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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an 21. 2022

그래도 묻고싶다

   약 50년 전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10월경으로 기억한다. 며칠 전 비가 온 운동장은 곳곳이 젖어 있었다. 화 난 담임선생님은 얼굴이 붉히며 화를 냈고, 나와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맨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일어난 도난사건 때문이었다.      


  1.

  도난사건이 일어나면 학급 전체가 혐의자가 된다. 담임은 우리 모두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용서해 주고 비밀도 지켜줄 것이라며, 훔쳐 간 사람은 솔직히 손을 들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무릎을 꿇게 하고 더 힘든 벌을 주어도 소득이 없었다.

  그 후에도 가방 속 육성회비나 우체국 저금 등의 도난 사고는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담임은 범인이 교실 밖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학교 주변에 우리 나이쯤인 부랑아들이 제법 돌아다녔는데 그들이 교실이 비었을 때 훔쳐 갔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습을 시켜놓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추격전이 벌어졌다. 작은 키의 남루한 아이가 앞서 뛰어 달아났고, 뚱뚱한 담임이 그 뒤를 쫓아갔다. 아이는 우리 교실 옆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나는 자습할 문제를 칠판에 적는 중이었다. 그런데 밖을 내다보던 몇 아이가 담임과 아이의 추격전을 발견하고는 창문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다. 순간 나는 창문을 넘지 말라고 소리쳤다. 창문은 내다보는 것이지 넘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담임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동작을 멈추고 앞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범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거친 숨을 쉬며 돌아온 담임은 머리끝까지 화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밖에 집합시켜 흙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고는 왜 창문으로 뛰어나와 잡지 않았느냐며 혼을 냈다. 한동안 벌을 준 담임은 화가 풀렸는지 모두 들어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너 때문이야!’라며 노려보고 건드리며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물어보거나 설명해달라고 하지 못했다. 왠지 잘못하는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2.

  그 3년 전, 나는 한 학년에 한 반인 작은 시골 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한 학년에 여섯 반인 도시 학교로 전학했다. 그런데 적응이 쉽지 않았다. 3월 말쯤, 학교를 빼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홉 살 꼬마가 얼마나 오래 숨길 수 있겠는가. 고작 집 주변 골목을 맴돌았을 뿐이었다. 사흘도 안 되어 동네 어른에게 들켰고 어머니에게 진상이 전달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혼을 내지 않고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 말을 다 들은 다음 비법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 공부만 잘하면 모두를 이길 수 있다, 둘째 선생님 말씀만 잘 들으면 선생님이 네 편이 되어 주실 것이다. 최고의 비법이었다. 점차 어려움이 해결되고 좋아져서 2학기에는 부반장, 3학년부터는 반장과 회장을 맡으며 학교생활을 했다.     


  3.

  젖은 운동장에 꿇어앉은 후 30년쯤 흘렀을까. 그동안 머리 좋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고 똑똑하다고 다 출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돌아가지 않으며 윗사람들은 뛰어난 사람보다 말 잘 듣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눈치는 실력보다 우위라는 것은 세속의 진리이며 용기보다는 적당한 비굴함이 편리한 것. 종종 알아서 기어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몰라 소화불량에 시달리곤 했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외출하며 학교 앞 도로를 건넜다. 주택가의 이면 도로는 오가는 차도 없이 한산했다. 골목길을 걷듯이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넜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20미터쯤 아래에 있는 건널목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이미 길 건너에서 돌아보던 아내는 아들에게 지금 어딜 가느냐며,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들은 빠르게 건널목을 건너서 우리에게 뛰어 올라왔다. 

  아들을 지켜보던 아내가 속이 터진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나를 보는지, 또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 같지 않았다. 주택가 도로는 지나가는 차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4.

  전공과목 수업에 한 학생이 계속 결석한다. 걱정되어서 학생들에게 한 번 더 결석하면 수업 시간 부족으로 과락 처리될 수 있다고 전해주라 했다. 개강할 때 5번 이상 결석하면 한 학기 15주 수업의 3분의 1 이상을 듣지 않은 게 되어 과락 처리한다는 원칙을 설명했다.

  다음 주 그 학생은 총학생회의 일 때문에 수업에 오지 못했다며 총학생회장 직인이 찍힌 공문을 내밀었다. 나는 공무를 참작한 수업 불참 허락은 교수의 권한 영역이며, 정당한 공무가 있다 해도 그런 것은 사전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이 사후 공문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예의, 절차, 타당성은 물론 다른 학생들과의 공평성 모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런 잘못을 일깨우는 것도 교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대학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인정해 달라는 부탁. 그런데 왜 은근(?)한 압력이 느껴지는 것일까. 총학생회 주도의 등록금 인하 투쟁으로 학교가 소란스러운 상황의 영향이었을까. 찾아온 대학본부 직원에게 뭐라 하지 않고 알았다며 고개를 돌렸다. 학생들의 표정과 수군거림이 뒷덜미에 느껴졌다.     


  강의실을 나오는데 50여 년 전 그 선생님이 생각났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지. 그러면 이제 누구에게 질문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나이다. 누가 대답하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동안의 삶의 무게와 깊이에서 대답을 길어 올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싶다. 그것이 내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내 질문은 앞으로 얼마나 허공을 맴돌게 될까. 올려 본 하늘에 낯익은 구름이 흐르고 있다.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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