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내온 시간과 기억은 흘러가지 않고 몸 구석구석에 고여 있다가 말투, 마음씀, 손짓과 발짓에 새어 나온다. 상대방의 행동 하나에도 그의 지난 시간과 더불어 부모님,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대를 이어온 DNA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연인과 연인이 만나는 일을 두고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일이라고들 하나 보다.
친구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주고도 "별거 아냐"라고 말할 때, 나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는 엄마를 말릴 때, 월급을 올려준다는 회사에 괜찮다고 거짓말할 때, 내 이름이 불리면 놀란 눈을 뜰 때 나는 내 지난 32년의 울퉁불퉁하고 모난 시간이 묻어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지내온 곳은 해지고 구멍 나고 그 자리를 다시 천으로 덧대고, 폴폴폴 곰팡이 냄새가 나도 그것이 곰팡이 냄새인 줄을 모르는 곳이었다. 그래서 상봉이가 만난 나의 우주는 우중충하고 칙칙했을 것이다.
스물두 살, 내가 만난 상봉이의 우주는 편안했다.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여느 우주와 같이 상봉이의 우주에도 크고 작은 흔들림이 있었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고 잔잔해지는 곳이었다. 상봉이와 있을 때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앞에서 되지 않던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었다. 아주 작고 하찮은 일로 방방 뛰고 들떠도 부끄럽지 않았다. 대학생 때 내가 사기당한 돈을 상봉이가 해결해 준다면서 매일 놀이터에서 캔맥주만 깔 때는 조마조마했는데, 며칠 뒤 꼼꼼히 서류를 챙겨 와 나를 데리고 다니며 문제를 해결해 줬을 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할 줄 알게 됐다. 지인의 결혼식 날 길 잃은 나를 보고 이름을 부르며 이리 오라고 손짓해 줬을 때 반했다. 내가 일주일 동안 끙끙대며 준비한 영어 발표를 몇 시간 만에 뚝딱 해치우는 것은 멋있었고, 한 달 과외비로 번 백만 원을 일주일 만에 술값으로 쓰는 것은 신세계였다. 내 머릿속은 항상 흙탕물이 일었는데, 상봉이의 머릿속은 맑고 깨끗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면 아무 생각도 안 한다고 했고,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면 깜짝 놀랐다.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걱정이었는데, 상봉이는 날씨가 너무 춥거나 날씨가 너무 더운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였다. 상봉이는 내가 무섭다고 생각한 아빠를 재밌고 유쾌하다며 좋아했고, 콩알만 한 심장을 가진 엄마가 귀엽다고 했다. 시간을 거슬러 꼬질꼬질한 어린이 향용이를 만나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과외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상봉이가 살고 있는 평온하고 잔잔한 우주가 나의 거칠고 잔잔한 날 없는 우주를 안아주는 것 같았고, 나는 안도했다.
'그런 상봉이가 우울증이라니! 내 남자친구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처음 상봉이가 원인 모를 우울증을 진단받았을 때는 단지 길고 긴 슬럼프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게임만 마치면, 다음 달이 되면, 내년이 되면, 휴학 기간이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렇게 슬럼프라고 생각했던 2년을 보내고 상봉이가 대학원을 자퇴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을 때, 우리는 그제야 그가 끈질기고도 지긋지긋한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 번 앉으면 2~3시간씩은 일어나지 않고 거뜬히 공부하던 상봉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려 10분도 앉아 있기 힘들어졌다. 낯가림이라고는 전혀 없던 상봉이가 우연히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일주일을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언젠가 친구는 내게 상봉이의 지금 꿈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꿈'이라는 단어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는데, 상봉이의 미래를 생각해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앞으로 이룰 꿈보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무사히 잘 견뎌내는 것이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바람이었다.
상황이 절박해지니 이내 탓하지 않을 것을 탓했다. 상봉이와의 들떴던 시간을 일기로 쓰거나 만화로 그리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상봉이의 컨디션이 갑자기 고꾸라지는 것 같았다. 행복하다고 써내려 간 내 일기가 너무 건방졌을까?, 상봉이가 나의 우주를 감싸준 것이 아니라, 혹시 나의 삭막하고 우중충한 세계로 상봉이가 들어온 것은 아닐까?, 나의 우주에서 나의 서사를 위해 상봉이가 도구로 이용되고 있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상봉이가 아픈 후로는 나의 행동, 말, 생각, 나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을 검열했고, 일기 쓰기를 멈추고 상봉이와 나의 만화도 그리지 않았다.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동안 열다섯 살 내가 점집에 찾아가 아빠의 운명을 물었던 것처럼, 어느 날에는 상봉이가 아프게 된 것이 나의 잘못 때문인지를 물었다. 다행히, 어쩌면 당연히 점쟁이는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어느덧 상봉이와 연애한 지 10년을 넘어섰다. 그중 5년은 늘 흔들림 없던 듬직한 남자와 연애했고, 나머지 5년은 잔바람에도 한 없이 휘청거리는 앙상한 가지 같은 남자와 연애하고 있다. 누군가 '너의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으면, 상봉이는 원래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 망설여진 때가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오랫동안 꺼놨던 내 머리의 스위치를 켜고 다시 일기를 쓰고 간간히 상봉이와의 일상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트라우마도, 상처도 없다고 생각해서 상담받기를 거부했던 상봉이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으며 우울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우울증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쩌면 나와 상봉이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캄캄하고 먹먹하고 때로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벗어나거나 도망치고 싶은 곳은 아니다. 제자리에 앉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잡초를 뽑다 보면, 어느 날에는 땅을 일구고 있을 것이고 또 어느 날에는 그 자리에 조촐한 오두막을 짓고, 그러다 보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상봉이의 친구들도 초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우주 법칙에 적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