손에 쥔 현금만이 내 인생을 구원한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 몸과 웃음을 파는 젊은 그녀들이 입던 옷을 입고 구두를 신은 내 모습이 대기업 사옥 강당 창문에 비쳤다. 전과 다른 내가 되겠다며 당차게 출전을 결심했던 나는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입체적인 여성들에게 담긴 세상의 단면을 보고 냄새 맡았다.
밤과 낮이 바뀐 젊은 여자 수십 명을 해 질 녘에만 단장해 주다가 내가 미스코리아 화장을 다 해본다며 들뜬 원장은 애연가의 눅진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댔다. 젖살이 채 안 빠진 얼굴에 분칠을 하며 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던 그녀들이 바라봤을 거울엔 잡히지 않는 꿈을 좇는 내가 비쳤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나라 세계여행을 하다 문득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출전을 결심했다. 미스코리아를 비롯한 각종 미인대회는 여전히 성상품화 논란이 있지만 하버드대 학생 금나나 씨, 서현진 아나운서 등 이후로 대기업 입사 스펙 정도가 되면서 문턱이 전보다 낮아지기도 했다. 나는 학벌, 외모, 몸매, 재능 모두 어중간한 데다가 나를 꾸미는 법조차 몰라 대회 시작부터 끝까지 황새들 쫓아가는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져라 뛰어다니기만 했다. 세상을 이로운 곳으로 바꾼다는 지나치게 거대한 꿈과 전혀 결이 맞지 않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웬일인지 진선미가 아닌 4등을 했다.
4등 협찬사 상장은 행운처럼 보이는 빛깔 좋은 무상노동계약서였다. 주인공이 있으면 들러리가 있어야 하는 법. 공주의 아름다운 의상을 위해서는 바느질하는 무수리가 있어야 하고, 미스코리아 대회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협찬비를 낸 회사들이 본전 생각 안 나도록 요구사항을 들어줄 미스협찬사들이 필요하다. 전체 대회 진행비, 주최 측 직원들의 월급 등은 모두 협찬사의 협찬금으로 충당해야 됐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의 구김살을 숨긴 밝은 미소의 대가는 대회 주최 측의 차지였다. 유명인이 될 수 있다는 허울 좋은 기대감에 무상으로, 오히려 나의 시간과 분장비에 돈까지 써가며 벌건 대낮에 귀한 내 젊음을 잘도 팔았다.
여러 협찬사 중 가장 많은 협찬금을 낸 회사의 미스협찬사였던 나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끝난 다음에도 무상으로 광고를 찍거나, 사내 외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협찬사의 회식 자리에서 곱게 화장을 하고 불편함을 감춘 미소로 대회 관계자와 함께 감사인사를 했어야 했다. 술이 달큼하게 취한 기업 임원들과 직원들이 1차가 끝나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다 2차를 가자며 팔을 잡아끌었다. 연기를 뿜으며 내 영어 자기소개를 들을 때 감탄했다고 말하는 협찬사 대표는 비교적 순진한 얼굴의 기업인이었다. 당신이 뽑은 미스협찬사를 진짜 아끼는 건지 계약 기간 1년 내에 최대한 많은 광고와 행사에 써서 협찬금이 쓸만한 투자였다는 것을 회사에 증명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주최 측에 전화해 예정된 광고 촬영과 협찬품을 받지 않기로 하고 미스협찬사 자격을 반납했다. 그를 비롯해 관계자들은 위험한 선은 넘지 않는 사람들이라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지만,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며 세상을 이로운 곳으로 바꾸겠다고 강당이 쩌렁쩌렁 울리게 자기소개를 했던 내 모습과 끈적한 현실의 담배연기가 섞이는 일상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능력도, 재력도, 외모도 별 볼 일 없이 어중간한 나는 더 많은 것을 잡으려 할수록 삶의 무게를 실은 담배냄새와 가까워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