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상상해볼래.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오늘은 10년 후를 상상하며, 버킷리스트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그런데, 10년 뒤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 주제에 대해 적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어제 밤부터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요.
10년 뒤가 잘 그려지지 않더라구요.
그런 스스로에 놀랐습니다.
제가 기억하던 저는, 미래의 저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거든요.
특히 직장에서 선배님들이나 상관 분들을 보면서, 저의 미래 모습에 대입해보며 '저 때쯤 나도 저 분처럼 저런 방식으로 일해야지' 혹은 '저 정도 연차가 되었을 때, 저런 말이나 태도는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문득, 제가 지금 이렇게 미래의 저를 잘 떠올려내지 못하는 것은,
근 2년 동안 제가 뼈저리게 느꼈던 위축감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아직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위축감은 논문을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졸업을 해야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것 같아요.
저는 대학원 생활이 무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남들은 쉽게쉽게 털어내는 과제들도, 저는 하나하나가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힘들었고,
제가 마치 골칫덩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단지 전공을 바꿔서 (문과 → 공대)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공을 바꿨지만 수월하게 이 과정을 끝내는 일부 사람들도 분명 보았거든요.
그냥 이 분야에 대한 제 역량이 전체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느끼는 게 아니라 인정합니다.
박사과정도 아닌 석사과정이면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합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어쨌든 자기 몫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던, 또는 만들어가는 동기들,
묵묵히 연구를 이어가는 연구실원들을 볼 때면, 더더욱 제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남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제가 그동안 했던 것들은 보잘것없게만 느껴지구요.
대학원을 택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AI라는 단어는 듣기싫은 회피하고 싶은 단어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제가 대학원을 택했던 덕분에, AI에 대해 기본적인 감이란 게 생겼고,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배우는 즐거움, 못 넘을 것 같던 산들을 몇 번의 실패를 거쳐 결국 넘었을 때의 즐거움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교하자면, 그 과정에서의 좌절감, 위축감, 힘듦이 훨씬 더 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힘든 시간을 지금까지 견뎌내온 스스로를 '그래도 잘했다'며 다독여야할 것 같은데요.
이상하게,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는 지금이 제일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학기(여야 할, 제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이 재미없고 지겹고 길 잃은 것 같고 불안하고 막막합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이 과정을 잘 헤쳐나가고 싶은데, 그래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는데, 하기가 싫어요.
'결국 해내는 사람' 이라고 약 2년 반 전 대학원 면접 때 절 소개했는데, 진짜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나의 위축감이 지금 내 삶의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었구나.
여튼, 하고 싶은 말은,
이 누적된 위축감과 두려움이 생각보다 전반적으로 제 생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에요.
계속해서 '내가 왜 예전처럼 반짝반짝한 느낌이 안 들까'라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있었는데요.
며칠 전, 우연히 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았어요.
https://youtu.be/mhfJrrcgwSg?si=y_g5h-mJ5Q1Bguc6
영상에서는 영국 유학 중 힘들었던 점으로
“낮아지는 자존감”을 언급하시더라고요.
“해외에서 유학을 하다 보면,
유학 오기 전보다 사회적으로 더 낮은 위치의 사람처럼 대접받는 느낌이 들고,
나라는 사람의 '값어치'가 평가절하되는 기분이 누적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은 생각이 들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감정도 점점 떨어지게 된다.”
그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어요.
아, 나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구나.
사회적 지위라기보다는, 학문적으로 늘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 자신을 작게 만들고 있었구나.
나의 위축감이 지금 내 삶의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었구나.
공부하려고 대학원에 왔는데, 자꾸만 인생을 배우게 된다.
내가 작아진다.
저는 "공부하려고 대학원에 왔는데, 자꾸만 인생을 배우게 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말 많은 제 '로애락'이 담긴 문장이에요.
내가 마음먹고 열심히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이전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반짝반짝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해서'가 아닌, '우호적인 환경 속에 있었기에' 그리고 '나의 운대가 맞았던 덕분'이라는 점을 많이 느꼈어요.
제 삶의 중요도가 '개인적인 성장, 성취'에서 '가정'으로 많이 넘어온 시기이기도 해요. 점점 노산에 가까워져가는 탓일지도
그래서일까요.
지금의 저는 10년 뒤를 그리는 게 어렵기만 합니다.
나태해진 걸까요.
한때는 커리어우먼 같이 전문성 있는 모습으로, 조직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활약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는데요.
지금은 잘 떠오르지가 않아요.
저. 자라나는 중일까요.
고착되어 있는 상태일까요.
흐릿하지만, 조금이라도 상상해볼래. 내 10년 뒤.
10년 뒤가 선명하게 반짝반짝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그려보려 합니다.
41~42살의 나.
일단 아이가 둘 있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6~7살쯤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주어진 여러 역할들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각각 80%는 해내려고 고군분투 중이겠지요.
가족들에게는 '잘'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보다는 '지지하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요.
직장에서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고 불안감 속에 애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조직에 피해끼치지 않고, 제가 해야할 만큼의 고만큼의 역할만 잘 해내고만 있어도,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각 역할들을 해내며 느끼고 배운 바들을 글로 기록하고 있을 거에요.
그때 제 글의 결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정리해보았는데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 학위 취득. (석사졸업 논문 잘 마무리하기) ※해야할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니까.
- 결혼 기념 10주년 단위마다 신랑과 단 둘이 여행가기.
- 하프마라톤 도전하기 (10km 마라톤까지만 해봤다. 풀마라톤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하프로)
- 책 써보기
- 어머니랑 해외여행 가기
- 김장 배우기 (배워서, 다양한 야채로 김치를 만들어보고 싶음)
- 캐나다 여행
- 따고 싶은 자격증 : 빅데이터 분석기사, TESAT, DELE (아마 또 더 생길 듯!)
아직 완성하지 못한, 더 채워나가고 싶은 버킷리스트이지만,
이렇게 적어보면서, '저의 마음'과 '욕구'에 대해서 한 번 더 돌아보게 됩니다.
이 글이 나중에 다시 읽혔을 때는,
결국 다 잘 지나간 일들이었고,
그냥 두려워서 찡찡대던 철없는 흑역사였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때쯤엔,
생각보다 많은 버킷리스트에 [완료] 체크가 되어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