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영광에 취한 자는 이미 죽은 자다? 그래도 가끔은 회복약이 돼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오늘은 '리즈시절'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작아진 현재의 나를 여러 번 되새겼던 어제의 저에게,
스스로를 위한 '자뻑 응급조치' 차원이랄까요.
저에게 있어 리즈시절, '찬란했던 전성기'는,
어느 한 시기를 콕 집기 어려울 만큼, 여러 순간에 흩어져 있습니다.
- 모범생으로 칭찬받고, 학교 가는 것이 매일 즐거웠던 중학생 시절
-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공부하던, 간절하게 몰입하면서도 소소한 일탈이 세상 재밌던 시절
- 부모님 손 벌리지 않고, 자립하며 알차게 지냈던 대학생 시절
- 직장에서 막내로 예쁨받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이 설레고 즐거웠던 시절
-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식을 올렸던 그 해
(온 세상이 핑크빛이었어요. 감사한 분들이 참 많았고, 온 세상이 나를 축복해주는 것만 같았던...
모든 것이 눈부시게 따뜻하고 좋았던 시간. 직장 생활도 잘 풀려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직장에서 주도했던 프로젝트가 좋은 평가를 받고, 대학원 합격 소식까지 연달아 받았던 시절.
돌이켜보면, 그 시절들도 결코 마냥 빛나기만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치고 힘들고, 해야할 것들에 압도되었던 날들도 참 많았어요.
- 중학생 시절에는 체육 수행평가 하나마저 완벽히 해내고 싶어서,
테니스 과외를 받고, 아빠와 매일 저녁 2단 줄넘기를 뛰고, 물구나무 서기를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 고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에는 자책과 고민들이 가득했어요.
계획했던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날, 기숙사 생활에서 오는 자잘한 스트레스,
수능을 망치면 인생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하던 기록들.
- 대학 시절엔,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할 것도 많았지만 시간은 늘 부족했고 체력은 자주 바닥났던 것 같아요.
거기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져서, 마음이 참 복잡했던 시절이기도 했고요.
- 직장인이 되어서는, 해야할 일들에 짓눌렸던 어느 날, '그냥 출근길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던 날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반짝였던 장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마도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학생, 사회초년생 특유의 열정과 발랄함,
그때의 생기와 빛나는 에너지가
여전히 제 기억 어딘가를 환하게 밝히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살면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어요.
가끔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아, 시험 전으로 돌아가서 이 부분 다시 보고 시험치고 싶다' 는 생각은 했던 것 같지만요.
그만큼, 매번 그 나름대로 힘들었고 치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모든 시절들이,
지금 돌아봤을 때 리즈시절처럼 느껴지는 것은,
제가 저의 지난 시간들 속에서 회오리치던 감정과 어려움들을 정면으로 마주했고,
결국은 잘 지나와서 '추억'이자 '경험'으로 정리해냈다는 반증 같아요.
새삼,
지금 보내고 있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되어야 할...)도
언젠가 또 돌아보면, 반짝반짝 빛나던 리즈시절이 될 수 있을지도요.
지금은 그 반짝임을 전혀 보고 있지 못하지만요.
저희 신랑과 저는 오랜시간 만나면서 서로의 성장과 노화(?)를 직관하고 있잖아요.
제 리즈시절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가끔 대학 시절이나 직장 초년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가 더 잘나갔는지” 시합하듯 떠들기도 해요.
그러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면, 신랑이 툭, 한 마디를 던집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한 자는 이미 죽은 자다"
그런 말이 있죠. 나이가 들면 자꾸 자신의 젊은시절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잘 나갔고, 혹은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가에 대해서요.
맞는 말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고,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우리는 정체되고 결국 빛을 잃어갈 거에요.
하지만 리즈시절을 떠올리는 것 자체는,
지금의 나를 일으켜주는 회복약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 때의 '열심'을 떠올리며, 지금 마주한 어려움도 피하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용기도 내게 되구요.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제가 나름 반짝였던 그 시절들을 떠올리며
살짝 ‘자뻑’해보려고요.
"괜찮아. 나, 나쁘지 않았어. 지금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