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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Jul 24. 2024

밤샘 근무와 칼퇴 사이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평점을 주는 법관평가 제도가 있다.

내 동기인 판사 A가 몇 년 전 법관 평가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아서 신문에 뉴스로 나왔다.

어떻게 이런 평점이 가능한가 의문이 드는 높은 점수였다.

판사 A는 나와 연수원 동기이고, 연수원 때 함께 스터디를 했던 친한 사이여서, 오랜만에 사석에서 만났을 때 그에게 비결을 물어봤었다.


A판사는 그 평점을 받은 지원(지방에 있는 작은 법원)에서 일할 때,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새우며 일을 했다고 말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판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변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보니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큰 힘이 되었다고, 그 다음 보직은 그때에 비해서는 편해서 이제는 살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지새웠을 A의 체력과 성실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또 다른 동기이자 친구 판사 B가 떠올랐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한 친구 판사 B는 워킹맘이다. 그의 남편은 지방에 가 있어서 그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독박육아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오랜만에 B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는지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짜내 일을 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들 판사를 욕하는 분위기에 자기도 함께 욕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있는 힘껏 일을 해도 항상 부족한 것 같고 작아지는 그 기분을 나도 경험했었기 때문에, 친구의 토로에 마음이 짠했다. 잘하고 있다, 힘내라고 격려하며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내 말이 친구에게 크게 힘이 되진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재판에 참여한 변호사들로부터 만족할만한 평가를 받은 이유가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새 가며 필사적으로 재판을 했기 때문이라는 A판사 얘기를 듣고 나서, 열심히 하는데도 늘 부족한 것 같고, 그럼에도 시간을 어떻게 더 짜내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친구 B판사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법관의 업무량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밤을 새울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할 당시 판사 A는 서울에 배우자와 자녀를 두고 혼자 지방에 내려가 근무를 하였으니, 평일에는 챙겨야 할 가족이 옆에 없었고, 그래서 잦은 밤샘 근무도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밤새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성실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짜내고 짜내도 부족한 판사 B는 지방에 내려간 남편 대신 혼자 자녀를 돌보아야 하니, 밤샘 근무는 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럼에도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가끔씩 야근도 불사할 것이고, 야근을 하고도 개운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날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B는 짬을 내 운동할 시간도 없고, 책을 읽을 시간도 없다. 가끔 B를 만나 점심을 먹고 헤어질 때마다 나는 B에게 살기 위해 운동을 하라고 조언하는데, 그때마다 B는 힘없이 웃고 만다.


나도 지금은 변호사로서 사건 수임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에 업무량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평검사로서 사건을 배당받던 과거에는 업무량이 정말 과도했다. 언제나 내 방 캐비닛에는 미제 기록이 몇십 건 있었고, 사건이 매일매일 쏟아졌다. 내가 처리하는 사건 숫자보다 배당받는 사건 숫자가 많을 때가 자주 있었다.


근무 환경도 암울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연차가 일 년에 며칠인지도 몰랐고, 징검다리 휴일에 연차를 하루 쓰려다가 부장님에게 욕을 먹기도 했고, 지방 근무 시절 주말에 (평일이 아닌 주말에) 일이 있어 서울에 가는 것을 가지고도 욕을 먹었다.


사건을 내 마음대로 맡는 것이 아니라 배당을 받는 처지였던 어쏘 변호사 시절에도 (욕은 먹지 않았지만) 내 저녁 일정을 마음대로 계획할 수 없었고(언제 급한 사건을 맡게 될지 모르니까), 임신한 몸으로도 지방 출장과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만삭에 (출산 일주일 전) 중요한 재판에 출석했다가 방청석에 있던 기자 친구가 나 대신 분노하며 우리 회사를 욕한 적도 있다.


내가 꼰대여서 나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과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내 동기들은 힘들게 일하며 체력적인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고, 나는 거기서 한 발 물러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월감이 아닌 안도감이다.


얼마 전 친한 동기 언니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었는데, 판사인 언니는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매일 자정 무렵에야 퇴근한다고 한다.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안 돌아갈 때가 많은데도 워낙 일이 많아서 계속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만 일이 돌아간다고 했다. 검사인 언니는 저녁 먹으러 나온 김에 모처럼 빨리 들어갈 거라고 했는데,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연차가 제법 있어서 부 수석인 언니는 부 차석이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피곤에 절여진 언니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오래, 많이 일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우리 동기들이 모이면 한 번씩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요즘 후배들은 우리 때랑은 마음가짐이 달라. 공직을 선택한 이유가 조금 더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인 것 같아.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무슨 꼰대 같은 소리인가 하며 손사래를 쳤는데, 이제 하도 많이 듣기도 했고, 어느새 우리 동기들 연차가 요즘 후배들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니, 진짜 그런가 보다 한다.


사실 나는 변호사 후배들이 법정 연차를 다 사용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칼퇴하는  싫지는 않다. 근로자로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누리지 못한 연차를 후배들은 제대로 쓰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속한 회사는 법정 연차 이상으로 유급휴가를 더 주고,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전제로 한 업무지시는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다만 칼퇴를 하되,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의뢰인이니 근무시간에는 충실하게 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때 같지 않다는 판사와 검사의 근태에 대해서는 솔직히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당사자의 대리인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문이나 판결문을 받아볼 때가 종종 있다. 성의가 부족하거나 시간이 부족했을 게 분명한 문서를 받아볼 때면, 침침한 눈을 비비며 일할 동기들을 떠올리며,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겠거니' 이해하려는 쪽이긴 하다.

칼퇴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사건들을 두고 워라밸을 지향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것은 10년 차 이상 꼰대로서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밤을 새워서 일하거나 운동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이(즉 여가 없이) 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그렇게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판사와 검사의 업무량에 대해서는 칼퇴와 밤샘 사이 어디쯤에 나의 기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면서 나의 기준점이 점점 칼퇴 쪽으로 기울어지기를 바란다. 판사도 퇴근 후 자녀를 돌보고 자신도 돌보면서 업무도 제대로 해내는 게 가능한 업무량이 되기를. 그래서 내 친구 B가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면서, 책 읽을 시간도 가질 수 있기를. 일하지 않는 시간에 자책감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람이나 근태가 아니라 제도와 업무량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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