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05.
나이 먹어 플루트를 배우면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내 몸이 견뎌낼 수 있는가였다. 일단 팔다리가 쑤실 테고 어깨에 무리가 가게 될지도 모른다. 전공생만큼은 아니더라도 연습하는 시간 동안 버틸 체력도 필요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난관 중 하나는 노안으로 돋보기를 써야 악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것들을 챙기다 보면 자연 집중력이 떨어지고 연주에 몰두하기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다 아다시피 플루트는 가로로 들고 연주하는 악기이다. 연주하는 동안 팔로 그 악기를 받치고 있어야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적응되면 그것도 해결되겠지만 처음에는 어깨가 뻐근하고 근육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어느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다양한 관악기를 보며 ‘왜 내가 플루트를 선택했을까? 클라리넷이나 오보에 같이 세로로 들고 연주하는 악기는 최소한 중력을 거스르지는 않으니 어깨가 아프지는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우스운 이유로 내 선택이 옳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다른 악기 생각을 하는 순간 클라리넷 연주자가 나무 리드가 마르지 않도록 입에 물고 쭉쭉 빠는, 약간 불결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노안 문제도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일단 연습하는 시간 내내 돋보기 안경을 끼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또 연주회 때 돋보기 안경을 끼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된다. 나는 평소 안경을 안 끼는데 연주할 때만 돋보기를 끼면 내가 할머니라는 티를 확 내는 것 같아 싫다. 그렇다고 돋보기를 낀 채 무대 입‧퇴장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돋보기를 끼었는지 벗었는지 그 변화를 누가 알아채겠는가? 괜한 나 스스로의 자격지심이다. 아니, 나 스스로에 대한 괜한 트집이다.
연습량이 많지 않아서인지 일주일에 한 번 플루트 레슨 받고 연습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되지 않았다. 어깨에 근육통이 심해지지 않았다. 돋보기 끼고 연습하는 것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적응해가는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왼손 약지 모양이 이상해지며 뼈가 바깥으로 퉁그러져 보였다. 욱씬욱씬 쑤시는 통증도 가끔 있었다.
사실 그 손가락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겨진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무엇보다 통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루트 배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보니 손가락이 더 많이 변형된 것 같았다. 갑자기 겁이 더럭 났다. 왼손 약지를 못 쓰게 되면 어쩌나, 플루트 배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난 손가락 때문에 플루트 연주가의 꿈을 접어야 하는 건가.
부랴부랴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손가락을 쓰지 말라면 어떻게 하나, 플루트를 그만둬야 하나, 하긴 의수를 끼고 연주하는 사람도 있지.’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별의별 상상을 했다. ‘의사가 뭐라 하든 플루티스트가 되겠다는 내 의지는 꺾을 수 없어’라며 굳게 마음을 먹었을 무렵 내 진료 차례가 되었다.
엑스레이 결과를 본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라 진단을 내렸다. 관절염은 관절을 보호하는 연골이 마모되고 손상되면서 뼈와 뼈가 직접 부딪혀 통증과 염증을 유발하는 흔한 질환이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진다. 아무튼 ‘퇴행성’이라는 말이 병명 앞에 붙으면 그건 거의 ‘늙어서’ 생기는 병이다.
문제는 퇴행성 관절염의 경우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뼈끼리 부딪혀 통증이 심하면 물리 치료를 하거나 약을 먹어 통증을 완화하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 외에 별 방법은 없다. 다행히 평소 통증이 심하진 않다. 그러니 플루트 연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손가락 모양은 좀 묘하지만 상관없다.
팔이 저리고 아픈 적도 있다. 플루트 연주를 하려면 팔을 들고 있어야 하니 어느 정도 저릴 수도 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로 넘길 수는 없다. 더 나빠져 연주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까. 신경외과 의사는 퇴행성 경추 디스크라 했다. 또 ‘퇴행성’이라는 말이 붙었다.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다. 고개를 앞으로 당겨 숙여 뒷목 스트레칭을 해주라는 얘기뿐. 다행히 증세가 완화되어 팔 저림도 해결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병이 ‘퇴행성’이라는 말을 달고 내 앞을 가로막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플루티스트가 되겠다는 나의 의지는 꺾을 수 없다. 무려 내세에서 끌어온 필생의 대 프로젝트 아닌가. 나이를 먹어서 생기는 신체적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잘 다독이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사람 일이라 ‘백전백승’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패배하더라도 치명적인 피해는 피할 수 있다. 노화의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