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행복해.
옅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아침, 부엌에서 봄동을 씻다 말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갑작스레 찾아온 행복감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며칠 전 남편과 장을 보다 야채 코너에서 봄동을 발견했다. 봄동은 겉절이로, 된장국으로, 쌈으로 먹기도 하는 만능 식재료다. 겉절이 생각에 침이 살짝 고이는 무조건 반사가 일어나자 나는 봄동을 얼른 카트에 담았다.
비닐 포장을 뜯어보니 봄동 세 개가 포개져 있었다. 세 개 중 제일 위에 있는 하나를 꺼내 밑동을 잘라 큰 이파리는 된장국에 쓰려고 빼두고 작은 이파리를 세척볼에 담았다. 봄동 줄기에 묻은 흙을 흐르는 물에 문질러 떼어냈다. 흙물을 버리고 새 물을 받아 몇 차례 흔들어 씻은 후 채반에 담았다.
그러고는 얼른 유튜브에서 '봄동 겉절이'를 검색했다. 유명한 요리 유튜버의 레시피가 상위에 랭크되었고 나는 그중 백종원 선생님의 영상을 눌러 재생했다. 선생님의 레시피대로 믹싱볼에 물기를 빼둔 봄동과 멸치액젓, 고춧가루, 마늘, 설탕, 참기름, 깨를 계량해 섞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오물조물 무쳐 간을 보니 짠 감이 없지 않았다. 옆에 있는 남편의 입에 하나 넣어 주며 "짜?"하고 물었다. 밥을 열심히 볶고 있던 남편이 볶음밥에 집중한 채 "안짜"하고 대답해 주었다.
남편은 내가 봄동 겉절이를 하는 동안 옆에서 볶음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김치볶음밥과 야채 볶음밥을 잘 먹는다. 남편의 요리에는 늘 정성이 깃들어있다. 남편은 볶음밥에 쓸 야채들을 일일이 칼로 하나하나 썰어 야채들의 모양과 크기가 얼추 비슷하다. 나는 다지기로 야채를 썰어 내 볶음밥 속 야채들은 크기도 모양도 울퉁불통이다. 남편의 볶음밥은 보기도 좋지만 간도 알맞다. 파기름을 내어 야채를 볶는 데다 굴소스와 멸치 액젓을 미량 첨가해 풍미를 살린다.
양육은 팀워크다. 우리 팀은 초기에는 빈번히 삐걱댔다. 내가 밥을 더했다, 아이를 더 돌본다, 설거지는 누구 차례다, 빨래는 나만한다로 숱하게 기싸움을 했다. 이인삼각 달리기에서 호흡이 맞지 않고 남 탓만 하다간 넘어지고 힘이 더 들 수밖에 없다. 호흡을 맞춰 함께 뛰어야 잘 뛰어진다. 요즘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밥을 함께 차려내고 간을 봐주고 맛있다며 서로를 추켜세운다.
봄동을 씻으며 행복 호르몬이 솟은 이유를 글을 써보니 알겠다. 남편이 집중해서 야채를 써는 모습이 곁눈으로 살짝 보였는데 난 부엌에서 우리가 먹을 음식을 남편과 함께 만들때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은 비닐장갑을 낀 나를 위해 매실청 뚜껑도 열어주고 간도 함께 봐준다. 남편은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을 잘 알고 있고 말하지 않아도 곧잘 만들어낸다. 아이를 온마음과 몸으로 함께 키우는 공동 리더이자 팀원이다. 요리 솜씨가 부족한 내가 밀키트도 냉동식품도 아닌 신선한 채소를 다듬어 가족의 건강을 돕고 있다는 소소한 만족감도 한몫 했을터이다.
행복을 일상에서, 작은 것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올해는 그 순간을 기록하려 한다. 우울감이 오랫동안 내 속에 기생하고 있고 약에만 의존하고 싶지 않아 잠깐잠깐 스쳐 가는 행복감을 손가락으로 잡아채 붙박아두고 싶다. 힘들 때 자주 꺼내어 순간을 되새김하고 싶다. 나의 글이 무기력에 숨통을 틔우는 자연 활력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