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걱정이 많았던 나는 유독 자면서 우는 날이 많았다. 내가 울던 날은 아픈 아빠가 빨리 죽을까 봐 두려웠던 밤이었고, 내가 흘려 던진 말에 엄마가 사다 놓은 김밥 재료가 슬펐던 밤이었고, 노래방에 간다는 아빠의 들뜬 웃음이 그리웠던 밤이었다. 밤마다 나를 울게 한 이유는 많았지만, 그것들 모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내게도 더 이상 사랑해도 울지 않는 밤이 생겼다. 상봉이를 생각하는 밤에는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는 대신 눈을 말똥말똥하게 떴다. 마음이 평온했고 설렜고 기뻤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상봉이와 지내던 어느 밤, 자고 있는 상봉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도대체 저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내게 울면서 사랑해야 하는 상대가 한 명 더 생겼구나'하며 상봉이를 꾹 안아줬던 기억이 난다.
자고 있는 상봉이는 어느 날 침을 뱉으며 깼고, 어느 날은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났고, 어느 날은 자는 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또 어느 날은 한밤중에 나가 햄버거를 두 세트씩 먹고 오고 아이스크림을 여섯 개씩 사 먹고 들어왔지만 다음 날 일어났을 때는 그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 했다. 그건 상봉이가 먹고 있는 정신과 약의 부작용 때문이었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아예 잠을 자지 못 하거나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다리를 가만 두질 못 하겠거나 혹은 죽고 싶어했다. 그러니 상봉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자신의 뇌를 잘 토닥이고 다독여 줄 약을 찾아 먹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 애기한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우울증은 뇌의 병이라고 알려줄 것이다. 아마 사람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암이나, 심지어 정신질환인 조현병에 대해서조차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우울증에 대해서 저마다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것은 우울증을 온전히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울적한 마음에 대해서는 한 번쯤 전문가가 되어 보기도 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말 그대로 불굴의 의지로 마음의 힘듦을 극복하거나 트라우마를 이겨낸 경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상봉이 역시 우울증이 자신의 의지 탓이 아닐까, 혼란스러워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어찌하지 못 하는 몸과 마음 때문에 더 죄책감을 갖고 힘들어 했다. 아마 우울증 환자가 주위 사람들의 조언에 유독 귀를 닫고 싶어하거나 '의지'라는 단어에 예민해지는 이유는 우울증이 도저히 자신의 마음으로 컨트롤 되지 않는 경험을 수차례 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증이 아닌 나는 기분이 울적할 때 목욕을 하고 요리를 했다. 때론 새 옷을 사거나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우울증이 아닌 나는 오전에 기분이 안 좋아도 오후에는 내 기분을 바꿔줄 일들을 찾아 채울 수 있었다.
내가 우울증을 잘 몰랐을 때는 매일 상봉이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사다 주었다. 상봉이는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하느라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이 그 날의 기분을 바꿔주진 못했다. 때로는 상봉이를 억지로 끌고 나가 운동을 시켜보기도 했다. 그럼 상봉이는 땀을 뻘뻘 흘리거나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면 3~4일을 누워 있어야 했다.
물론 상봉이에게도 괜찮은 날은 있었다. 상봉이는 우울한 시기가 올 때 머릿속에서 어떤 스위치가 ‘탁' 켜지는 순간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 스위치를 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스위치가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무기력과 우울증이 시작됐음을 알린 스위치는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간 고군분투했던 노력이 무색하게 뜬금없이 꺼지고 상봉이는 괜찮아졌다. 그때마다 상봉이는 자신이 드디어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처럼 단언했다. 하지만 그 착각의 순간에서 몇 걸음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보름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상봉이는 다시 고꾸라졌다.
그렇게 뇌는 지멋대로 우울증을 부르고 돌려보냈다. 그 명령을 거스르지 못 한 상봉이의 의지는 하루를 마음대로 꾸려나갈 수 없게 만들었고, 운동하지 못 하게 했고, 텅빈 하루를 보내게 했다. 그럼에도 상봉이의 의지는 병원에 꾸준히 나가게 했고, 상담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게 했고, 하루를 버티게 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죽지 않고 차라리 게임을 하게 했다. 몸이 불어나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부작용에도 약을 꾸준히 먹은 것 역시 똑바로 잘 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봉이의 의지는 매일매일 죽어있는 시간을 살게 할 정도로 나약했지만, 죽어 있는 시간 안에서도 버티어 살게 할 만큼 강했다.
우울증은 요즘도 상봉이의 의지를 시험한다.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보지 못 하게 할 때도 있고, 여전히 잠결에는 자꾸 빵집에 가려고 한다. 그래도 상봉이는 잘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난다. 전에는 눈 뜨고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멈추지 않던 게임을, 이제는 너무 오래 하면 게임도 지친다고 말한다.
잔잔해 보이는 하루도 사실 치열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겉과 속이 다른 시간들이 있다. 몸은 움직여도 생각이 멈춰 있으면 휴식이 되고, 가만히 누워있더라도 머릿속은 세상 바쁜 시간이 되기도 한다. 때론 무던히 시간을 흘려보낼 줄 아는 일에도 의지와 용기가 깃들어 있다. 상봉이도 그런 시간을 반복해 결국 오늘까지 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