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06.
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 학과가 분리되면서 만난 음악 선생님. 얼굴이 동그랗고 인상이 좋았던 그 선생님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건 딱 한 가지이다. 플루트가 목관악기라고 가르쳐준 것.
“플루트는 금속으로 되어 있으니 금관악기라고 생각하기 쉽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나를 가르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어. 자신이 배울 때는 플루트 소재가 나무였다고.”
그 말을 할 때 선생님의 표정과 동그랗게 뜬 눈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플루트가 목관악기라는 정보는 평생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그게 사실일까 검색해보고 놀라운 내용을 알게 되었다. 의무 교육 과정에 ‘옛날 플루트는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관악기다’라고 가르치지만 이는 틀린 설명이라는 것이다.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악기의 소재가 아니라 소리를 내는 원리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내보내 연주자의 입술을 진동하게 하여 마우스피스를 통해 소리를 내는 악기는 금관악기이고 리드를 진동시키거나 바람을 불어 넣어 공기의 울림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목관악기로 분류한다고 한다. 물론 옛날 플루트가 나무로 만들어졌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금속으로 만들었던 색소폰도 목관악기로 분류되고, 18세기까지 프랑스에서 주로 연주되던 뱀 모양 악기 세르팡은 목재로 만들어졌어도 금관악기로 분류된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스꽝스럽다. 대부분 학생이 플루트라는 악기의 소리를 내보기는커녕 실제 만져보지도 못하고 교육을 마치는데 목관악기냐 금관악기냐가 뭐 그리 중요했을까? 그런데도 그때는 그걸 외우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는 어떤 계기로 어릴 때부터 클래식에 취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1960년,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에 태어난 나의 경우 부모가 음악회에 데리고 다니며 클래식 공연을 접하게 해주거나 집에서 음악을 들려주었을 리 없다.
반면 나는 내 딸이 공연 입장 가능한 나이 8세가 되었을 때부터 열심히 클래식 공연에 데리고 다녔다. 연주가 진행되고 있을 때 재채기가 나오면 입을 가리고 소리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며 손수건을 쥐어주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는 곧잘 공연에 따라다니던 딸은 악기 연주를 배우기는커녕 사춘기 접어들면서 클래식에는 흥미를 잃는 듯했다.
음악에 흥미를 얻는 것도, 흥미를 잃는 것도 학교 음악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아니 중등학교까지 음악 교육의 역할은 그 학생이 일생 음악을 향유하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일생 클래식 취미를 갖게 된 것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이끌어준 음악 선생님들과의 만남 덕분인 듯하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음악 시간, 선생님은 음악실 구석에 놓인 철제 캐비넷을 열었다. 그 안에 소중한 물건처럼 보관되어 있던 전축에 선생님은 음반 한 장을 올려놓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미국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연주로 흘러나왔다. 그 음악 선생님의 이름이나 생김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그 연주가 나를 클래식의 세계로 이끌었고 평생 그 세계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이 60세가 넘어서 플루트를 다시 배우기 시작한 의지도 그날 들은 ‘황제’ 협주곡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후 나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아직 새 학교 교복을 받지 못한 며칠 동안 나는 예전 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해야 했다. 등교 첫날 음악 시간이 있었다. 음악실에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선생님, 카로 미오 벤이요.”
‘카로 미오 벤(Caro mio ben)’은 이탈리아 고전 가곡 제목으로, 아마도 선생님이 불러주기로 전 시간에 약속했던 모양이었다.
“그래, 좋아. 그런데 누가 나와서 반주를 해야지.”
60명이나 되는 학생 중 반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반주할 사람 없어? 그럼 나도 노래 안 한다.”
선생님의 최후통첩이 떨어졌는데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자칫하면 선생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판이었다. 그때 그랜드피아노 앞으로 성큼성큼 나선 사람은 아직 예전 학교 교복을 입고 있던 이방인, 바로 나였다. 순간 음악실의 공기는 멈춰버린 듯했다. 어쨌든 내 반주에 맞춰 선생님은 ‘카로 미오 벤’을 멋지게 불렀고 노래가 끝난 후 “이렇게 반주를 잘 하는 사람은 처음이다”라며 나를 한껏 칭찬해주었다.
나는 그 학급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반에는 피아노 전공 준비를 하는 아이가 세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음악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가장 인기 높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느라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전학 온 아이가 대담하게 피아노 반주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놀라운 사건이었지만 인기 선생님의 칭찬과 관심을 한꺼번에 받다니…. 지금 같으면 분명히 나를 왕따로 만들었을 만한 ‘위험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반 친구들은 나를 괴짜 정도로만 여겼을 뿐 다행히 살갑게 친구로 맞아주었다.
내게 큰 관심을 갖게 된 음악 선생님은 바이올린 배울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교내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그 선생님은 당시 내게 놀라운 제안을 했다.
“넌 음악적 소질이 많으니 지금부터 시작해도 3년 후에는 우리 오케스트라 악장이 될 수 있을 거야.”
내가 연주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것도, 엄마에게 관악기 전공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을 꺼낸 것도 그 무렵이었던 듯하다.