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와 소소한 일상의 대화
식도가 파업을 했다. 음식을 위로 내려보내는 일을 하지 않겠다, 선언한 것이다. 속 쓰림으로 시작한 식도염이 왜 운동기능 문제로 커졌는지 당시엔 알 길이 없었다.
음식을 씹어 삼킨다. 음식물이 식도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음식물은 식도 중앙에서 잠시 멈춘다. 위로 내보낼지, 입으로 뱉어낼지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듯하다. 음식물이 천천히라도 내려가면 또 다음 술을 떠 넣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식사는 그것으로 끝이다. 식도가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 나로선 손 써볼 다른 방도가 없다. 몸무게가 한 달 반 새 8킬로 강제 감량되었다. 그렇게나 단기간 큰 몸무게 변화는 나로선 당황스러웠다. 구토감과 거품을 동반한 허연침이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와 뱉어내야 해 외출이 어려웠다. 자연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일어설 힘이 없고 피로감은 극에 달했으며 살고 싶은 욕구마저 희미해져 갔다.
소화기 문제에서 시작된 병이 눈으로, 피부로, 이로, 정신으로 번졌다. 오래된 크라운이 부서져 내려앉았고, 눈에서 오래된 염증 덩어리가 발견됐으며, 치과 치료 중 사고로 피부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다. 정신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살얼음처럼 약해졌고, 누가 툭 치면 탁 부러지기 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한의원을 방문해 보기도 했다. 2024년은 병원을 갔고, 진료를 받았고, 검사를 했고, 다음 예약일을 잡아 집으로 왔고, 다시 병원을 간 해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젊은 나이에 아픔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나약한 한 인간을 이리도 처참하게 쓰러뜨리다니.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종종 뱉은 이에 대한 식도의 임무 수행이었을까, 응징이었을까.
식도는 병원을 멀리하고 약을 끊으면서 오히려 조금씩 좋아졌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알았다. 먹는 것이 없어 텅 빈 식도와 위에서 각종 소화제와 제산제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무분별 복용한 약의 부작용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몸의 재생 능력을 믿기로 했다.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한 생각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임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어젯밤 둘째는 잠이 들면서 내일 아침으로 소고기 카레를 먹고 싶다고 주문했다. 일어나 얼른 가까운 슈퍼로 가 소고기와 카레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무쇠 솥에 썰은 양파를 넣자, 둘째 아이는 양파를 볶고 싶다며 거들었다. 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자 이번에는 당근 껍질을 깎겠다며 필러를 작은 손에 쥐어 열심히 껍질을 밀어냈다. 당근에 묻어있던 검은흙이 고사리 손으로 옮겨갔다. 아이는 당근 껍질 깎기에 열중했고, 뚱뚱했던 당근은 홀쭉해져 있었다. 양파를 볶고, 감자와 당근과 소고기를 볶아 물을 넣고 먹기 좋게 삶아냈다. 야채가 익어 카레 가루를 넣고 잘 저어 맛있는 카레를 완성했다. 반찬으로는 냉장고 속 자투리 야채를 다져 계란물에 참치와 함께 섞어 동그란 부침개를 만들었다. 아이와 둘이 마주 앉아 카레덮밥과 계란부침개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행복감이 스쳤다.
음식을 삼키는 행위는 당연해 보이지만 때론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먹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잘 먹고, 먹는 날이 더 많아졌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더 가득 채우며 산다. 마주 앉은 아이와 내가 좋아하는 카레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묵묵히 음식을 삼켜준 식도에 고마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