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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떠올리다가 너가 보고싶어졌어.

- 그때도, 지금도 고마운 너와의 여행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요 며칠, 부모님과의 여행계획을 짜느라 이곳저곳 정보를 찾아보며 고민하는 중입니다.


여행계획을 짜다가

이전에 제가 다녀왔던 여행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이 질문. 정말 답하기가 어려운 거에요.


제가 '감탄'과 '만족'의 역치가 낮은 편이라 그런지,

'어디가 특별히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행지가 딱히 없었어요.

대부분이 다 좋았고, 다 나름의 이유로 인상 깊었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유독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던 여행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베트남 호치민 & 다낭"


이 여행지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문 이유는,

동생과 갔던 마지막 여행지였거든요. 벌써 6년 정도 지난 일이네요.

그리고 동생을 못 본지도 벌써 3년이 더 되었습니다.


20대 초~중반까지, 둘이서 해외여행을 세 번 갔는데요.

'싱가포르', '독일 + 동유럽 3국', '베트남'




처음 합을 맞췄던 싱가포르.

마지막 날, 길거리에서 대판 싸우고 세 시간 넘게 따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만나서는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파요.

당시 저는 여행의 의미를 '최대한 많은 장소를 빠짐없이 둘러보는 것'에만 두고 있었거든요.

고등학생이었던 어린 동생한테 너무 가혹한 일정을 강요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예산 때문에 거의 도보로 이동했고,

휴대폰 로밍도 저만 해간 상태에서

"그럼 우리 따로 시간 보내자"는 말까지 뱉어버렸습니다.

혼자 씩씩대며 떠난 저는 이곳저곳 둘러보며 화났던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약속 장소에 조용히 앉아 저를 기다리던 동생을 다시 마주했던 그 순간,

그 순간은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가슴 한쪽이 시큰거려요.

그 때의 저는... 참 철없고 못되고 집착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여행, 유럽.

"2주 동안 4개국을 돌아다니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큰 불화없이 정말 재밌게 지냈어요.' 라고 말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준비과정에서는 꽤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잘못이었어요.

제가 굵직한 일정과 방문지 몇 개만 정해두고는,

모든 교통편 확인 및 예약을 동생에게 떠넘겼거든요.

게다가 여행 멤버는 제 친구 두 명을 포함한 총 네 명이었답니다.

생각할수록 미안해요.. ㅠㅠ

그런데도 꾹 참고 다 해낸 동생은, 여행이 끝나고 귀국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행 전에는 좀 많이 섭섭했는데, 여행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 풀렸어. 같이 데려가줘서 고마워"라구요.

그 말을 듣고, 참 부끄럽고 고맙고, 울컥했어요.

속 깊은 동생 덕분에 여행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마지막 여행, 베트남.

호치민과 다낭.

가기 전, 중, 후 모두 갈등없이 평화롭고 재밌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이전에 단체투어에서 알게 되었던 가이드 님께서

감사하게도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안내해주신 덕분에, 더더욱 맛있고 알찼던 여행이 되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먹었던

모닝글로리 볶음, 콩카페 코코넛 커피, 망고스틴, 그리고 반미.

먹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감탄했던 그 장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던 것들이었거든요.)


세 번째 여행이 앞의 두 여행과 달리 유독 평화로웠던 이유는,

예산적인 여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반성한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여행에서 긴장과 의무감을 내려놓고,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도 충분히 대화하며 조율했고,

무엇보다 '같이 있는 시간' 그 자체를 제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이 둘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어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지금까지는 마지막 여행이 되었고,

그 때가 동생과 긴 시간을 함께 했던 가장 최근의 기억이 되었거든요.



동생은 몇 년째 해외에 살고 있고,

이제 우리 둘 다 각자의 가정을 꾸린 만큼,

다시 둘이서 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둘이서 함께 했던 여행들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고,

그 시절의 결정들이 더욱 고맙고 다행스러워요.


살아온 길이 꽤 다른 둘이지만,

'자매'끼리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고,

우리 둘만 공유하는 추억이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키우며 소통하는 자매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됩니다.


어릴 적,

'슈퍼에서 동생을 사와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던

그 때의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또 있을 둘만의 여행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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