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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an 08. 2022

충분한 말 한마디

  금요일이면 쇼핑을 한다. 손자들을 보러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보름 만에 만나면 녀석들은 다짜고짜 내게 범인, 악당, 상어를 하라고 한다. 저들은 경찰, 정의의 우주 전사, 용감한 선원이 되어서 나를 쫓고. 그렇게 부대끼고 뒹구는 동안 다가오는 것, 그것이 ‘핏줄’의 느낌일까. 아들을 키울 때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나이 조금 들어 바쁨과 치열함을 내려놓고서야 느껴진다니, 새삼스럽다.

  한 달쯤 전, ‘깨똑!’ 소리를 내며 아들의 메시지가 왔다. 전화기를 열었더니 손자 녀석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사랑해요”라는 친필 메시지를 붙여서 만든 카드를 들고. 공들여 만드느라 일주일이나 걸렸다는 녀석의 인생 최초 편지였다. 그것을 서재 책장의 제일 눈에 띄는 곳에 반듯이 세워 놓았다. 

  며칠 후에는 영상전화가 왔다. 버튼을 누르니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 하고 부른다. 놀라 반기는데 주말에 오느냐고 묻고는 내가 모르는 과자 이름을 말한다. 메모하는데 통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안방에 있던 아내가 뛰듯이 나와서 전화기를 빼앗아 대화한다. 손자는 팔을 들어 올려 사랑해요~ 사인을 보내고, 아내는 그것으로 완전히 녹아버린다. 녀석이, 영상통화 방법까지 배우고 있다.     


  산책을 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연결 방법이 나타나리라 생각하며 걷는데 초저녁 공기 사이로 얼핏 꽃이 보였다. 어른 키만 한 언덕 위 봉분 앞에 놓인 소담한 꽃다발이었다. 이 추워지는 날에 무덤 주인이 그리운 누군가 다녀갔나 보다. 장인어른 묘를 이장할 때가 생각났다.

  얼마 전, 봉긋한 봉분(封墳)에 계신 장인어른을 고급스럽고 네모반듯한 대리석으로 꾸민 평분(平墳)으로 옮겨드렸다. 영화에서 보는 보기 좋고 품위 있는 서양식 분묘였다. 어른의 흔적이 둥글고 자그마한 항아리에 모셔져 옮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장인어른의 백(魄)이 같이 잘 오셨을까, 백(魄)은 흙 속에 있고 싶어 한다던데 흙 없는 저 항아리 안에서 잘 지내실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누군가 말 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영혼(靈魂)은 혼백(魂魄)으로 나뉘고, 혼(魂)은 구름을 따라 하늘로 올라 흩어지지만 뼈와 함께 흙 속에 묻힌 백(魄)은 후손들과 소통한다. 그런데 요즘 매장 방식이 달라지면서 갈 곳 없어진 백(魄)이 많아지고, 그래서 후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끊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죽으면 손자들과 연결되는 지금의 통로들은 물론이고 죽은 뒤 영혼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경로가 사라져서 영영 끊기게 되는 것일까. 마음속에 불안함이 서서히 자리를 넓혀갔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쇼핑하고 손자들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전에 사 둔 장난감도 꺼내어 함께 정리하는데 그동안 떠올린 적 없는 할아버지가 불쑥 생각났다. 깊은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기억에 깜짝 놀라 망연한 기분이 되었다.

  큰 키에 검은 얼굴, 손이 두툼했던 할아버지. 배포가 크고 왁자지껄한 그분은 가는 곳마다 나를 데려가고 싶어 하셨다.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나를 내어 보이며 자랑하실 때는 우쭐했고 맛있는 것도 사 주셔서 좋았다. 

  장에 갔다 취해 돌아오시는 할아버지는 가끔 장난감을 들고 계셨다. 그리고 나와 이마를 맞대고 눈을 바라보며 웃으셨다. 술 냄새를 풍기는 할아버지의 눈이 소처럼 굵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손자와 이마를 맞대고 눈을 바라보곤 한다. 이 아이와 오래 연결되어 있고 싶다고 생각하며.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데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멈추어 서 있다. 곳곳을 찾아봤으나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흔적이 담긴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마음이 물먹은 창호지처럼 가라앉았다.

  방학이 다가오면 나를 기다리시고 이마를 마주 대고 내 눈을 보시던 할아버지와 지운 듯 잊고 살다 문득 떠올린 나. 이마를 마주하며 죽은 뒤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나와 이제 제 삶을 넓히기에 바빠 서서히 잊고 살 녀석.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올려 줄 수 있을까. 영화 시네마천국의 장면처럼.     


  물이 거슬러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피 또한 아래로 흐르는 것.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신이 정한 규칙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위의 조상들이 쌓아놓은 사랑을 거저 내려받아 자랄 수 있었다. 어쩌면 신은 내게 내려받은 그것들을 이제 아래로 흘려내리라고, 받은 것을 갚지 못하는 미안함과 죄스러움도 모두 사랑으로 바꾸어 얹어서 아래로 흘려 내려주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인간의 유전자에 심은 섭리이며, 지금 나는 그것의 한 부분을 경험하는 중인 것 같다.

  자리에 앉았다. 어느 선배 수필가의 글 중에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비율이 100대 0.7이라는 대목이 떠올랐다. 참 맞는 말이다. 그래도 비율 차이가 너무 크니 살짝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그때 책장에 앉아서 지켜보던 손자의 편지가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아, 충분하구나. 저 한마디로 충분한 것이구나. 

  마음속을 뒤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사랑하는 마음을 찾아보았다.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100이 0.7에게 큰 위로를 받는 저녁이었다.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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